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공팔 Jul 03. 2024

"우윳빛깔 OOO!"

우리 아들 따돌림 당한 썰 푼다


아들을 무시하며 모욕적인 말을 하고 함부로 대하는 A

그 분위기 편승해서  노골적으로 따돌리는 B

이 둘의 쿵짝으로 따돌림 서사가 시작된 듯하다.




A와 몇 가지 일화를 되짚어 본다.   


#1 분위기를 몰아가는 B를 요주의 인물로 삼고 있던 우리에게 A라는 인물이 급 부상하게 된 계기다. A의 유형을 파악한 계기랄까.

스키캠프 기간 중 비가 오면서 스키를 탈 수 없게 되자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워터파크에서 놀 수 있도록 조치했다. 아이들이 워터파크를 들어가기 위해 대기하던 중 4-5명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었고 우리 아들도 그 틈에 있었다.

우리 아들을 제외한 이 아이들은 A라는 리더를 중심으로 반에서 가깝게 지내며 무리를 이루던 아이들이었다.

이전부터  우리 아들에게 '친구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말을 들어오고, B와의 잡다한 일들이 벌어진 상황이어서 내심 불안해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날 오전부터 우리 아들은 조식을 혼자 먹었고, 여러 가지로 서먹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전부터도 그 아이들  틈에 우리 아들의 포지션은 없었다.

그때 이 아이는 평소처럼 우리 아들에게,

"야 찐따! "

우리 아들은 매우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곳에 모여있던 아이들은 무리를 이루던 아이들이다. 자기편이 없다고 판단했지만 소심하게라도 반격을 시도 한다.

"넌 쓰레기..." 라고 했단다. 다른 사람의 욕에 똑같이 욕으로 되받아치는 게 현명한 방식이 아니지만, 그냥 잘했다고 했다.

그리고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이 사실에 대해 그런 말을 한적도 들은 적도 없다며 부인했다.


 #2  아들은 4학년 말이 되도록 전화기가 없었다. 우리 부부의 교육관이었고, 아들도 크게 요구하지 않았다. 가끔 외부활동 때문에 필요할 때  집에서 쓰는 휴대화를 쥐어주곤 했다. 아들이 친구들에게 소외되자, 아무래도 다른 친구들은 다 있는 휴대전화가 없는 게 걸렸다. 친구들과 소통에 장애가 있어서 친구관계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싶어서 전화기를 주고 카톡이나 브롤스타즈 같은 게임을  깔아줬다.(나중에 보니 이미 아이들은 함께 편을 짜서 게임도 하고 단톡을 통해 소통하며 친분을 다지고 있었다)

전화기가  생긴 아들은 번호를 아는 몇몇 친구들과 카톡을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  <김정은과 키스권 쿠폰>이라는 사진이 돌고  있었나 보다. 친구로부터 받은 쿠폰권을 우리 아들은 자기가 아는 친구들에게 모두 전송해 버린다. 반응이 오는 친구도 있고 읽씹 하는 친구도 있고 그냥 웃고 지나갔다.  A에게도 키스권을 보냈다.


2023년12월23일

아들- 김정은과 키스권 전송

답은 오지 않았다. 아들은 찐따라는 소리를 듣고 선생님과 면담에서 이 아이가 부인해서 본인이 제대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 아이에게 다가갔다.

애미는 참지못하고 끼어든다.

"아들, 카톡을 했는데 상대가 반응이 없는 건 얘기하기 싫다는 표현일 수도 있어. 사진이 기분 나쁠 수도 있고. 그러니 A한테는 더 이상 카톡 하지 않는 게 어때?"


2023년12월27일

A- 정신나간놈

아들- 내 정신이 왜? 난 반가워서 연락했단다 A야.


2023년12월28일

A-그래 난 널 때리고 싶어서 연락했단다 OO아.


2024년 2월 9일

A-넌 포켓몬카드 오덕이야


2024년 3월 4일

A-  OO

A- 이 사진을 봐바. 여기 니 이름이 있어. 낭만보이 OO.

아들- 그거 나 아니야

A- 응 맞아 ㅋㅋㅋㅋ

아들- 학교에서 봐 ㅋ

A- 싫어 이 삐 삐발!

(삐발은 유튜브나 아이들끼리 C발을 달리 하는 말)


잠시동안 아들이 딱히 반응이 없고 학교에서도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 같았다. A는 평소와는 다르게 우리 아들의 반응이 없자 오히려 먼저 문자를 시도했다.

친한 친구끼리야 얼마든지 나눌 수 있는 말이지만, 선생님과 상담도 있었고,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줄수 있는 관계는 더이상 아니었다.

어쨌든 고마워. 하찮지만 뭐라도 정황을 설명할 수 있는 증거를 남겨줘서.  


# 3 최근 아들이 방에서 A와 전화통화하는 것을 엿듣게 됐다.  (초등아이들은 아직 PC게임 까지는 아니고, 카톡으로 음성톡을 하며 브롤스타즈 게임을 같이 하는 게 유행인 듯하다.)


"야 OO! 너 5학년 니네반에 친구 있어?"

아들은 어물 거린다. 뭘 물어보면 대답이 느리거나 질문에 즉답을 피하는 경향이 있긴 하다.

"야 너 친구있냐고~~?"

"음...우리반 애들이 친구지.."

"아니 누.구.?"

"음.....DD?"(이 친구는 연재 "너마저.."글의 주인공으로 서먹한 관계였고, 당시 아들은 친구라고 할만한 아이가 반에 없었다)

"아~DD? 난 너 친구 없는줄~~."

이 기분 나쁜 비아냥과 악의 섞인듯한 질문은 뭐지? 우리 아들 친구가 없는 줄 알고 있었다면서, 친구 있냐고는 왜 묻는 거지? 다 알면서 본인들이 따돌려 놓고. 저런말을 비꼬며 태연하게 하다니. 그리고  본인은 우리 아들 친구도 아니면서 왜 우리 아들과 음성톡을 하며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 당장 대화에 끼여 들고 싶었다.  '야 너는 그럼  우리 아들한테 뭐냐? 게임은 왜 같이 하고 있냐? 혹시 우리 아들이 게임을 제안해도 안 해야 되는 거 아니냐? 친구도 아닌데? 너는 다른 사람한테 무례하게 말해도 된다고 배웠느냐?'라고.


#4 노래방 영상이다. 축구경기가 끝나고 친구집에 놀러 간다고 졸라대는 통에 내키지 않지만 보냈다. "엄마 B는 오늘 경기 참석 안 해~~ 그래서 괜찮아~~"

네 명의 아이들이 쪼르르 앉아있고, 우리 아들과 A 두 아이가 마이크를 들고 신호등을 신나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노래를 부르던 A라는 아이,

"야! 시끄러워!" 정색을 하며 날카롭게 신경질을 낸다.  

아들의 반응에 주목했다.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당황한 기색이 된 아들은 1-2초간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숙이고 마이크를 만지작거리다 꺼버린다. 그리고 화면만 바라보다 다른 친구에게 마이크를 넘긴다.

다른 친구들의 노래가 나오자 A는 아무 일이 없다는 듯(실제로 이아이에겐 아무 일도 없는 거지) 손으로 장단을 맞추며 노래를 즐긴다.


A는 아들에게 지속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만 그 순간만 지나가면 그 와중에도 아들이 얻는 게 있나보다.

"여보, 이 장면 나만 이상해? 내가 민한 건가? 얘는 뭔데 이렇게 주기적으로 우리 아들을 막대하며 무안을 주지? 얘는 남이 듣기 거북한 말들을 아주 자신 있게 내뱉는 재주가 있나 봐! 얘봐...마치 이 A는 함께 놀고 싶어 하는 아들의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굴욕감을 감내하는 우리 아들의 모습을 즐기는 듯 해!"


이 아이는 이런방식으로 상대를 힘들게 한다. 만만한 아이에게 본인 기분 내키는대로 감정상할 수 있는 말을 틱틱 던지며 무안하게 한다.  

 



이 두 얼굴을 가진 매력덩어리 A 때문일지 모르겠다. 굳이 우리 아들이 무리에 끼고 싶어 질척거렸던 이유가.

A는  매력 있는 아이다. 이 아이는 인기가  많고, 학업에 충실하고, 축구도 잘하고, 키도 또래에  비해 큰 편으로 외모에서 자신감 있는  분위기를 풍긴다. 그리고 눈치도 빠르다. 잘못했을 경우에는 혼날 것을 염려해서 엄마들에게 말하지 말자, 선생님께 말하지 말자는  공모를 주도해서 하기도 한단다. 오픈클래스 시간엔 손도 잘 들고 대답도 또렷하게 하는 모범적인 아이. 자세히 보니, 외모에서  형님 같은 점잖은 근엄함도 보였다. 똑똑하기 때문에 B처럼 함부로 못된 말버릇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우윳빛OOO!" 레크레이션 때 노래를 부르러 무대에 올라 선 이 아이에게만 추앙되는 구호.

소외된 우리 아들을 우듬지 왕좌의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알파 침팬지 같달까? (이 아이의 호불호의 신호는 일종의 디렉션이다. 리더의 의도에 따라 분위기는 묘하게 그쪽으로 흘러간다. 아직 본능 상태에 가까운 아이들의 반응이 좀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A는 아이들의 서열에서 최고권력자 아이들에게 보이는 특성을 잘 갖추고 있는 인기 많은 분명 매력이 있는 아이다. 에효.. 빠질 매력이 따로 있지. 상처받는 와중에도 A에 대해 딱히 나쁜 말을 한 적은 없는 것 같다. 우리 아들은 A의 매력에 빠져 함께  무리에 껴서 같이 놀고 싶어 한 건 아닐지. 어쩌면 우리 아들도 권력욕구가 있는 아이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함께 힘을 구가하고  싶었지만 이만저만한 일로 예상치 못하게 도태되어 주변만 어슬렁거리게 된 침팬지. 묵묵히 무안한 상황을 치르면서까지 관계를 맺고 싶어 하고, 피해  상황을 엄마에게 알리는 와중에도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하는 이 아이. 이 무리에 있었다면 우리 아들도 감각없이 가해에 가담하거나 방조했겠지.


학교생활에서 이 아이들과의 이야기는 사건이라기보다는 쌓여가는 일화들이다. 그렇기에 문제제기가 힘들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어라 좀 이상하다' 싶은, 가볍게 여기려면 얼마든지 간과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 반복되다가 아직 여물지 못한 아이들의 마음을 시나브로 병들게 하는 일상의 폭력들.
아직은 보호와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의 일상에 침윤해 있는, 부모인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넘어서는 속수무책의 문제들에 나도 좌절을 경험한다.



이 아이들은 나쁜 사람일까 좋은 사람일까? 옆 단지 아파트를 지나다가 쿵쿵 쾅쾅 발로 뭘 차는 소리와 함께 거나한 욕지거리를 장난삼아 주고 받는 중학생 무리를 봤다. '아니 불량학생들이잖아..우리동네에도 저런애들이 있다고? 애들 순하고 공부하느라 바쁘다던데, 저 교복은 어디지?' 며칠이 지나 평소 폐지를 모으고 다니시는 할아버지의 리어카가 그날따라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거대했다. 힘에겨워 보이는 할아버지 옆이 소란스럽다. 교복입은 아이들이 다가서서 뭐라뭐라 하더니 자기가 돕겠다고 하는 모양이다. 그때 그아이들이었다. 내가 나쁜 사람으로만 생각했나봐. 뭐 비슷한 구전들,, 시장 욕쟁이 할머니가 알고 보니 장사해서 번 돈을 어려운 이웃이나 학교에 꾸준히 기부하고 있었다는 선행들.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아야겠다 싶었다. 이 아이들은 우리가족과 상황이 안좋게 엮어졌을 뿐,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이고 이 아이들만의 빛나는 구석을 볼 기회가 내겐 없었을 뿐이라고.

언젠간 아이들도 일상의 폭력이 상대를 아프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는 때가 오리라 기대해본다.

그럼에도, 이 우윳빛깔의 어린이가 도덕성을 키우는 시행착오 과정에서 우리 아들이 희생의 도구가 되는 것 같아서 매우 불쾌한 어른답지 못한 울분이 치오른다. 아무래도 나는 덜 컸거나 나쁜사람인 것 같다.


"여보, 나 요즘 마음속으로 108배 해~ 기도하는 것 같이."

"실제로 하지 그래. 다이어트에 도움된대."

"그건 관절에 안좋을 것 같아."

"뭘 기도하는데?"

"그 아이들을 덜 미워하게 해달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리면서 절해."

남편은 아직도 놓지 못했냐며 표정으로 답을 남겼다.





이전 07화 언니, 별일 아니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