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도 7세부터 사 모으기 시작한다. 카드 낱개 5장 묶음에 2000원, 카드 낱개 5장 묶음이 20~30개 세트로 3~4만 원가량이다. 카드의 희소성이나 인기에 따라 값이 다른 것 같다. 이게 한 번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개미지옥이다.새로운 시리즈가 계속 출시된다. 아이들은 각자 가지고 있는 카드를 뽐내기도 하며 교환도 한다. 희귀 카드는 당근에서 한 장에 비싼 값에거래되기도 한다. 제일 비싼 카드의 온라인 거래가가 1000만 원 호가하는 것을 본 적이 있고, 진정 오래된 카드 한 장이 경매가로 몇억씩 하는 경우도 있다고 아들은 전한다.
카드에 부여된 타입, 에너지레벨, 기술을 이용해 일종의 배틀을 한다. 한편이 불타입을 내면 상대편이 물타입으로 맞서는 것... 모르겠다 나는...
포켓몬 카드 수집도 이제는 한물 간 유행이지만 우리 집에선 현재 진행형이다. 엄밀히 수집이 아니라 게임.
아들 7살부터 지금까지남편은 아들의 취미에 적극 동참해 게임메이트가 돼주었다. 나중엔 본인이 하고 싶어서 닌텐도 하는 아들을 굳이 꽤내어 게임을 하자고 한다.
숙제를 다하고 취침 전 게임 한판이 하루의 루틴이었다.
아쉽게도 아들 주변에는 게임을 할 줄아는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도대체 이 아이들은수집한 포켓몬 카드로 뭘 하는 걸까? 놀이터에서 돗자리 펴고 게임판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 동네는 아닌가 보다. 어쨌든 우리 집 둘은 성실하게 루틴을 지키며 카드와 액세서리(게임판, 주사위케이스 등..)를 사모으며 충성도 높은 고객이 된다. 참고로 시중에는 포켓몬카드 짝퉁이 돌아다니는데, 단순 수집에는 관계가 없지만 배틀할때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된다. 특히 공식경기에서 사용하면 경기에서는 자동 패이고, 리그에서 퇴출이라고 한다.
이윽고, 아들이 3학년 말쯤되니 아들의 포켓몬카드 게임 능력치 수준이 꽤 올라갔다. 우물 안에서만 안주할 수 없는 것. 이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할 때임을 판단한 아버님께서는 우리 아들을 뽐내 볼 대회를 알아본다.
첫 배틀 경험
도곡동 <듀얼샵>이라는 곳이다.
우리 가족은 이곳에서 신박한 경험을 한다.
이곳은 도곡동 빌라촌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음... 여기가 맞나...?' 계단으로 내려갈수록 지하의 습하고 음침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영화 <기생충>이 간접체험이라면, 이건 직접체험이다.
미닫이 문을 연 순간 낮은 천장에 보이는 백색 형광등. 담배 피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필히 누군가 담배 한 개비쯤 꼬나물고 있어야 할 듯 뭔가 희뿌옇고 자욱하고 침침하다. 느낌이 왔다. 여긴 필시 덕후들의 아지트다.
"여보... 여기 거기 있잖아.. 그... 그.. 뭐지.. 그 '하우스' 같아!!!!"(귓속말입니다)
아니 여기서 포켓몬 카드게임을 한다고? 화투말고?
40명 정도가 모여있다. 초등학생은 4명?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이 좀 많았고, 4050 대 중년층도 몇몇분 계셨다. 연령층이 높고 다양하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아들이 연습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디올백을든 엄마와디올원피스를 입은 11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온몸으로 경계를 표하며,미간을 좁힌 채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여기가 맞... 나...?'(나도 알지 그 마음) 이내 잔뜩 화가 나서 화를 뿜어대는 디올백 엄마는 말한다.
" 허억!.......(한참을 동그란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 야! 여기 도박장 같잖아! 왜 혼자 이런델 신청했어!!! 카드 아무거나 하나 사가지고 빨리 나가자!"
거친 그 발언은 그곳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열혈 덕후님들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례이긴 했다. 너무 큰소리로 아이에게 무안을 주는 것 같아서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는데, 도박장이라는 디올백 엄마 말이 찰떡 같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고, 그 감출 수 없는당혹감이 너무 공감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이지그곳은디올백과 디올원피스는 가당치 않은 장소다. 이건 너무나 시트콤 같다 ㅋㅋㅋ
(이런 분위기 카드샵은 내가 모르는 여러 곳에 숨어있는 듯 하다. 카드를 구하러 대구에서도 이런 분위기 샵에 갔었다)
디올 모녀의 한바탕 소란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배틀장 열기는 뭉근히 달아오른다.
포켓몬카드게임에 대한 내 인식은 이곳 방문 후완전 호(好)로 전환됐다.
참가자 모두 점잖았다. 배틀 매너도 좋고 나이차 상관없이 존대한다. 젊은 남자애들끼리 게임을 하더라도 욕설도 들리지 않는다.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게임 시작 전 서로 이름을 통성명한다. 모두가 게임예절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과 배틀하시는 중년 남자분 께서는 어린 우리 아들의 미숙한 부분을 차근차근 알려주시기도 했다.
여기 플레이어들은 배틀력이 10년 이상은 돼 보인다. 아들을 상대해 주신 분 점퍼 호주머니 속 포켓몬배틀카드 덱이 사뭇 귀엽다. 담배가 아니라, 카드 덱이다.
첫 배틀 경험 이후로 우리 아들과 아버님은 여러 카드샵을 낭인처럼 투어하고 종국에는 역삼에 있는 <카드냥>이라는 포켓몬코리아 공식 인증 카드샵에 터를 잡는다. 아들은 카드샵의 제안으로 공식카드샵 역삼점 주니어 대표선수가 된다. 잘해서가 아니라 자주 갔더니 감투를 씌워줬다.
첫 코리안리그 참가
포켓몬코리아에서 공식적인 전국규모의 대회를 열었다. 우리가 안 갈 수 없다. 한국 공식 경기에서 순위권에 드는 플레이어에게 해외 대회 출전권을 부여한다고 한다.(일본 말고 다른 나라에도 덕후들이 있다고?!).
첫 경기 이후 아들과 아버님은 주말마다 몇 번의 비공식 경기투어를 했다. 이번 전국대회에서 놀란 부분은 규모에 있었다. 아니, 포켓몬카드 게임 덕후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코엑스 박람회장이 카드경기를 위한 테이블로 꽉 찼다. 진행요원도 꽤 많고, 경기의 부정을 막기 위해 경기요원들이 곳곳에 배치된다.
어른과 주니어 급으로 나눠서 치러지는 토너먼트전 경기다.
아들은 이날 승전율이 꽤 좋았다. 아무래도 아저씨나 형들 보다는 또래끼리 하니깐 자신감이 더 붙었나 보다.
보라! 저 아쉬움의 손짓을...
요즘 아들의 단골은 용산 아이파크몰에 있는 카드샵이다. 여기는 아들만 경기장에 넣어 주고, 우리는 딸과 쇼핑하고 키카에서 시간을 보내기 좋다.
어느 날은 어떤 형님과 승부겨루기가 오래 지속됐는데, 우리 아들 경기판 주위로 삼삼오오 경기관전을 하러 모여든다. 이목이 집중되는 이순간 아쉽게도 아들은 졌다.
(이 장면은 우리 아빠가 다니던 어르신들 기원 풍경이다)
보라! 안타까워하는 저 손짓!
경기가 끝나고 형님들은 우리 아버님께
'꼬마가 정말 잘해요~'라고 격려하고 칭찬해 준다. 훈훈하다. '피카츄라이츄파이리꼬북이 우리는 모두 친구다!' 우리 아들은 형님과 승부가 힘들게 이어진 것 차체에 자부심도 생기고 게임에 의욕도 생긴 듯하다.
포켓몬카드 게임의 진입장벽
카드게임을 온전히 익히고 재밌게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게임규칙을 익히고 카드 덱 만들기를 배워야 한다.
다른 놀이에 비하여 공부할게 많다. 이게 가장 큰 진입장벽이다. 포켓몬코리아에서는 카드게임규칙을 가르쳐 주는 수업도 있다.
카드덱을 어떻게 짜느냐도 승부에 큰 관건으로 작용한다. 덱은 배틀에 참전할 무기와 선수의 구성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팀을 꾸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