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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Nov 14. 2020

바가지 머리


     

미장원에 갈 돈이 없다고 합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꼬부랑 파마머리를 했고, 한 번쯤은 나도 삼례에 있는 미장원에 가서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엄마는 빨간 바가지를 내 머리통에 씌우고 크고 시커먼 가위를 찾아들고 와 철컹거리며, 이 선대로 자르면 바가지 머리라며 그렇게라도 해 주랴, 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아니라 모가지가 잘릴 것만 같아 냅다 도망쳤습니다. 


또 이모부네 이발소로 가야 할 모양입니다.


이모부는 저건네에서 이발소를 합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올 때는 이모부의 이발소를 지나야 하는데, 지름길인 그 길을 두고 맨날 멀리로 돌아서 다녔습니다. 늘쌍 이모부가 길을 막고 서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라치면 이모부는 ‘쭈명-’, 이름을 거꾸로 부르며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는 냥 달려옵니다. 

  양 볼을 잡아 늘리고, 수염이 까끌까끌한 턱을 들이밀어 내 볼에 박박 문대는 게 영 싫습니다.


이번 참에 핑계 삼아 미장원이란 곳을 가보고 싶었는데, 핑계 삼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읍내에 나가서 장 구경도 하고 싶었는데 다 글렀습니다. 아니, 읍내 구경은 관두고라도 미장원이 아닌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 게 말이나 되나요. 열 살이나 먹은 다 큰 아가씨 머리를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엄마에게 모가지가 잘리느니 뽀뽀 한번 당해주지요, 뭐. 


이모부는 이발소씩이나 하면서 맨날 수염은 왜 그리 까끌까끌하게 냅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모부네 이발소는 페인트가 다 벗겨진 집에 간판도 없이 허름합니다. 간판이 없는데도 면 소제지인 저건네에 하나뿐인 이발소라서 그런지 딱히 이름 붙일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미장원은 애숙이네 고모가 하는 미용실도 있고, 상희언니네 엄마가 하는 미장원도 있어 어느 집인지 이름을 붙여야 하지만, 이발소는 다들 아 거기, 하거든요.  


혹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이모가 하는 식당 이름을 붙여 왕궁식당 이발소라고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면 꽤나 널찍합니다. 신기하게도 발로 꾹꾹 누르면 오르락내리락하는 푹신한 빨간 의자가 두 개 있고, 마주 선 벽에는 내 키보다 훨씬 길쭉한 거울도 두 개 있고요. 안쪽 구석에는 길쭉한 손잡이가 달린 빨간색 바가지가 몇 개 놓여있는, 하늘색 타일로 된 네모난 세면장도 있습니다. 그 뒤로 역시나 빨간 안장이 있는 간이의자가 두 개 있지요. 


그곳에 앉아서 가만 기다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오늘처럼 가끔, 아주 가끔 먼저 온 손님이 있을 때도 있거든요. 


이모부는 하얀 가운을 입고 은빛 가위로 찰캉찰캉 소리를 내며 가위질을 합니다. 머리를 다 깎고 나면 면도솔에 하얀 거품을 잔뜩 묻혀 시퍼렇게 날이 선 면도칼로 서걱서걱 소리 내며 구레나룻도 정리하고 턱수염 면도도 해줍니다. 얼추 끝이 난 모양입니다. 어깨를 덮었던 누런 천을 휘리릭 걷으며 이모부가 개운하게 외칩니다. 자, 이제 머리 빨고 오세요. 


그러면 손님은 파란 물조리개로 물을 뿌리며 직접 빨랫비누로 머리를 빱니다. 박박. 


물기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손님이 돌아와 앉으면 이모부가 드라이기를 들어 잘 말려줍니다. 그리곤 정확하게 2:8 가르마를 타서 빗어줍니다. 정말 끝이 났습니다.


어쩌면 내 머리카락도 저렇게 네모반듯한 모양이 될지 모릅니다만,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의자에 달린 페달을 꾹꾹 밟아 높이를 올리고 또 그것도 모자라 의자 손잡이 위에 널빤지를 얹고는 나를 번쩍 안아 올려 그 위에 앉힙니다. 으, 이제 시작입니다. 이모부가 양손으로 내 볼을 쥐고 또 ‘쭈명-’ 외치며 뽀뽀를 해댑니다.  


꾹 참아봅니다. 이 뽀뽀도 언젠가는 끝나겠지요.


이내 가위 옆구리가 한 걸음 한 걸음 이마를 지납니다. 사각사각. 아마도 앞머리는 반듯하게 잘렸겠지요. 이모부가 빗으로 내 뒤쪽 머리카락을 빗어줍니다. 아마도 길이를 가늠하나 봅니다. 그리고 이번엔 가위가 귀 옆을 지납니다. 스가각스가각. 아마도 머리 길이가 귀 중간쯤인가 봅니다. 또 이번엔 이발기가 뒷머리를 밀어 재낍니다. 웨에에에엥.


 그나마 나는 이모부가 직접 머리를 빨아줍니다. 박박.


한겨울에 시원스레 깎여나간 내 뒤통수를 한 번 쓱 쓸어봅니다. 까끌까끌한 것이 이모부 수염 같습니다. 친구들은 양 갈래로 머리를 땋아 딸기를 닮은 빨간 방울을 달기도 하고, 곱슬곱슬한 파마머리를 늘어뜨려 예쁜 핀을 꼽기도 하는데, 나만 늘 바가지 머리입니다. 엄마는 도대체 이모부에게 무어라 언질을 주었기에 내 머리통은 왜 늘 바가지를 얹고 살까요. 


혹시 어제 학교 앞에서 주운 빨간 방울을 이 머리에 단다면, 안 어울릴까요. 


저어기서 이모부가 또 양팔을 벌리고 제 이름을 거꾸로 부르며 서 있습니다. 에이, 오늘도 내 볼이 남아나지 않겠구나. 수염 싫은데, 뽀뽀 싫은데, 슬쩍 모른 척 다른 길로 돌아갈까. 이모부는 기어이 손을 까딱거립니다. 어서 오라고. 바가지 머리를 찰랑거리며 뛰어가 봅니다. 반갑진 않지만 반가운 척 웃어도 줍니다. 


어라, 이모부가 점점 멀어집니다. 꿈을 꾼 모양입니다. 


이제는 양 볼을 잡아 늘이고, 까끌까끌한 수염을 문대고, ‘쭈명-’ 부르며 벌겋게 뒤통수를 밀어 바가지 머리를 깎아주는 이모부는 없습니다. 아무도 페달을 밟지 않았는데 내가 앉았던 의자보다 더 높은 저 하늘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수염도 싫고 뽀뽀도 싫지만, 아무래도 이번엔 내가 그 페달을 밟아야 할까 봐요. 그러면 이모부가 다시 내려와 동그란 내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뽀뽀해주지 않을까요.

 

꾹꾹 꾹꾹 꾹꾹. 페달을 밟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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