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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욤 민지 Aug 01. 2021

죽기 직전, 가장 듣고 싶은 말은?

임종 환자를 간호하며 죽음 앞에서 삶을 생각하다

 이틀 전, 나이트 근무 출근 했을 때 담당 환자 중 한분의 컨디션이 심상치 않았다. 전날 까지만 해도 계속 눈 감고 있던 환자분이 혈압기 커프를 감으면 눈을 번쩍 뜨고 또렷하게 몇마디씩 말씀하셨는데, 그날따라 내 손길이 닿아도 두눈을 꼭 감고 뜨지 못하셨다. 위장관 출혈이 있었는지, 저녁부터 흑변(melena; 피가 위장관을 거쳐 검게 변한 대변)을 보기 시작했고, 그날 새벽에도 거친 호흡과 함께 끊임 없이 흑변이 지속되었다. 4:30am, 환자의 몸에 달린 심전도 기계는 '-' 일자(EKG flat; 영화 속 심전도를 보면 -일자가 되는 현상)가 됨과 동시에 자발 호흡이 사라졌다.



조금 더, 어떻게 안되겠어?
이렇게 아직 몸이 아직 따뜻한데.....그래도 안 돼..?



 보호자(아내)분이 내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숨 쉬고 있었는데... 내가 깜빡 잠 든 사이에 말야, 이렇게 될 수가 있어?"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며 (삶의 연장을) 간곡히 부탁을 한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장 마지막에 닫히는 감각이 청력이라고 합니다. 지금 좋은 말씀 많이 해주세요. 들으실거예요."라고 말씀드리고는 병실 문을 닫아드리고 나왔다.


 할머니의 간절한 눈빛이 한동안 계속 잔상에 남았다. 조금 더 어떻게 안되겠냐는 말이 왜 이렇게 슬프게 다가왔을까. 환자분의 연세는 81세, 아마 집 나이로 치면 83세 정도 이실거다. 옛 세대는 호적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도 많으니 85세 정도가 되셨을지도 모른다. 반백년 이상을 함께 해온 세월 앞에서도 함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임종이 곧 다가온다는 비보를 얼마 전 담당의사를 통해 들었지만, 맞닥뜨리는 죽음은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건 마찬가지다.


 2018년 2월부터 '연명 의료 결정'이라는 제도가 생겼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힘겹게 삶을 이어가는 행위 -심폐소생,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체외생명유지술 및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혈압상승제 사용 등과 같은 의료 행위-를 하지 않고 남은 여명을 편안하게 보낼 권리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이다. 말기 암환자들은 임종이 다가왔을 때 각종 기계나 약물에 의존하여 (아무래도 몸은 많이 힘든 행위들이다) 힘겹게 삶을 연장할지 여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환자가 연명 의료 중단에 서명할 때 아내도 함께 있었지만, 막상 환자를 떠나 보내실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일하는 병동 특성상, 임종 환자를 자주 마주하게 된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울음소리가 자욱한 병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 나오면서 내 눈가도 찡긋해지지만, 한편으론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도 안에서 임종하신 환자분을 보면 (그분의 삶을 다 알 순 없지만) 어쩌면 그 순간만큼은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긴 병에 효자 없다고 투병이 길어질수록 곁을 함께 해주는 사람(가족, 친구 등)들이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연락되는 보호자가 아무도 없이 홀로 쓸쓸히 삶을 마감하는 임종 환자도 보게되는데, 그럴때면 내 마음도 좋지 않다. 차가워진 환자의 손, 발의 체온이 병실 공기로 퍼져, 거친 숨소리조차 끊겨버린 임종실이 더욱 서늘하게 느껴진다.


 임종의 순간 가장 마지막에 소실되는 감각이 청력이라고 한다. 그래서 임종 순간에 꼭 전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도록 보호자들에게 안내해드린다. 문득 '생의 마지막에서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어느 환자의 아내분이 남편의 손을 꼭 붙잡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웠고, 많이 사랑해.

 그렇다. 감사와 사랑이다. 가장 흔한 말이기도 하지만 익숙한 사이 일수록 '쑥쓰러워서', '꼭 말을 해야 아나?'라고 생각하며 잘 안하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달하는 모습이 그 어느 영화 장면보다도 강한 울림을 주었다.




 그날 새벽, 그 환자분을 보내드리며 수많은 생각이 스쳐가면서 마음이 찡긋해졌지만 나는 감정에 휩쌓여 있을 수 만은 없었다. 담당 간호사는 환자가 임종하게 되면 처리해야 할 일이 많다. 주소를 다시 확인하고, 사망 진단서를 발급받아 제공하고, 퇴원 수속을 넣고, 장례식장 자리를 확인해야 하는 등의 업무를 신속하게 해드려야 고인을 평온히 장례식장까지 모실 수 있다. 수만가지 생각과 감정은 뒤로한 채, 남은 일을 신속히 처리했다.


 임종 환자를 간호하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에게 이런 물음표를 던지게 된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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