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 사연 한번 보내본 적 없는 내가 이런 방식으로 내 사연을 대중과 공유하게 될줄은...우리아드님 덕에 신기한 경험 많이 한다.
아들문제로 고민이 많았다. 우리아이에게 어떻게 얘기해줘야 할지. 고학년 아이들의 관계에서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는데, 부모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길에서 스치는 중고등학생을 붙잡고 고민 상담을 하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마음이었다. 그러던 중 아이의 전반적인 학교생활에 도움을 받고자 현직 초등학교 교사분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을 구독했던 게 기억이 났다. 이분이라면 내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담임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학교와 반 친구들과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오직 우리 아이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상담해 주는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있던 초등교사안쌤 계정에 들어가서 다이렉트메시지를 남겼다. 그간의 일들과, 조치한 것들, 헛수고로 돌아가버린 학교 선생님 상담 내용, 그 부모를 만나는 것은 어떤지, 새 학년 선생님께 4학년때이 일을 대략적으로라도 알려드려야 하는지 등을 최근 벌어졌던 일들과 함께 메시지로 남겼다. 답이 올 거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이런 고민들은 너무 흔하고 많은 부모님들이 그분께 상담을 요청해 올 터였다. 답장이 왔다.
수업시간이든 쉬는 시간이 든 학교에 오면 친구들과 함께 합니다. 6월이면 모든 학생들의 친구 관계가 정착화되었을 것이고요. 그룹을 형성한 아이도 있고, 혼자 지내는 학생도 있을 테지만요. 과연 우리 아이의 친구관계는 건강한 것일까요? 꼭 한번 파악하고, 해당한다면 꼭 조치를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의 친구관계는 곧 학교생활의 전부가 될 수 있습니다. <초등교사안쌤 tv>
이 채널은 <초등교사안쌤 tv> 라는 채널로 현직 초등교사 안상현 선생님께서 초등학생 부모님을 대상으로 학교생활전반, 찬구관계, 공부 등 현직 교사로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따금씩 부모고민 상담 코너를 통해서 학부모 고민을 공유하고 선생님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다.
이번에는 내가 다이렉트메세지로 보냈던 사연을 정리해 채널에서 소개하셨다. 아무래도 따돌림 문제는 우리 아들 학급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메시지에서도 유튜브채널에서도 선생님께서는 크게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1. 아이가 건강하지 않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임을 강조하신다. 무리에 끼어서 함께 놀고 싶은 마음 때문에 비굴함을 참아내며 상처받는 친구들이 우리 아들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사실은 그렇다. 친구들과 어울려 함께 놀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 어린이 마음이지. 무리 안에서 자기들끼리야 어떨지 모르지만, 그 무리는 우리아들에게 명백히 유해했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상처받는 관계는 친구도 가족도 연인관계에서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들이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2. 아이와 어떻게 진행할 지에 대한 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 아이들과의 관계를 유지했을 때와 관계에서 벗어났을 때 각각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장단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 필요하단다. 부모의 일방적인 개입으로 아이가 원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3. 이런저런 조치를 취하려 했음에도 우리 가족의 시도에 전혀 효과가 없었다. 이럴 땐 선생님께 '학교폭력위원회의 도움을 받는 것도 고려 중이다' 정도로 표현해 준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대응을 해 줄 것이라 말씀하셨다. 선생님 선에서 해결이 나지 않게 되면 학폭 진행과정으로 발전하게 될 텐데, 그래도 손해 보는 것은 없다고. 상황을 정리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리 아들의 상황에서는 학교폭력 신고가 가장 깔끔한 방식이라고 조언하셨다. 사안조사도 분명하게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거짓말도 드러나고, 상대 아이들 부모도 자녀의 상황을 파악해서 가정에서 조치도 취해질 수 있다고.
친구들 간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아들의 마음에 중점을 두느라 정작 중요한 부분을 놓쳤던 것 같다. 관계가 무슨 소용인가, 건강하지 않은데.
그리고 한 가지, 나는 지금도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대응에 원망과 아쉬운 마음을 버릴 수가 없다. 안쌤도 마찬가지였지만 상담 한 모든 경로에서 '학부모끼리의 만남'을 추천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해한다. 그렇다면 선생님은 상대방 아이의 부모님께 '아이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현재로서 사실을 알 순 없지만, 피해받고 있다고 하는 아이가 발생한 상황이니, 가정에서 이야기 나눠 보시는 것이 좋겠다' 정도라도 알렸어야 했다. 이건 그저 피해자 부모의 욕심일 뿐 일까. 서로 존중하자며 아이들끼리 OO님으로 호칭하도록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존중하는 교실 분위기를 만들겠다던 선생님 새 학기포부가 공허하다. 결국은 아이가 선생님과 상담한 이후에도 일들은 벌어졌다.
꽤 많은 아이들이 친구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리가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것들 예를 들면 체육시간 팀을 꾸릴 때 가위바위보로 팀을 정하는 일이 몇몇 아이들에겐 공포의 순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다. 놀이에서도 인기가 많거나 주도적인 아이를 중심으로 가위바위보가 진행되고 순서대로 한 명씩 데려가는 방식은 종국엔 인기가 없거나 운동을 못하는 아이가 마지막에 남게 되는데, 마지막에 남는 아이들은 과정 내내 조마조마해하고 괜한 자격지심을 느끼며 불안에 떤다. 반복되는 이런 감정들이 무리생활의 상처로 남게 된다.
아이들 관계의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지금 어른들의 문제가 학교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기처럼 느끼고 사는 서열, 세력, 권력의 불균형에서 오는 일방적인 피해 사례들을 사회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결국 아이들도 본인들 상황과 수준에서 가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보다 빈번하고 자연스럽게.
어느 날 사리분별 명확한 우리 딸이 화가 난 듯 말한다.
"엄마 도서관 아침 돌봄에 GG언니 있잖아? 그 언니는 나랑 잘 놀다가도 자기 맘에 안 들면 1학년 아이랑 다른 언니를 모아서 편을 먹어. 그리고 나랑 못 놀게 한다. 오늘 또 그랬어. 그래서 나는 MM랑 놀았어. 얼마나 다행이야. 하마터면 MM이도 넘어갈뻔했는데, 내가 재밌는 놀이 하자고 꼬셔서 같이 놀았다니깐. 휴!"
무리 짓고 따돌리기는 여자아이들 관계에서 좀 더 두드러져 보인다던데, 이것은 따돌림 2탄의 서막일까. 불안이 엄습하다가도 이내 거친다. 사리분별 명확한 우리 딸은 상황 판단도 잘하고 말싸움해서 논리적으로 이기는 게 재밌다고 하는, 내 보기엔 정치를 할 줄 아는 아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나는 조금 알 것 같다. 우리아들이 어떤 성격적 결함이 있기 때문에 따돌림당할 만한 아이가 된 게 아니었다. 따돌림이란 게 무리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우연한 계기로 휘말리다 보니 당하기도 한다는 걸. 그리고 대부분의 우리 아이들은 피해자가 되기보다는 가해자가 되어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도.
선생님과의 상담은 도움이 됐다. 교직 경험을 통해 명확하게 사건을 가늠할 수 있는 직관력으로 답변을 주셨다. 누군가 적확하게 사실을 짚어 주는 것으로도 출구는 생긴다. 그 아이들의 못된 행동 교정 이전에 건강하지 못한 관계로부터 탈출.
최우선은 건강하지 않은 관계에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무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 아이가 그 무리의 유해성을 멀리서 관망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아들이 <고전의 숲>이라는 책을 보다가 책을 뒤집어 탁 내려놓더니 한숨을 쉬며 말한다.
"역시 사람 셋이 모이면 없는 죄도 만들어 낸다더니..." 마치 남의 말을 하듯.
무리가 개인을 어떻게 고립시킬 있는지 몸소 체험한 아들은 본인의 처지를 이제 좀 거리를 두고 지켜볼 수 있게 된 건가?
안상현 선생님과의 상담은 보내주신 메시지나 유튜브 채널 속에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보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선생님의 진심이 보여서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무덤덤하게 말씀하셨지만 '행복하시길 바랍니다'라는 인사는 오랜만에 들은 온기 있는 말이었다.
그간 독감에 걸리고 연주회 준비로 바빠서 연재일을 계속 미루고 있었고, 아이의 따돌림 문제 연재는 한편 정도 더 쓰고 마무리해야지 싶었다. 시간이 흘렀고 아들도 좋아졌고, 이제 남편말대로 놓고 살아야지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