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셔널맨
우연히 CGV홈페이지에서 진행하는
아트하우스 시사회 및 시네마 토크 이벤트에 당첨이 되었다.
사실 영화 제목을 대충 흘러가듯 봐서
이터널선샤인 재개봉 시사회인줄 알았어서
이 영화의 감독이 누군지, 누가 나오는지
심지어 청소년 관람불가라는 것도 당일에 알았다.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우디 앨런 영화가 유명한 건 알았지만 아직 본 작품은 없어서
이레셔널 맨이 내가 본 우디 앨런 영화의 첫 영화다.
처음으로 본 소감은 뭐랄까 굉장히 투박하다.
어떤 점에서 사람들이 그의 영화에 열광하는지 알 것 같다.
영화는 에이브와 질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여기서 독특한 점은 에이브의 독백의 시점은 현재이고,
질의 독백의 시점은 과거이다.
이런 시점의 차이도 약간 결말에 대한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철학과 교수인 에이브는 자신의 학문과 삶에 대해 회의적이다.
삶에 의미가 없기에 그는 법도도 없이 내키는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에 학생들을 비롯한 몇몇은 그가 퇴폐적이고 섹시하다고 여긴다.
리타는 에이브에 대한 환상이 있는 이들 중 하나로
에이브가 자신을 지루한 시골 마을에서
스페인으로 구출해줄 영웅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가 온다는 소식만 듣고도
설레여 한다.
질도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질은 삶에 회의적인 에이브를 걱정하고 그를 구원하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질은 에이브에게 빠지게 된다.
에이브의 지적인 매력과 유머에 빠진 질은
에이브에게 열렬히 대시하지만
에이브는 나름의 도덕 기준을 말하며
남자친구가 있는 질이 자신과 관계를 맺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질을 거절한다.
이 점에서 무질서하고 퇴폐적으로 살아가는 듯한 그에게
명목적으로라도 도덕 기준이 있다는 것과
그의 이중성이 드러난다.
처음 나는 도대체 왜 배나온 아저씨일 뿐인 에이브를
사람들이 섹시하다고 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갈 때 쯤 어렴풋이 그들이 말하는 섹시함은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롭고 지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배는 그의 이중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삶에 회의적이기에 음식을 먹는 것도 즐기지 않은 에이브가
배가 나온 모습 자체 역시 그의 이중성인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에이브가 질과 리타를 받아들이는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식욕, 성욕 등의 욕구를 느끼게 된 계기는
그녀들의 사랑과 보살핌이 아닌
부도덕한 판사를 살인할 계획을 세우고 나서다.
그는 사랑이 아닌 살해계획을 짜며
삶의 가치를 깨닫고, 구원받는다.
에이브는 자살과는 거리가 먼, 유머러스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변했고
처음 에이브를 사랑하게 된 질은 과하게 들뜬 그의 모습마저 사랑한다.
질이 이레셔널한 이유는 사랑인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그러나 둘의 관계는 에이브의 판사 살인이 들통나면서 어긋난다.
에이브는 철학과 교수임에도 달변가로서
철학은 말장난이며, 항상 질에게 직관을 믿으라고 가르쳤는데
역설적이게도 질은 이 직관을 이용해서 에이브의 살해사실을 알아낸다.
질은 그의 살해사실을 알자마자 그에 대한 사랑을 접고 그를 떠난다.
삶의 즐거움을 깨달은 에이브는 자신의 삶에 걸림돌이 될 질을 살해하는 계획을 세운다.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려는 그의 모습은
그의 이레셔널이 극에 달해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를 통해 그를 구원한 것은 사랑이 아닌
살인에 대한 충동과 흥분임을 알 수 있다.
다행히도 자신의 운에 대해 자만하던 에이브는
질을 살해하는 것에 실패하고,
자신이 질에게 선물한 손전등에 의해 죽게 된다.
'죄와 벌'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마지막 에이브가 죽고 질의 독백은 이어진다.
에이브의 죽음 이후 질은 그저 살아갈 뿐이다.
이런 에이브의 질의 살해 계획과
에이브의 살인 사실을 알고 미련 없이 에이브를 떠나
전 남자친구에게 돌아간 질의 모습은
둘이 사랑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고 처음,
나는 영화 속 인물들이 '이레셔널'하게 된 이유를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 생각은 변했다.
그들이 이레셔널하게 된 것은 '환상'이다.
먼저 질은 에이브에게 교수로서의 지적임과 퇴폐미 등의 환상을 가진다.
특히 에이브가 학교에 온다고 하자 에이브에 대한 여러 소문들이 도는데
그런 실체없는 소문들은 환상을 증폭시킨다.
그녀의 에이브에 대한 감정이 사랑이 아니라 환상이었음은
둘이 놀이동산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할 때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 거울을 통해 우승꽝스럽게 왜곡된 모습으로
보여지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리타 역시 에이브를 사랑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서양식 쿨한 마인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리타는 에이브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에이브가 자신을 스페인으로 데려가 줄 환상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에이브가 질과 연애를 한다는 것 역시 쿨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이 에이브를 사랑한다고 '착각'한 것이다.
에이브는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가 삶의 가치를 찾게 된 계기는 살해 계획을 짜면서이다.
그는 자신이 마치 베트맨처럼 도시의 영웅이 된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환상에 빠져 그는 무기력한 삶에서 구원받았고,
동시에 그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질은 환상때문에 죽을뻔 했으며, 리타는 스페인을 가는 것에 대해 좌절을 했고,
에이브 역시 살인범에대가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실체없는 환상이 그들의 삶을 휘집어 놓은 것이다.
환상과 소문은 실체가 없지만 믿음을 만나면 강한 힘을 가진다.
마치 영화 곡성의 악마처럼 말이다.
많은 기존의 영화들에서 주인공들은
'사랑'때문에 목숨도 걸고 온 갖 비이성적인 행동을 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사람들이 비이성적인, 이레셔널해진 이유는 환상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지닌
로맨스영화일지도 모른다.
처음 접한 우디앨런의 영화에서 관객의 해석과 생각이 열려있다는 특색을 느꼈다.
앞으로 우디앨런의 영활에 관심을 가지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