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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Feb 08. 2022

단계별 맞춤방귀(희곡체 수필)

#1     

  무대는 서울 신림동 다닥다닥 붙은 주택 중 허름해 보이는 골목 가장 안쪽 집의 침실. 바닥까지 늘어선 커튼 사이로 햇볕이 들어오는 창을 옆구리에 차고서 길게 누운 침대에 남녀가 있다. 침대 맞은편으로는 텔레비전에서 아침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시끄럽게 떠들고 있고, 장롱은 무언가를 찾느라 헤집어놓은 듯 반쯤 열린 문틈으로 옷가지 몇 개가 길게 혀를 내밀고 있다. 


아침이라 출근 준비로 바빠야 하는 시간이지만 왠지 한가한 노부부를 보듯 남녀의 나른함이 보기에도 절로 졸음을 불러오는 풍경이다.


여자: (뽀옹-.)

남자: (사랑스럽다는 듯 여자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방귀소리도 예쁘네?

여자: (남자의 손길에 깨어 반쯤 뜬 눈으로 흘기듯 남자를 바라보며) 

        내가 언제 방귀 뀌었다고?

남자: 방금 뽀옹-하던데?

여자: 아냐. 난 자면서 방귀 안 뀌어.

남자: 응. 안 뀌었어. 근데 이 향긋한 냄새는 어디서 나는 걸까?

여자: 자기가 뀌고선 괜히 나한테 덤터기야. 칫-.

남자: (기어이 이불속에서 여자의 손을 꺼내어 만지작거리며) 

        얼굴도 작고, 손도 작고, 키도 작고, 방귀 소리도 작네?

여자: 나 아니야. 안 뀌었어. 안 뀌었다고! 

남자: (이불 째 여자를 끌어안으며) 

        알았어. 안 뀌었어. 아유- 이뻐라-. 이렇게 이쁜 색시 냅두고 나 출근은 어떻게 하지?    

 

#2     


  가을이 무르익은 추석 하루 전으로 여자의 시댁 식구가 모두 모여 있다. 시어머니와 배가 제법 부푼 여자는 주방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앉아 전을 부치고 있고, 남자와 형제들, 그리고 그의 부친은 주방과 이어져 있는 거실에서 점심 겸 술상을 앞에 두고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시어머니: 어쩜 우리 며느리는 손도 야무지네.

여자: 어머니, 저는 얼굴도 예쁜데 손도 야무져서 더 예쁘죠?

시어머니: 우리 며느님은 칭찬을 더 하고 싶어도 입으로 다 까먹어요.

여자: 헤헤. 그 까먹는 입도 예쁘죠?

시어머니: (따박따박 말을 받아치는 며느리가 귀여운 듯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아이고, 말을 말아야지.

시아버지: (호박전 하나를 젓가락으로 집어 들며) 

              아니, 여보. 이거 우리 새아기가 한 거예요?

시어머니: 왜 아니겠어요. 나는 놀고 있고, 그 댁 며느님 혼자 다 부치고 있어요. 좋겠어요. 며느리 잘 둬서.

시아버지: 그럼요. 좋다마다요.

여자: (동태포에 후추를 뿌리다가 재채기를 한다. 그리고 동시에 방귀도.) 

        (에취-. 뿌웅-.)

남자: (마침 집어 든 호박전을 입에 채 넣지 못하고 젓가락 든 손을 흔들며) 

        어? 방금 방귀소리, 그거 저예요. 저 사람 아니에요.

시아버지: 응. 소리는 멀리서 들렸지만 가까이서 뀐 걸로 하자.

시어머니: 난 가까이서 들었지만 멀리서 뀐 걸로 하자.

여자: (창피한 듯 얼굴이 발그레해지며) 

        음…, 그게 그러니까. 배 속에서 아기가 뀐 거예요. 헤헤.

시동생 1: 어쩐지 소리가 귀엽더라니. 하하

시동생 2: 어떤 녀석이 나오려는지 예고편이 꽤나 요란한데요. 형수님?     


#3      


  한밤중 안방의 침대. 첫 번째 무대의 방보다는 조금 크고, 세간도 나이 들고 더 많아졌다. 여자와 남자는 침대에 누웠지만 등을 진 채다. 남자는 텔레비전을 보고 있고, 여자는 잠이 든 지 오래다. 그러다가 갑자기 여자가 한쪽 발로 이불을 살짝 들고서 부욱-, 방귀를 뀐다. 그러고서 냄새를 날리려는 듯 발을 흔들어 이불을 펄럭인다.


남자: (여전히 여자를 등진 채로 손에 들린 리모컨으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아주머니, 건강하시네요? 보약은 안 먹어도 되겠어.

여자: (갑작스러운 남자의 물음에 벌떡 일어나 앉으며) 

        뜬금없이 뭔 소리야?

남자: 아주 그냥-, 이불 찢어지는 줄 알았네.

여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뭐, 방귀? 

남자: 그래.

여자: 아니, 남 안 뀌는 방귀를 뀐 거야? 아저씨도 방귀 뀌잖아.

남자: 누가 뭐래?

여자: 자기는 아주 북북-, 난리도 아니면서. 여기 침대가 왜 꺼졌게?

남자: 응. 내가 하도 뀌어대서 그런 거 다 알아.

여자: (여전히 남아있는 방귀를 날리느라 이불을 펄럭이며) 

        아직까지 건강한 내 괄약근에게 감사하다고 절이나 하셔.

남자: 웬 절?

여자: 내가 늙어서 힘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분자가 아닌 덩어리로 나오는 수가 있어. 

남자: 아, 예. 괄약근님, 아직까지 형상만 남기시고 흔적을 남기지 않으심에 감사합니다. 

여자: (다시 벌렁 누우며) 별 것도 아니고만 괜히 깨우고 난리야.

남자: (벌떡 일어나 여자의 살찐 배를 노크하듯 두드리며) 

        이봐요. 예쁘고 수줍음 많던 우리 색시 도로 내놔요. 도대체 어디에 숨겨놓은 거야-!

여자: (대답이라도 내놓는 듯 한쪽 엉덩이를 살짝 들며, 부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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