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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Dec 14. 2022

겁내지 않고 간호 하는 법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지난주, 서울 남쪽에 일정이 있어서 갔다가 일 끝나자마자 잠깐 관악산에 들렀다. 마침 시간은 일몰 시간이 겹쳤고, 그림 같던 일몰이 펼쳐졌다. 영화 <라라랜드>를 연상케 하는 선셋을 감탄하며 바라보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갔다. 해가 떨어지고 급격히 어둑어둑해진 관악산을 내려가는데, 진짜 깜깜했다. 헤드랜턴을 착용하며 부분 부분 빛을 비춰가며 내려갔지만, 관악산은 아직 익숙하지 않기도 했고 평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너무 없어서 더 무서웠다.


 '와, 진짜 무섭다. 내가 여길 왜 왔지?'


 깜깜하고 잘 모르는 길이라 더 무서웠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어둠이 순간 익숙하게 느껴졌고, 문득 신규 간호사 시절이 떠올랐다. 정맥 주삿바늘을 들고 덜덜 떨면서 환자에게 처음 갔던 날, 근육주사 놓을 때 혹시나 잘못 찌르진 않을까 하는 긴장감, 처음으로 간호사 선배에게 내가 맡은 일을 인수인계했던 날, 경험해보지 못했던 어려운 환자가 응급실에서 올라온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동맥이 터져서 피를 쏟고 있는 환자를 봤을 때, 정말 앞이 깜깜했던 순간이었다.


 '아, 그때도 참 무서웠지.'


 신규 간호사 때 가장 두려웠던 이야기는 “야, 너 그러다 환자 죽으면 어떡할래?”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 라떼는 말이야, 이렇게 간호를 배웠다. 극단적인 실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최악의 상황을 상기시키며 말이다. 우리에게는 사소한 실수라도 환자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나는 이렇게 극단적인 표현을 싫어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사소한 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이 똑같은 A 환자의 항암제를 실수로 B 환자와 바꿔 연결한다면?
그 항암제 한 병이 500만 원짜리 항암제라면?
그런데 B 환자가 그 항암제가 들어가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몸에 이상반응이 온다면?
A 환자에게 인슐린을 1 단위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 열 배나 되는 10 단위를 줬다면?


 신규 간호사 시절, 그 당시에는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겨내야 했다. 누군가가 책임져 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계속 반복해서 체크하고, 반복해서 연습하다 보니 어느새 11년 차 간호사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크게 두렵지 않은 것들이잖아?'


 두려움의 경험은 나의 경력이 되기도 하나보다. 두려웠던 것들의 목록을 써보면 지금은 크게 두렵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원점 회기, 관악산 입구 날머리에 도착했다.


 겁내지 않고 간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해봤기' 때문이다. 결국 반복해서 혼자 해보는 방법 밖엔 없으며, 두려움은 스스로 극복해야만 끝이 난다. 그리고 멋진 일은 두려움이라는 껍데기를 벗겨야 오는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도 관악산 일몰 산행을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멋진 뷰를 볼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관악산 일몰 뷰-1
관악산 일몰 뷰-2


 내 지난 간호의 경험으로 봤을 때에는 성장을 하려면 두려움은 꼭 극복해야 하는 필수 조건이었다.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스스로 응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홀로 남겨진 어둑어둑한 관악산에서도, 결국 두려움을 극복하고 완주할 수 있는 사람도 나 자신뿐이었다. 언젠간 한 번이라도 이 두려움은 깨어내야 한다. 그걸 깰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으며, 두려움을 깨어내야 결국 다음 단계가 오는 것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p.123


 때론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알을 깨어내야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으며 진정한 성장이며, 주체적 간호를 하는 방법이다.


 결국, 겁내지 않고 간호 하는 법은 두려움과 맞서, 일단 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두려움을 두려워하지 말 것. 도전을 하지 않았다면 두려운 감정도 느낄 수 없었을 것이고, 두려움을 극복하는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간호사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 어둑어둑해진 관악산에서 길을 헤매기만 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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