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말하는 '시간이 소중한 이유'
간호사인 친구들이랑 카페에서 만나면 재밌는 광경이 있다. 음료가 다 되었다는 콜벨이 울리는 순간, 0.1초만에 동시 다발적으로 엉덩이가 떨어져 어느새 pick-up대에 모두 도착해있다. 간호사가 아닌 친구들이 보면 우리가 격하게 급해 보이지만, 간호사에게 주어진 업무를 들여다보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질 것이다.
지금은 오전 7시, 아침 공복 혈당을 측정하고 나서 아침 정규 투약(주사와 식후 복용해야 할 아침약)을 돌리는 중에 담당 환자의 병실에서 보호자가 날 다급히 찾는다. 진통제를 원해서 후다닥 발빠르게 움직여 진통제를 가져온다음 투약 했다. 시계를 보니 7시2분, 3분 카레가 완성되지도 않는 2분 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해치우고 난 지금, 빨리 남은 투약을 돌러 가야한다. 그러던 찰나에 복도 끝에서 들리는 소리,
쿵!
누군가가 온몸으로 소리를 내어 나를 찾는다. 단단한 무언가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분명하다. 보호자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 기력이 많이 떨어진 간암 환자분이 혼자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넘어지신거다. 그 순간 간호사 스테이션에 전화벨이 쉴새없이 울린다. "응급실 환자 지금 올라가요." 수화기를 내려놓기도 전에 복도 맨 끝에 위치한 2인실에서 콜벨이 울린다. "숨이 너무 차요." 4인실에서 약물주입기기(infusion pump)에서 약물이 다 되었다는 알람이 울린다.
콜벨, 응급 방송(emergency! code blue, code blue!), 전화벨, 기계알림, '쿵' 넘어지는 소리, 끙끙 앓는 소리 등, 정말 다양한 종류의 알람이 울린다. 우리는 불시에 끊임없이 알람이 울리는 공간에서 불을 끄는 행위처럼, 그 알람을 '끔'과 동시에 일을 '해결하며' 살고있다. 알람이 울리면 사실 달갑진 않다. 대부분 응급한 상황을 알리는 것이라 난감하기도 하고, 당장 처리해야 하는 크고 작은 업무가 또 주어지기 때문이다. 안그래도 정해진 시간에 끝내야 할 일들이 산떠미같이 쌓여 있는데, 불시에 울리는 '알람'이 가져다주는 일들은 매 순간 나에게 쌓인 일들의 우선순위를 흐트린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들을 다 해내야 한다. 그냥 다 해내기만 해선 안된다. 우리에겐 '특정 시간'에 꼭 해야할 일-예를 들자면 낮12시 항암제 연결, 아침 식사 나오기 전까지 공복 혈당 측정-과, 불시에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가야 한다.
수많은 내 앞의 일들 중에서 무엇을 먼저 해야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즉, 시간을 잘 다뤄야 하는 것이다. 간호사가 일을 잘 하는 방법은, 시간을 어떻게 쓰고 어떻게 정해진 시간에 그 일을 잊지 않고 하느냐가 우리 업무의 핵심이다.
이제 몇달 안남았어요.
내가 돌봄을 제공하는 환자분들 중에 가장 두려워하는 이 말을 듣게되는 환자분들이 있다. 끌 수 없는 스톱워치가 켜지는 느낌이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동안 삶을 정리해야 한다. 암병동에서 근무하다보면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 지 모른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열심히 산다고 더 시간을 주는 것도 아니고 착실히 살았다고 오래 살게 해주는 것도 아니다. 차라리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같은 수명이 주어지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간호사는 쫓기는 듯한 시간 속에서, 내가 돌보는 환자들에게는 너무나도 짧은, 남은 여명의 시간 속에서 우린 서로 다른 상황이지만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이 조금만 더 넉넉히 있었으면.....'
암병동 간호사로 살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예로부터 시간은 금으로 비유가 되어 왔는데, 시간은 금이 아니다. 금을 포함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것도 아니다. 근무시간 동안에는 '주어진 시간에 이 수많은 일을 어떻게 클리어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일과 사투를 벌인다면, 퇴근 시간부터는 '온전히 나의 삶으로 주어진 이 시간을 무엇으로 채울까?'를 고민해보게 된다.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 내게 주어진 하루를 어떤 것으로 채울지 치열하게 고민해봐야 할 부분이다. 무엇을 하며 보낼지,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의미 있게 '잘' 보내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