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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Jul 20. 2021

어쩌다 9년째, 암병동 간호사로 살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간호사가 정말 되기 싫었다. 간호학과를 꿈꾸던 10대 시절도 없었다. 어릴 때는 책을 별로 안읽던 내가 인체 해부학은 종종 흥미롭게 읽었고 '간호학과는 취업이 잘 된다고 하더라'라고 하니까, 재수학원은 가기싫으니까(자신없었으니까) 간호학과를 지망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진로를 선택하면 안된다는 것을 입학 해서 '간호의 역사'라는 과목 시간에 깨달았으나 나는 되돌아갈 용기는 없었다. 나이팅게일의 사상과 내가 추구하는 삶은 정말 다르다고 느꼈고, 간호학과에서 탈출하기 위해 정말 끊임없이 노력해왔다. 운동처방사 자격증도 따고 수영 선수만큼 대회도 다녀보고, 석사는 꼭 운동생리학을 전공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이상적인 꿈은 뒤로하고, 현실적인 선택 '취업'을 택했다. 그러던 내가 벌써 9년차 간호사라니.



 나는 암병동 9년차 간호사이다. 8년이 넘는 '암병동' 임상 경력은 긍정적이다 못해 낙천적이던 나를 철학적이고 회의적으로 변하게 해주었다. 보고 듣는 환경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냐 하면 삶과 죽음의 고뇌, 암이라는 질병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인간의 삶을 매일 보다보면 무뎌지는게 아니라 삶의 허무로 인한 번아웃을 수시로 겪는다. 그때면 모든 것이 덧없어보인다. 소위 말하는 절제되지 않은 삶-술담배를 많이 하고 식단 조절을 전혀 안하는-을 사는 사람만이 걸리는 질병도 아니고, 꼭 가족력에 기인한 것도 아니다. 불특정 사람에게 어느날 불현듯 암이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즉, 정확한 발병 기전을 아직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뜻) 그래서 곁에서 보는 나도 함께 두려웠다.


 한편, 안쓰러운 것을 매일 보는 환경에서 간호사가 많이 듣는 이야기는 "여기 좀 봐줘, 빨리 와봐, 아파 죽겠어, 숨이 너무 답답해, 이건 왜 이래,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사실 밝고 희망찬 이야기 보다는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90%이상을 차지한다. '실수도 할 수도 있는게 사람이지'라고 넘기기엔 경중이 남다른 일을 하다보니, 10을 잘해도 1을 놓치면 큰일이 난다. 작은 실수도 절대 용납되지 않기에 늘 날을 세우고 일을 해야 한다. 아무리 수고를 해도 '고맙다'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1을 놓쳤을 때의 뒷감당이 더 힘들다.


 그래,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삶' 형태라고 치자. '간호사도 사람입니다.'를 마음속으로 외치지만, 사람 이전에 간호사인게 우선인 곳이다. 정말 바쁠 때는 밥도 거르고 일 할 때가 많았다. '이번달엔 밥을 몇 번 먹었나?'를 세어볼 때도 있었는데 그게 또 쉽게 셈이 가능했다.(밥을 많이 못먹었기 때문) 일 빨리 하고 밥은 먹고 일 하라고? 밥을 먹을 겨를이 없어서 못먹는 거지 안먹는 것이 아니다. 밥은 커녕 물도 겨우 마실 때가 많다. 화장실도 겨우 갈때가 많은데, 아마 간호사들의 방광 근육은 헐크의 신체 근육만큼 단련되어 있을 것이다. 환자의 input(경구 섭취,수액,영양제 등) output(대소변,구토,삽입된 튜브의 배액량 등)은 끔찍히 계산하지만(의학용어로, I/O balance) 나의 input output은 전혀 챙기지 못한다.


그래서 메르스 사태 직후 출간된 책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김현아 선생님이 쓰신 이 책을 읽으며 열광할 수 밖에 없었다.

http://naver.me/xswbFsLb


 이토록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버텼냐고?

 나는 힘든 것도 수시로 망각하는 치명적인 기억력을 가졌다. 짧은 기억력은 학창 시절 암기 과목에서 나를 힘들게 하였지만, 직장 생활에서는 꽤 도움(?)이 되었다. 맛있는거 먹고 수다 좀 떨고 한숨 자고 나면 구체적으로 뭐때문에 힘들었는지 그 기억이 아련해졌다. 힘든 것이 있으면 헬스장에 가서 '삶의 무게 보다는 이게 가볍겠지!'라고 하며 원판을 채운 바벨을 데드리프트 동작으로 들어올렸다. '엥? 삶의 무게보단 이 바벨 무게가 지금 더 무거운데..?'라며 상대적으로 더 무거운 것을 체감하고는 나의 체중과 비슷한 무게의 쇳덩어리에 삶의 고뇌를 넘겨버리고, 약간의 위로(?)를 받아 왔다. 내 몸의 노폐물과 함께 생각 순환도 이루어졌다.



 삶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죽음과 맞닿아있다. 그런데 죽음을 반복적으로 보다 보면 역설적이게도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삶의 시작과 끝은 자발적으로 택하지 못하더라도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의 내용은 본인이 선택한 대로 채울 수 있다.

 보고 듣는 것들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20대의 나, 일과 삶의 분리가 절실했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내 삶의 1/4를 넘게 차지한 '암 병동 간호사'로서의 삶, 수많은 죽음을 목격하며 느낀점, 독서 모임장, 유튜버, 작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된 이유와 과정, 나와 나를 둘러싼 이야기, 삶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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