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처음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굉장히 독특하고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나는 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올 해 여름,
미스터 브레인워시 전시회에 갔을 때 클립 영상으로 접했었다.
그 당시 나는 고작 해봐야 파우치 등의 삽화로만 보았던 팝아트들을
전시회에서 보는 것에 의의를 두었고,
어디선가 본 듯한 미스터 브레인워시의 작품들에
그가 앤디 워홀, 뱅크시 등의 작품들을 아우르는 총체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거참 예술적이군!'하면서..
그때 본 이 다큐멘터리의 클립 영상도
미스터 브레인워시와 뱅크시의 기상천외하면서도
독특한 예술 활동 과정을 다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면서 생각이 아주 바뀌었다.
사실 티에리 구에타는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단순히 장사꾼이었던 그가 예술에 눈을 뜬 것은 사촌 인베이더라고 볼 수 있다.
그의 거리 예술을 지켜보면서 티에리는 뱅크시라는 존재에 대해 알게 되고
그때부터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을 타오르기 시작한다.
사회에 대한 비판은 물론이며 예술이라는 것 자체에서 풍기는 멋,
그리고 그것을 넘어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라는 자만까지.
그런 것들이 모여 그는 예술을 동경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티에리는 뱅크시의 권유에 예술을 시작한다.
티에리는 그동안 자신이 봐왔던 모든 팝아트들과 그레비티 등을
끌어오고 그리고 단순히 예술을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알리는데 전시를 하는데 온힘을 모은다.
과연 그렇게 성대한 신인 예술가의 전시회가 어디 있을까?
티에리는 작품이 아닌 전시회에 초점을 맞춰
다른 사람들의 손을 빌려 작품을 완성하기도 하고
전시를 광고하는데 더 신경을 쓴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전시회에 오고,
그에게 작품의 의미를 묻는다.
그런 물음에 작품을 설명하는 티에리의 말은 굉장히 1차원적이고 비논리적이다.
‘주제는 인생은 아름다워!’야.
마치 소설 ‘9살 인생’에서 주인공이 별 생각 없이 그린 그림에
선생님들이 굉장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티에리는 어쩌면 키치를 만들 듯이 생각 없이 작품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은 키치스럽기 그지없었다.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이 제목의 뜻은 무엇일까?
나는 제목에서도 큰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저 미술과 상업성을 연결한 제목일뿐.
나는 보는 내내 어쩌면 미스터 브레인워시라는 존재는
뱅크시가 티에리 구에타를 이용해 그럴싸해 보이지만
예술은 사실 의미가 없다는 비판을 하기 위한 예술 작품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티에리가 진짜 예술가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찌되었든 그의 작품은 비싼 값에 팔리고,
전 세계에서 전시회를 하는 꽤 ‘유명한’ 예술가가 되었다.
물론 누구나 예술을 하고 무엇이든 예술이 될 수 있는 현대미술에서
진짜 예술이라는 것을 따질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역설적인 점은 예술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어야 한다며
거리 예술을 추구하고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거부한 뱅크시의 권유를 받아
예술을 시작한 ‘돈’이 있는 티에리는 거리예술을 다시 전시장으로 끌어오고 비싼 값을 주고 판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예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작품을 만들라고 권했지만
이제는 별로 그러지 않는다는 뱅크시의 말처럼
티에리의 예술은 뱅크시의 의도에서 어긋났을 수도 있고,
어쩌면 뱅크시의 의도에 딱 맞을 수도 있다.
그가 예술가이든, 아니든 수용자의 영향이 큰 현대미술에서 어쨌든 판단은 수용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