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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Jan 12. 2023

간호사 태움, 재가 되어야 끝이 날까.

<11년차 간호사가 겪는 태움, 그리고 갈비뼈 골절>

태움은 그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라떼는 말이야, 내가 신규 간호사 때는 말이야. 이런 태움도 있었어.


 그렇다. 내가 신규간호사 일 때는 태움이 일상이었다. 지나간 일에 크게 후회하지 않는 편인데, 살면서 후회되는 일 중 하나가 부당한 태움을 그냥 버텨내기만 했다는 것이다. 네이버에 태움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이런 무시무시한 뜻으로 해석되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니, 정말 무시무시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당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 무시무시한 말보다 더 무서운 게 태움이라는 것을. 한편으론 아쉽긴 하다. 어쩌다 우리의 직업이 이런 단어가 떠돌듯 네이버백과사전에 오를 정도라니.


 어느덧 연차가 쌓이고, 경력 간호사가 되어서 8명의 후배 신규 간호사를 가르쳤는데 -이를 프리셉터(사수)/프리셉티(신입) 제도라고 부른다. 선배 간호사가 1:1 과외선생님처럼 신입 간호사를 8주간 교육하는 제도이다.- 내 프리셉티들을 태울 만한 일은 전혀 없었다. 물론 내가 운 좋게 열심히 임하고, 태도가 예쁜 후배들만 겪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내 새끼들을 두 달 동안 가르쳐서 독립시켰더니 다른 선배들이 태우고 있었다. 왜? 바빠서? 여유가 없어서? 간호사 3개월 차가 3개월 차만큼 일하는 것을 문제 삼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들에게 3년 차의 역량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모르면 알려주면 되고, 잘 모른다고 해서 태움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


 그러나 나는 그때도 적극적으로 태움에 맞서지는 못했다. 내가 프리셉티들에게 알려준 방법은 '넌 잘하고 있으니 사소로운 태움에 절대 쫄지 말라' 정도였다. 지나고 보면 이게 잘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나서서 한마디를 해주지 못한 점에 미안하고 후회되기도 했다.

'그 사람은 원래 말투가 그렇잖아.'
'그 사람 원래 예민하잖아.'
'사람 목숨 다루는 직업에서는 어쩔 수 없이 군기가 빡빡해.'

 그렇다고 태움이 용납될 수는 없다. 사람 목숨 다루는 직업이고, 그런 일이라고 해서 같은 직종 종사자의 마음을 죽이는 건 되는 것일까.




 난 어느새 11년차 간호사가 되었고, 작년 4월 중순부터 외래로 발령 나게 되어 9개월 차 외래 간호사이기도 하다. 전임자는 나보다 근속연수가 훨씬 높은 간호조무사였고, 간호조무사 자리가 간호사 자리로 바뀌면서 간호조무사들에게로부터 이유 없는 텃세와 비합리적인 태움이 여러 번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외래 시스템을 잘 모르기도 했고, 큰소리 나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참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다.


 전임자가 인수인계를 하나도 주지 않았음에도 나는 혼자 일을 물어가며 익혔고, 앞에서 친 사고를 뒤에서 뒷수습하면서도 싫은 소리 한번 한적 없었다. 그럼에도 도리어 안하무인 한 태도로 되갚음을 당하다니. 사소한 예를 하나 들자면 화장실 휴지통 넘치는 것도 내 탓을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한 번은 외래에서 시행한 조직검사 검체가 잘못 담긴 사건이 있었는데, 내가 우리 부서의 책임자로 되어있기 때문에(간호사는 나뿐이기 때문에) <환자 안전사고 보고서>를 쓰면서 개선 사항으로 부서 내 바코드 라벨기를 들여달라고 요구했었다. 당연히 의료 규정상 원칙에 맞는 일을 했을 뿐인데, 내가 일을 키웠다고 비난을 들어야 했다. '좋은 게 좋은 건데' 그걸 왜 굳이 짚고 넘어가냐는 비난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게 내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쿨한 척하며 듣고 흘렸다. 간호사로서 의료인으로서 당연히 책임을 지고 일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행동들이 미움을 살만한 일이었을까. 나는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묵인하고 넘어가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직종을 막론하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연차가 높다는 이유로? 해당 부서에 더 오래 있었다는 이유로? 내가 외래 시스템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나보다 연차 높은 간호조무사에게 태움을 당하고 반복되는 감정 노동에 현타가 왔다. 업무에도 치이고, 사람에게도 치여야 하다니.

 가끔 환자분들이 소리치며 비합리적인 분노를 표출할 때도 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이것도 업무의 일종이라고 여기면 감정소모가 크게 오진 않는다. 그러나 직장 내 태움은 다르다. 둘 중 하나는 버티든 참든 나가든 해야 끝이 나더라.

 지나고 보면 태움이 있음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원래 이쪽 세상이 그렇다'는 이유로 참고 넘겨온 것이 태움 근절에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찌 됐든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참을 만큼 참았고, 태움 앞에서 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낼 것이며, 11년차 간호사로서 새로운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주, 연초부터 갈비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실금이 아니라 뼈 2개 골절에 CT상 피도 조금 고여있다고 했다. (어디서 다쳤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일하는 외래는 진료과 특성상 평균 연령대가 높아서 목소리 크게 또박또박, 배에 힘주고 성함을 불러도 잘 못 들으시는 경우가 많아서 환자분들을 찾아다녀야 한다. 말할 때도 물론이고 움직일 때마다 갈비뼈가 울렸다. 잠도 못 잘 정도의 통증이었다. 겨우 하루를 버텨가고 있었는데, 간호조무사가 '아픈 사람이랑 불편해서 일을 못하겠다'는 말에 울컥해서 갈비뼈를 움켜잡고 말했다.


 "그래도 사람이 아픈데,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그런 말도 우리 사이가 좋을 때나 해주는 거죠. 그리고 선생님 아프다고 걱정해주는 사람, 있기나 해요?"


 이 말을 듣자마자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참아왔던 지난 9개월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몸의 아픔보단 마음이 더 아팠다. 그 와중에 내 몸은 눈치도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내가 먼저 울어버렸다. 내가 졌구나...

  정말 내가 아프면 아무도 걱정해 주는 사람 하나 없을까? 내가 뭘 그렇게 잘못한 걸까?


 갈비뼈는 심장과 폐, 간 등 중요한 인체 장기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갈비뼈가 부러지면서 내 마음도 같이 부러진 걸까. 분명 얼마 전까진 '태움 앞에서 지지 않고 버티고 이겨낼 것이며, 11년 차 간호사로서 새로운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굳게 굳게 다짐했었는데, 갈비뼈 골절 사이로 마음의 장벽도 같이 무너진 건지, 온갖 약한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인내심의 한계가 느껴졌고, 더 이상 이 자리는 내가 버틸 수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냥 부서 이동 신청해 버릴까? 퇴사해 버릴까? 내가 도망가버리면, 이 모든 전쟁이 끝이 나지 않을까?

 그런데 내가 나가버리면, 다음 사람이 이 자리에 오게 될 텐데.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이 자리를 넘겨주는 것은 후배들에게 민폐 아닐까? 태움이 대물림 될 텐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8명의 프리셉티 후배들이 생각난다. 내 소중한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하려면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선배의 역할인데 말이다. 예전에 부서 이동 하기 전, 후배들에게 했던 말이 있다. 꿈과 로망을 실현시키며 사는 선배가 되겠다고. 이런 거창한 말만 남기고 지금 도망가도 되는 것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과연 그런 삶을 살고 있는가.


 갈비뼈가 부러진 걸까, 내 마음이 부러진 걸까.

부러진 갈비뼈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붙는다는데 으스러진 내 멘탈도, 무너진 내 마음도 잘 붙을 수 있을까.

  태움, 간호사의 숙명일까? 그냥 버텨야 할까? 도대체 언제까지 투쟁해야 끝이 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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