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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공팔 Jul 16. 2024

역공이다

우리 아들 따돌림 당한 썰 푼다


점심시간 2반과 3반 축구경기. 2반에는 우리 아들이 있었고, 3반에는 막말하는 A와 따돌리는 B 환상의 콤비들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축구에서 아이들 간의 감정싸움이 있었고. 3반의 B는 축구 경기하는 동안 비아냥 거리며 놀렸다. 기분 나빠진 아들은 경기 종료 후 2반 친구들과 돌아오는 길에 욕을 한다. " 3반 X밥들이야." 직접 그 아이들을 향해 발설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들렸다. 반에서 이상한 기류를 의심한 선생님께서 우리 반 친구에게 사건을 설명 들으셨는지. 우리 아들은 영문도 모른 (어떻게 아셨는지는 아들도 모른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선생님께 불려 갔다. 선생님은 3반의 B도 불러내셔서 B에게 먼저 사과를 시키신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 시간 B가 선생님과 우리 아들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우리 아들에게도 부적절한 매너를 한 것은 잘못이니 사과하라고 하셨단다. 아들은 서로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사과하고 마무리 됐다.

축구경기에서의 감정싸움은 선생님의 중재 과정에서 B가 우리 아들과 다른 친구에게 1차로 사과하고, 우리 아들이 2차로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공식 종결되는 듯했다. 별일 아니었다. 축구하며 감정싸움이 생기고 서로 기분 나쁜 말을 주고받은 그런 상황이다.




하교할 때 아들이 신발을 갈아 신는데, A와 다른 친구가 아들에게 다가온다. 'B가 운다. 네가 가서 사과해야겠다.' 아들은 기가 차서 별말 안 하고 자리를 피한다.

편의점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중 전화 한 통이 온다.

A는 말한다.

"우리 너 고소할 거다. 너 X 됐어. X신아."

"고소하려면 해. 나는 잘못한 것 없어. 근데 너 뭐라고 했냐?"

이때부터 아들은 녹음기능을 킨다.  


녹취 #1

A- 야. 오케이. 알겠어.
아들- 너 방금 전에 뭐라고 했죠?
A- 저요? 저 아무 얘기 안 했어요.
아들- 네가 X신이라고 했잖아.
A- 저 X신이라고 안 했어요.
아들- 했어. 내가 들었어 미안하지만 녹음 키고 있거든 친구야?
A- 어?
아들- 친구야 녹음 키고 있었거든?
A- 진짜 그만해.. 아 오케이 알겠어... 그니까... 알겠어. 지우는 대신 내가 너
아들- 내가 죽을 때 너도 같이 죽는 거야 친구야. 나 녹음 키고 있었어.
A- 알겠어. 미안해 제발. OO아. 그만해.
아들- 이력서에 남기고 나랑 취직 못하고 죽을래 아니면...
A- 알겠어. 오케이. 오케이. 우리 그럼 협상을 하자. 나도 아무것도 너한테 발설을 하지 않을 테니까. 너도 그 녹음 파일 지우고 이제 우리끼리 아무 일도 없었던 일로 타협을 하자 오케이?
아들- 응 오키.
A-너도 그거 지워라. 어쨌든 너 그 고소하는 건 어떻게 할 거야. 내가 좀 도와줄까?
아들- 오케이 나 좀 도와주세요.
A- 내가 최대한 한번 도와줘볼게. 끊어. 진짜 지워.


<1시간쯤 지나 다시 전화가 온다. 녹음기능을 킨다>

녹취 #2

A- OO아.  
아들- 응 A야.
A- 녹음파일 지웠지?  
아들- 응 지웠어.  
A- 진짜로? 목숨 걸고?
아들- 어.. 지웠어.
A- 오케이. 그럼 어떻게 됐는지 내가 알려줄게. MM가 MM어머니 누구인지 알지?  
아들- 어 MM어머니 누구인지 알지. 어? 아니 근데  MM은 아는데 누구셔?
A- MM어머니가 학부모 회장이거든.
아들- 응   
A- 근데 B가 그거 MM한테 말해서,  MM가 이른다고 했거든 자기 엄마한테. 그래서 내가 최대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애들이 고집이 너무 쎄 가지고 못 꺾었어. 미안하다. 어떡하냐?
아들- 그럼 나도 복원할게.  
A- 야 뻥이야 뻥.
아들- 응 그러면
A- 녹음파일 일단 지운 거  맞지?
아들- 어 진짜 지웠는데.(지우긴 애초에 없는걸)
A- 진짜 절대 복구 못하는 거 맞지?
아들- 어.
A- 그럼 내가 한 번만 더 물어볼게. B한테. 그래서 화 풀어줄 수 없냐고 물어볼게. 너 B 연락처 있어?
아들- 아니.
A- 내가 연락처 줄 테니까 사과를 한번 해봐.  
아들- 응 근데...
 A- 사과를 하면 B가 풀어질 수 있을 것 같아.
아들- 어어....
A- 나도 거기까진 안 가려고 최대한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
아들- 근데 나는 B한테 사과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A- 왜?
아들- 아니 왜냐하면 일단 걔가 먼저 나한테 우리 팀한테 뭐라고 뭐라고 말했고. 나도 그래서 정당방위로 걔네들을 비웃은 것이기 때문에 나는 B가 먼저 사과를 할지언정, 내가 B한테(먼저) 사과를 하진 않을 것 같아.  
A- B가 아까 사과한 거 아니었어? 선생님이랑 얘기할 때 사과한 거 아니었냐고.
아들- 어 사과 약간 하긴 했지.
A- B가 지금  화난 거는 네가 3반 X밥이라고 얘기한 거 그게 화났대.
아들- 그게 속상했대?
A- 욕한 거는 사과를 해야 맞는 것 같거든. (너는 지금까지 막말한 건 왜 사과 안 하니? 증거가 없어서?)
아들- 그럼 서로 사과하자.
A- 그럼 내가 연락처 줄 테니깐. B랑 한번 전화를 해보고.
아들- 응. 약속 지키는 거다. 나  지웠다. 너도 충분히 날 도와주는 거다.
A- 당연하지. 근데 내가 전화번호 줬다고 말하지 마라.
아들- 어 말 안 해. 카톡으로  연락처 보내줘.


사실 아들은 A가 욕을 할 때 녹음을 하고 있지 않았다. 욕을 들은 후에 녹음을 했는데, 직감적으로 지금이라도 녹음기능을 켜고 거짓말을 해서 이걸 이용해야 겠다고 판단했단다. 고소하면 너도 같이 죽는 거다. 역공이다.

A는 녹음파일 지우는 것에 집착한다. 그리고 딜을 한다. 내가 너 고소하는 것을 막아줄 테니, 너는 지워라. 아들은 끝까지 본인의 카드를 이용한다. 애초에 없던 녹음파일은 지웠다고 하고, 다음 통화부터 전부 녹음해 버린다.  


다음날 자신의 녹음파일때문에 애가 타는 A는 문자를 보내온다.




그날저녁 남편과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니, 우리 아들은 축구했던 3반 친구들을 대상으로(직접 그들을 향해 발설하지도 않았지만) 욕을 했는데, 왜 B에게만 사과를 해야 하지? 이것도 웃겨."

"주도를 주로 B가 할걸? 그러니 그렇지. A 얘는 지가 당한 줄도 모르는 것 같은데? 이게 우리 아들이 녹음했다고 약점 잡아서 A가 당한 거거든. 문자상으론 아직 본인들이 우위고 뭔가 봐주는 거라고 생각하네. 초등 5-6학년 정도면 그 정도로 기세 파악이 안 되나? 똑똑하면 당했다고 생각할 법 한데."

" 안 똑똑한가 보지. 계속 증거도 남기잖아. 그런 거 보면 아직 얘도 애지."

" 녹음 들어보니, 우리 아들 목소리에 자신감이 있네. 대처 잘했다고 말해줘야겠어. 우리 아들은 뭐래?"

" 이번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해서 그냥 몇 가지 대처만 알려줬지. 하.. 근데, 우리 아들도 엄마 보고 배운 거지 뭐, 이상한 문자 올 때 증거 남기고, 얘기할 때마다 엄마가 일기장에 적고 하는 거 보면서. 이게 교육적인 것인지... 아니, 어떻게 녹음했다고 거짓말할 생각을 하지?? 어떻게 실체가 없는 걸로 약점 잡고 상황을 자기 편한 대로 바꾸지? 우리 아들이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키워야겠어.. 좀 걱정도 된다."

" A가 나대다가 자기 발등 찍은 거지. 이번 일로 그래도 아들이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야 그 애들이 월요일 우리 아들한테 찾아와 주면 더 고마운 상황이지만, 아마 안 올 거다. 이걸 로 끝일 거야. 고소도 못할 거고(고소 깜이 아니니까)."

"고소? 웃기는 소리 하네. 여보 애네 정말 잘못 건드리는 거야. 일회성인 이 일로? 내가 지금까지 쌓아 둔 거 다 풀어버릴 거야. 건드리기만 해 봐. 근데, 여보 사실 A에 대한 증거는 좀 되는데, 이 B 아이는 증거가 없어. 사실 괴롭히는 거나 애들 주도하는 건 B가 더 하는 것 같거든. 우리 아들도 B가 진짜 나쁜 놈이라고 하는데 말이야."

"상관없다. 너무 완벽하게 뭔가 증거를 만들어 놓으려고 안 해도 된다. 우리가 B를 감옥에 넣겠다는 게 아니잖아. 절대로 다시는 우리 아들 눈도 못 쳐다보게 하려는 거잖아. 지금까지 정황 모아둔 것들과 기록들로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A가 코너에 몰리면 B얘기 안 할 것 같아? B도 저번에 A가 우리 아들에게 찐따라고 말했다고 우리한테 불었잖아. A가 거짓말하는 게 확실하다고. 걔네 우정인지 뭔지에 지켜줄 것들이 있을 것 같아? 결국은 다나와."



우리 가족이 정의한 이번 사건의 프레임(혹시 정말 학폭을 걸어오면, 우리도 학폭을 신청할 예정이었기에 이번 사건의 프레임을 짜 놓는게 필요했다. 일부러 가공 한것은 아니다. 이 일들은 사실이고, 사건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선생님의 개입으로 상황이 정리된 사건에 대해 분이 풀리지 않은 B와 3반 친구들 무리는 담합을 해서 우리 아들을 학폭으로 고소하겠다고 협박을 한다. 이 문제가 더 크리티컬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원래 문제가 쌓이고 쌓여 있던 B와 A는 또다시 무리를 만들고 아이들을 모아 학폭으로 고소하자며 담합했다는 지점이다. 그간의 따돌림을 방증할 수 있는 좀 더 가시적인 사건. 정작 연루되지도 않은 MM모자를 들먹이기까지 한 협박. 이번 건은 지금까지 우리가 쌓아뒀던 사건들의 연장(지속성)이기도 하고, 단일 사건만으로도 담합한 무리가(힘의 불균형) 한 아이를 향해 물리적이고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려고 협박(고의성)을 시도한 폭력으로 정의하기로 한다.



영악과 모자람의 경계선

종종 아들에게 당부했다. A든 B든 또 너를 함부로 대하거나 따돌리거나 욕을 하면 반드시 엄마한테나 선생님께 즉시 말하고, 이 아이들에게 전화나 카톡이 오면 꼭 저장해 두라고. 증명 가능한 사실들이 너를 지켜 줄 거라고. 아들은 엄마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사건의 잘잘못과 방법이 정당한가를 떠나 맨날 당하기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대처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좀 더 솔직해 보자면, 걱정되기도 하지만 기특하다는 마음이 더 지배적이다.

친구랑 통화 중에 자기에게 욕을 한다고 바로 녹음기능을 켜는 아들. 반면에 저 친구가 우리에게 욕을 했다고 담합해서 '권위 있는 사람을 이용해 학폭 고소를 하겠다'라고 협박하는 무리. 아이들의 대처가 영악하다는 것에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이 일은 나의 일기장 아들학교생활 분류목록에 추가됐고,  A든 B든 누구라도 선을 넘으면 판도라 상자는 열릴 것이다.

처음엔 웬만해서는 거리를 둬야 하는 아이들이 또 만나게 돼서 싸움이 생겼구나... 골치가 아프다로 시작했는데, 사건이 진행되면서 흥미진진해지기까지 하고, 마치 어른들 흉내 내는 듯한 아이들 간의 거래에 놀라기도 했다. 아이들의 문제가 어른의 것과 비슷한 듯 보이지만 또 아직은 아이들이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부분도 있다. 어른처럼 못된 것 같지만 또 어른만큼 못된 것 같지도 않은 경계에 있달까. 이 아이들 서슴없는 반응과 행동들이 어른이 돼서 뭘 좀 더 아는 상황이 되면 더 정교해지는 것이겠구나 짐작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무엇보다 이런 경험이 우리 아들이 타인과 사회를 불신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 런지 우려하고 있다.

그래도 아들에게는 '엄마가 지금까지 그 무리들에관해 모아둔 기록들도 있고, 이 사건이 너를 고소할수 있는 건이 아니니 걱정하지말라고, 그리고 너를 더 건드리면 오히려 걔네에게 더 치명타니깐, 그거 믿고 이번엔 너의 말대로 혼자 해보라고 했다.

아이들은 우리 아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이번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이 난 듯하고, 우리 판단엔 우리 아들이 승자다. "엄마! 이 일은 내가 해결해 볼게." 아들에게 단단한 짱돌하나가 생긴 듯하다.  


"아들, 그래도 화난다고 욕하면 안 돼. 그건 잘못한 게 맞아." 아차 싶어서 아들에게 당부했다. 물론 아들이 한 욕정도는 내가 남편과 내 친구들에게 그 아이들에 대해 퍼부어댄 욕에 비할바도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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