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년이 되고 아들의 교우관계는 좋아진 것 같다. 그래 보인다. 아들을 따돌리던 아이들과 분리가 되고도 불미스러운 일이 있긴 했지만(역공이다 편), 요즘은 친구에 관해 긍정적인 이야기를 종종 한다.
5학년이 되고 방송부 동아리에 합격해서 방송부 오빠도 됐다. 나름 방송 멘트도 고민해 보고 선곡표도 짜보며 방송부원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다. 혹시 점심시간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서 방송실로 숨어버리는 건 아닌지 하는 엄마의 노파심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반에서는 아들을 따돌리던 아이들 무리 중 한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와는 약간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불편한 친구와 거리를 두는 것에 적응한 것 같다(사실 이 아이는 무리에 있을 뿐 아들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하진 않는다). 4학년 때 같은 반에서 잘 지냈던 친구와 새롭게 알게 된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고, 친구집도 종종 드나들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친구들에게 우리 아들이 베프는 아닌 것 같아 묘하게 섭섭함이 일기도 하지만, 뭐 어때, 아들이 상처받지 않고 친구들과 함께 있는 동안 즐거워하는 것으로 족한다.
다행히 1학기 생활 기록부에도 희망적인 메시지가 등장한다.
아침에 오면 제일 먼저 선생님께 인사하고 하루동안 학급에서 할 봉사활동을 확인하거나 주변 친구들과 즐겁게 이야기하며 돌아다니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학생임. 밝고 활기차며 명랑한 것이 큰 장점으로 장난기가 다소 있으나.... 성별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겨하며 특별히 다 같이 힘을 합쳐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둠별 과제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임.(좋은 것만 골라 발췌...)
내가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시고 배려해 주신의견은 아닐지... 교우 관계 속에서의 아들의 강점을 짚어 주셨다. 우리가 보기에도 아이는 사교성도 있고 침투력도 있고 긍정적인 아이다. 4학년을 제외하곤 친구들을 좋아하고 다정하고 밝은 아이라는 평을 종종 들어왔다. 다시 되찾아 가는 것 같다. 긍정적인 기질을 타고난 게 따돌림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전문가들은 말한다. 아이가 친구가 많거나, 리더역할을 많이 하거나, 사교성이 있는 것을 두고 관계에 문제가 없다고, 사회성이 높은 아이라고들 착각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은데, 엄밀하게 말하면 사회성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 꾸준히 관계를 유지할 줄 알고, 친구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유연하게 대처하고, 서로의 욕구를 조율할 수 있는 능력이 사회성이라고 한다. 건강한 사회성, 이를 테면 친구와 의견차이가 나거나 타툼이 생기거나 공격이 가해질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법은 우리 아들도 더 배워야 하는 기술이다. 사실 사회생활 할 때 돌려 까기 기술을 시전 하는 상대방에겐 나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우물쭈물 그냥 넘어가 버리고 말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껄끄러운 상황이 생길 때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모두에게 힘든 일.
따돌림이나 학폭 피해 경험이 있던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비슷한 반복 경험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리기도 해서 불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미리 알았으니, 부모인 우리가 눈여겨볼 수 있겠다고 좋게 생각하기로 한다. 아들입장에선 예방주사를 맞는 것이니, 이참에 주변 상황 파악하는 법도 좀 배워보고, 해로운 관계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했다고 생각하자며 독려했다. 관계는 어른도 힘든 일이니 너 혼자만의 문제는 아닌 거라고.
그나저나 아들의 교우관계는 좋아지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
우리 집에 손님이 오셨다. 아들의 사춘기.
들숨과 날숨으로 반항을 말하다
요즘 들어 아들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어떤 돌풍 같은 것이 감지된다. 반항, 불평, 그것을 담은 동태눈빛...
가끔은 이런 말도 한다.
" 우리 집은 독재야. 엄마의 독재 세상이야."라는 둥...
" 어른들은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취급해서 자기 마음대로 다루고 만드려고 해."라는 둥...
" 엄마가? 참내.. 그래서 아들아. 엄마도 내 성에 차게끔 너를 다뤄 줄까? 어디 한번 우리 아들도 엄마아빠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져 볼래?" 하고 나는 억울하다는 듯 으름장울 놓는다.
아들도 본인 엄마아빠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듯,
"아 그럼 안되지이~~." 한다.
그리고 종종 나는 말한다.
"아들, 너는 노예가 되어선 안돼. 아무래도 너의 뇌는 호르몬의 장난에 놀아나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거에 휘둘리지 말자..."
우리 아들이 말을 안 듣는 것은 아니다. 하라는 것은 다 한다. 학원을 다녀와서 밥을 먹고 씻고 과제하라고 하면 하긴 하는데,
뭔가 과제를 가지러 가는 뒷모습 걸음걸이에는 무기력과 투덜거림이 발산되고, 이상하게 고개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목뼈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닐진대, 고개는 왜 저래?? 하. 맘에 안 든다. 목욕탕 스팀 사우나에서 뭉근히 나오는 희뿌연 안개처럼 반항이 그의 들숨과 날숨,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온다.
주식은 스테이크와 라면
다른 집은 먹성이 좋아서 하루종일 밥만 해다 바쳐야 한다는데, 우리 집 말라깽이 아들은 잘 먹지도 않고 오로지 스테이크와 라면만 먹는다.
아침에도 스테이크, 저녁에도 스테이크. 과일이며 채소는 절대 입에 대지 않겠다는 소신도 있다. 쌀밥과 소고기만, 먹는다. "아들, 이러다 너 혈관 질환 생겨..." 말하면, 유산균과 비타민 영양 보충제를 주섬주섬 먹는다.
"엄마 나 학원 쉬는 시간인데, 뭐 좀 먹고 학원 다시 들어갈게."
"아들! 분식집에서 김밥이나 돈가스 먹어. 사장님께 돈 달아 놓은 거 남았어."
멀리서 친구가 외친다.
"하하! 너 불닭! 불닭이잖아~~~~~"
이 놈, 편의점에서 또 컵라면 먹나 보다.
"아들! 삼각김밥이라도...."
옷은 왜 그 모양? 너 관종이니?
가끔 학교에 해리포터 망토를 두르고 간다. 마법지팡이는 휘두를 때 위험할 수 있으니 두고 가라고 간신히 저지시킨다. 또 가끔은 김삿갓 문학관에서 산 기념품 삿갓을 쓰고 가려고도 한다. 남한테 해 되는 것이 아니니 그냥 둬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인데, 그래도 이걸 말려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가뜩이나 약간 괴짜인 구석이 있는데, 더 이상해 보일까 봐 조마조마하다. 본인만의 특별한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고, 개성 있게 돋보이고 싶은 10대의 치기로 보인다. 관심을 받고 싶은 것도 있는 것 같고. 하. 나도 모르겠다. 다섯 살 핑크 공주님 보다 삿갓 쓴 10대가 더 창피하다.
배은망덕한 놈
감히 내가 아이를 둘이나 낳았다. 아이들이 생기기 전엔 가족이 단란하게 휴일을 보내는 안정적인 온갖 종류의 이미지를 생각했었다. 나와 내 사랑하는 배우자를 닮은 아이라니! 신비로워!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깨졌다. 겨우 먹이고 재우는 일만으로도 눈물 흘려야만 했다. 아이가 사회생활 시작하면서부터 아들 가진 죄인으로 산 세월은 또 어떤가. 목이 쉬어가며 밤마다 읽어 준 책은 몇 미터쯤 될까?
남편의 눈물로 말하자면, 10년 세월 동안 남편이 우는 건 두 번 보았다. 모두 아들 덕이다. 첫째는 아들의 심장병을 진단받고. 둘째는 아들이 친하다고 생각했던 친구에게 혼자 생일 초대를 받지 못했을 때다(알고 보니 혼자는 아니었다). 가뜩이나 따돌림을 당하는데 친구 생일 초대까지 못 받은 그 마음이 어떻겠냐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더라. 나중에 그 친구 엄마를 통해 사정을 듣고, 오해를 풀고 아들이 파티에 초대됐을때 남편은 '역시 엄마가 최고'라며 '엄마가 다 해결해 줬다며' 격하게 추켜 세워주며 세상 모든 근심 사라진 듯 기뻐했다. 친구생일 선물 사는데 함께 가주기도 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아니 이렇게, 눈물을 바쳐 물심양면으로 키워낸 자식이, 이젠 엄마가 거짓말을 한다며 반항하고, 아빠말은 시큰둥하게 흘려버리는 무례를 범하는 모습을 보니, 진정 배은망덕이 따로 없다.
한숨 돌렸다 싶으면 또 다른 게 터지고, 이것만큼 큰 문제가 없나 보다 싶은데, 또 그것 보다 더 큰 문제로 보이는 것들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 같다. 느슨한 삶을 살아온 것 같은데, 또 그간에 해치워버린 이벤트들을 생각하면 바쁘게 살았구나 싶다.
지금은 안 겪어도 될 일을 겪어서 즐거워야 할 유년시절에 얼룩이 생기게 된 것 같아서 엄마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사춘기 치기 어린 아들의 반항과 무례함을 고민할 수 있게 된 것이 감사하다. 보편적인 것, 누구나 겪는 열병 같은 것은 남들처럼 (물론 그냥 지나치면 땡큐지만)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행인 건 아직까지 아들이 너무 귀엽다. 잘 때는 또 엄마한테 파고들어서 예쁜 짓도 한다. 지금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애잔하기도 하다. 이제는 사춘기 아들을 지켜보며 속 터지지만 참을 인을 실천하는 엄마의 역할을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엄마가 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엄마라는 역할이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아이가 성장하는 변곡점에 따라 부모와 자식 간의 상호교류와 부모의 역할도 달라져하는데, 그 변화에 내가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과연 내게 자식을'지구별 위의 동행자'로 여기자는 박노해 시인의 말대로 살아갈 의지와 능력은 있는 걸까? 분명한 건 점점 아이에게서 내가 차지하는 포션을 줄여가야 한다는 것. 이번에도 경험했지. 아이의 문제에 내가 개입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여보 나는 우리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버거웠던 것 같아. 산소포화도 60(보통 98-100)인 아이를, 언제 잘못돼도 이상하지 않을 아이를 지켜보며 집안에서 홀로 있었을 때도 난 너무 무서웠고, 또래한테 따 당해서 혼자 섞이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괴로웠어. 그리고 아들의 그 힘든 마음을 내가 온전히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자괴감도 들어. 우리 아들이 나한테 너무 어려운 과제 같아."
"너무 잘 키우려고 노력하지 마라."
"하! 그래.... 여기 현자가 계시네..."
"내가 말만 잘하지...?"
[내겐 약간 부담스러운 그] '우리 아들 따돌림 당한 썰' 연재는 마치려 해요. 느슨하게 연재를 하며 생각도 정리하고 치유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우리 아들의 이야기는 아이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례 중 하나예요. 요즘 아이들 사이에는 이런 관계 문제도 있구나 하고 스치고 넘겨주세요. 함께 마음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삶엔 아들만 있는 게 아닌데, 아들의 아픈 이야기를 하다 보니 브런치가 좀 어둡네요. 앞으로 제가 읽은 것, 논 것, 관심 있는 것들을 늘어놓으며 브런치 생활을 연명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