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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주 Dec 31. 2022

엄마, 고양이에 눈 뜨다

  이놈들 나타나기만 혀봐. 저번 내 생일날 느 큰언니가 사 와가꼬 남은 소고기 있잖여. 그거까지 넣고 끓인 국인디 감히 누구 밥에 손을 댜. 그래가꼬 내가 괭이 옆에 의자까지 딱 두고 앉아서 눈에 불을 켜고 자리를 지켰당게. 


  근디 이상허드라. 밥그릇 들고 나올 때만 혀도 크앙 크앙 요란했던 놈들이었응게 서로 먹을라고 뎀빌 줄 알았드만, 에미가 밥을 먹기 시작헝게 외려 슬금슬금 비켜 서드라고. 입맛을 할짝할짝 다심서도 그냥 지켜만 보는 거여. 희한허드랑게.


  그려서 오늘은 조기를 두 마리나 넣고 푹 고아서 앞에 놔 봤지. 아 그랬더니 이것들이 또 그렇게 보기만 허드라고. 신기허지? 즈그들도 아는가벼. 아, 쟈는 새끼 낳았응게 많이 먹게 나둬야 젖이 나온다, 뺏어먹으면 안 된다, 아마도 그런 생각을 허는가벼. 웬만헌 사람보다 의리가 좋드랑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내가 딱 일주일만 이렇게 국 끓여서 줄라고. 더는 못혀.


  근디 느 오빠는 누굴 닮어서 그리도 짐승을 좋아하는가 몰라. 이러다가 동네 돌아다니는 도둑괭이들 다 걷어먹이게 생겼당게. 아 벌써 몇 년이냐고. 이렇게 잘 살다가도 죽어버리고, 죽어버리고 그러는디.


  어이, 괭이 아줌씨. 너도 참 그려. 울 아들이 느들 편히 자라고 저쪽 헛간에다가 집까지 지어줬고만 뭐 한다고 꾸역꾸역 대문 옆에다가 새끼를 낳았어. 그래놓고는 뭘 잘혔다고 사람 지나뎅길 때마다 눈을 요로-고 치껴뜨는 거여? 기껏 괭이 주제에 어찌나 같잖은지. 


  근디 또 어찌 생각하믄 에미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 그런 생각이 들응게 안쓰럽더라고. 


  너는 도둑괭이 주제에 무슨 공치사를 듣겠다고 다섯이나 낳았어? 없는 살림에 나도 다섯 낳고, 너도 다섯 낳고. 그건 참 신기허다. 그챠?


  처음에는 네 마린 줄 알었어. 근디 느 오빠가 쥐새끼만한 걸 이리저리 젖혀봉게 젤로 째깐한 놈이 밑에 있드랴. 죽겄다고, 아마도 죽겄다고 허드라. 지 자슥도 아님서 뭘 그리 걱정을 혀쌌는지. 그 놈이 죽었나 살었나 맨날맨날 세어보라고 혀서 오늘 아침에도 막대기로 슬쩍 젖혀봉게 살었어. 안 죽고 살었어. 


  엄마가 시집올 때 말여, 백곰마냥 하얀 백구 한 마리가 따라 들어왔어. 긍게 사람들이 그러더라고. 가마 뒤로 개가 따라 들어오믄 안 좋다고. 흥, 개뿔이나. 한 오 년을 을매나 귀염 받음서 살었는디. 새끼도 두 배씩이나 낳고 살아서 속으로 그 말 다 틀렸고만, 그렸어. 


  백구가 있는 동안은 나도 참 귀염 받음서 살었지. 이런 촌구석에 시집와서 밭 한 번을 안 메고 살었응게 호강이라믄 호강이지. 거그다 손 귀한 집에 시집 와서 딸 아들을 턱턱 낳아놓응게 내가 얼마나 이쁠 것이여. 내리사랑이라고, 이쁨을 받응게 나도 백구가 그렇게 이쁘드만. 내가 참말로 많이 이뻐혔어.


  근디 어느 날 어디서 농약을 줏어 먹었능가, 백구가 헛간에 쌓아놓은 지푸락 속에서 거품을 물고 죽어있는 거여. 


  차암 신기허게도 백구가 죽고 난게 사람들이 했던 말이 들어맞기 시작허드라고. 느 할아버지 할머니 차례로 돌아가시고, 느 아부지는 병들어 아랫목 차지하고 누워버리고, 집이 폭삭 망혀버렸지. 그리고 얼마 안 가 죽어버렸응게 그 말이 맞긴 혔어. 


  너 옛날에 우리 뒤안에 있던, 너보다 훨씬 큰 항아리 기억나지? 쌀이 몇 가마나 들어가는. 그렇게 쌀이 꽉꽉 찬 큰 항아리가 몇 개나 있었는 줄 알어? 그 많던 살림이 다 없어져버렸어. 끼니 걱정 없이 살던 날이 백구가 죽음서 끝나버렸지. 


  내가 시집와서 호강한 날은 느 큰언니 큰오빠 낳았을 때까지 백구가 살아있던 딱 오 년이여. 그 뒤로는 애 낳은 날도 물지게를 지믄서 살었어. 백구가 죽어서 우리 집이 이리 됐나 싶기도 허고, 또 백구가 거품 물고 죽는 걸 봐서, 그려서 그렁가. 나는 짐승이란 짐승은 다 싫어. 


  얼래 얼래 이것이 왜 이려. 왜 나한티 부비고 난리랴. 내가 밥 주는 거 알고 아부하는 거여? 안 그려도 밥 줄랑게 가서 니 새끼 젖이나 멕여. 아이고, 이 털 좀 봐. 아이고, 나는 느그들 물컹허니 뜨끈혀서 싫당게 왜 자꾸 달라붙고 난리여. 저리 가.


  그렇게 니 새끼가 이쁘냐? 그만 핥어. 근디 너는 너 혼자 먹고 살 것도 없음서 뭐 할라고 다섯이나 낳았어? 하나만 낳지. 너 힘들어. 어떻게 멕여 살릴라고 그려. 


  아니, 아니다. 나도 암껏도 없는디도 잘 키웠는디, 뭐. 너도 잘 할 수 있을 거여. 어여 많이 먹어라. 


  얼래! 느들 눈 떴냐? 명주야, 야들 눈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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