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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Jul 28. 2024

감정 노동자의 시급은 얼마나 될까?


불안

 신규 간호사 때 가장 두려웠던 이야기는 “야, 너 그러다 환자 죽으면 어떡할래?”라는 이야기였다.


 겉으로 보이는 모양이 똑같은 A환자의 항암제를 실수로 B환자와 바꿔 연결한다면?

 그 항암제 한 병이 500만 원짜리 항암제라면?

 그런데 B환자가 그 항암제가 들어가고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몸에 이상반응이 온다면?

 A환자에게 인슐린을 1 단위가 들어가야 하는데 그 열 배나 되는 10 단위를 줬다면?


 ‘사람이 살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지.’


 이 말은 우리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이야기다. 사소한 실수라도 환자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내가 무언가를 놓쳐서, 그 사람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 어떡할까? 하는 불안 속에서 늘 경각심을 갖고 일을 하고 있다.



화남

 외래 간호사로 일하다 보면 다른 곳에서 화난 일로 소리 지르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난 아직도 그런 사람을 대할 때면 손부터 떨려온다. 며칠 전도 마찬가지였다. 외래 데스크 앞에서 나에게 크게 소리를 지르다가도, 남자 어른 의사 앞에서는 꼼짝 못 하는 보호자가 너무 비겁해 보였다. 그런 일을 겪고 다음 순서의 환자를 대할 때 나는 아무 일 없던 사람처럼 평범하게 응대해야만 했다. 내 감정이 요동치는 것은 뒤로 한 채.


 간호사가 되고 나서 ‘죄송합니다’는 말이 입에 배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난 뭘 그렇게 잘못했을까. 나는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나?’


 퇴근길에 엄마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었다. 내가 이런 일을 여전히 겪는다는 것을 들킬까 봐 차마 병원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엄마 앞에서도 내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한 채 씩씩한 말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감정 노동자의 시급은 얼마나 될까?



슬픔

 1년 차 간호사였던 어느 평범한 날의 밤이었다. 나는 나이트 근무 중이었고, 담당 환자의 보호자인 큰딸이 다급히 간호사실로 뛰어나와서는

 “환자가 숨을 안 쉬어요! 빨리 와주세요!”라고 말했다. 보호자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바로 달려갔다.

 그 환자는 암세포가 여기저기 퍼져서 크게 손을 쓸 수가 없었고, 심폐소생을 거부하는 것에 동의를 했던 환자였다. 환자의 혈압을 재려고 팔을 들어 올리려는데 이미 싸늘하게 체온이 식어 있었다. 축 쳐진 팔을 잡고 혈압계를 올려 보지만 압력이 측정되지 않는다. 당직의를 불렀다.

 사망선고가 이루어지고 난 후 코에 있는 산소줄, 팔에 꽂힌 주삿바늘 등을 제거하면서 체온이 사라진 반대쪽 손을 붙잡고 엉엉 우는 큰딸을 보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임종하는 환자를 보고, 보호자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보고, 슬펐다. 그렇지만 감정은 뒤로한 채 눈물을 감추며 행정처리를 신속하게 해야 했다.



무뎌짐

 예전에 같이 수영하던 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민지야, 슬플 때 눈물이 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아니? 나중엔 감정에 무뎌져서 슬퍼하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무미건조하게 넘어갈 때가 있단다. 씁쓸하지.”

 20대 초반에는 이 말을 100%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떤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언젠가부터 정말 무서웠던 것은 환자의 임종을 보며 감정적인 동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마음속으로는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있긴 하지만, 감정에 휩싸이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을 담당하는 스위치는 강제로 끄고 이성적인 판단을 담당하는 스위치만 켜둔 채로 일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는 그게 습관이 됐다. 감정을 오롯이 느끼는 게 뭔가 모르게 불편했다. 희로애락이 분명했던 나에게는 기쁨도 슬픔도 괴로움도 점점 무뎌졌다. 본능적으로, 감정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쪽을 택해서 적응했나 보다.




 얼마 전에 봤던 <인사이드 아웃 2> 영화가 생각났다. 영화 속 주인공 라일리는 성장과정에서 겪는 감정의 변화를 통해 한층 성숙해지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면 속에서 감정들이 서로 얽히고설키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을 때, 나는 스스로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감정과 내 자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어쩔 줄 모르는 어른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라일리처럼 성장 과정 이려나?

 다른 어른들도 나와 같을까?


This artwork is based on a reference image © bottlenine.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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