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으로 시작된 여행

준비하기 1단계

by 김김이

나는 좋은 딸은 아니었다.


엄마는 꽤나 다정한 사람이다. 측은지심이 있고,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엄마는 항상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줬다. 내가 고등학교를 입학해서, 막내 남동생이 졸업하는 9년 동안 말이다.


반면 나는 이기적이고 독단적이었으며, 동생의 말을 빌리자면 싸가지 없는 사람이었다. 아기였을 때 나는 엄마에게 똑같은 것을 다섯 번씩 물어보았지만, 어른이 된 나는 엄마가 컴퓨터 기능을 한번 더 물어보면 짜증을 냈다. 그래서 엄마에게 컴퓨터 기능이나 핸드폰 작동법 같은 것을 살갑게 알려주거나, 엄마가 필요로 하는 자잘 자잘한 물건들을 인터넷으로 주문해 주는 것도 다 동생이었다. 나는 남은 귀찮게 하면서도 내가 귀찮은 것은 싫어했고, 하고 싶은 것은 꼭 해야 했으며, 내가 한 것에 대해 생색도 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좋은 딸이 아니었다.



대학교 3학년이 끝나고, 덜컥 휴학을 해버렸다. 많은 인생의 선배들이 휴학은 뚜렷한 목표와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하라는 조언을 했다. 인생에 대한 목표와 계획? 그런 건 없었지만 일단 휴학신청을 해버렸고, 그다음에 부모님께 통보했다.

휴학 기간 동안 힘들여 일을 하기 싫었고, 머리를 써서 공부를 하기도 싫었다. 그냥 여행을 가고 싶었다. 행선지는 우연히 SNS에서 봤던 화려한 겹벚꽃 길이 있는 독일이었다. 나는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보고 싶은 건 봐야 하는 사람이었고, 겹벚꽃이 핀 봄에 여행을 가야 했다. 이번에도 비행기표를 먼저 끊었고, 그 후에 부모님에게 통보했다.


나 한 달 뒤에 유럽여행 가.


처음으로 혼자 가는, 한 달이 조금 넘는 장기 해외여행이었다. 그래서 실패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한 달 동안 꽃이 피는 시기를 계산하며 여행 동선을 짜고, 항공권, 숙박, 교통 예약까지 나름 만반의 준비를 하고 24인치 캐리어를 꽉꽉 채워 출발했다.


가장 가격이 싼 중국 항공사를 타고, 상하이를 한번 경유해 런던을 시작으로 파리를 거처 독일에 도착했다. 내 계획에 따르면 풍성한 겹벚꽃들이 기다리고 있어야 했지만, 몇십 년 만의 기상 이변으로 꽃은 다 져있었다.



그렇게 절망적이고 우울할 수 있을까? 이제 살면서 다시는 여기에 못 올 수도 있는데.. 억울함의 눈물을 찔끔 흘리며 깨달았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고, 내가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이다.

비록 화려한 겹벚꽃길을 보진 못했지만, 독일에서의 여행은 꽤 괜찮았다.

마트에는 내가 좋아하는 초콜렛을 저렴하게 살 수 있었으며, 생전 처음 보는 종류의 젤리들로 가득했다. 나는 중년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벤치에 앉아 젤라또를 먹었다. 그런 나에게 한 학생이 달려와 젤라또가게에 두고 갔던 내 지갑을 건네줬다. 그 직전에 있었던 도시 파리에서는 느낄 수 없는 평화로움이었다.



한 번의 여행은 일 년 정도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 했다. 벚꽃을 보겠다는 목표 달성에 실패한 내 첫 여행은 또다시 돌아오는 1년을 살게 하는 힘이 되었고, 그 힘으로 독일로 교환학생까지 다녀왔다.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은 삶을 살아가게 한다. 적어도 나한테는 그랬다.

내가 굳이 ‘그 시국’에 엄마와 유럽여행을 결심한 것은 힘을 내고 싶어서였다. 엄마와 나는 힘들었고, 여행이 다시 일어날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는 2021년 11월, 위드코로나의 시대가 도래했다. 전 국민 백신 접종 완료율 70퍼센트 돌파! 식당이나 카페의 시간제한도 없어졌고, 재택근무도 없어졌다.

해외 몇몇 나라도 굳게 닫아두었던 문을 슬슬 열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남미에 푹 빠져있었다. 하지만 남미 국가들의 문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안보였고, 사실 선뜻 갈 결심을 할 엄두도 안 났다. 반면 유럽은 그냥 그랬다.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유럽'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도시들을 가보았고, 동생과 함께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대판 싸웠던 기억 때문인지 유럽에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엄마와 유럽여행을 결심한 것은, 이미 익숙한 도시라는 점에서 오는 막연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어디라도 가야 했다. 여행 한 번이면 엄마를 회복시킬 수 있을 테니까, 내 심신을 재정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많은 미디어 매체에서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엄마를 위해, 딸들은 엄마를 모시고 네일아트를 받으러 간다거나, 예쁜 카페에 가고, 가까운 바다로 여행을 갔다. 아들들은 상실감을 느끼고 있는 엄마에게 일거리를 주기도 했다. 한바탕 그러고 나면 엄마들은 환하게 웃으며 단번에 갱년기를 회복하고, 가족들 역시 다시 화기애애 지곤 했다. 내가 봐온 갱년기는 그러 것이었고, 그게 엄마의 갱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주제넘게도 여행으로 엄마를 구원하고자 한 자신감은 그런 오해에서 나왔다. 나는 흔한 네일아트나 국내여행과는 달라, 우리는 유럽으로 가보자고! 하는 생색은 덤이었다.


물론 여행은 어떻게 해서든 깨달음을 준다고, 이번 여행을 통해 미디어 매체에서 보여준 갱년기 극복이 비현실적인 허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지만 말이다.



때마침 엄마는 차승원과 유해진이 나오는 예능 ‘스페인 하숙’ 재방송을 보곤 스페인에 관심을 가졌다. 스페인은 위드코로나와 함께 여행객들에게 문을 연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으니 스페인에 안 갈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맞물려서 스페인이 가장 먼저 여행지로 추가되었다.


여행의 시작은 아무래도 항공권이다. 예산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니 말이다. 항공권을 사기 전엔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왕복티켓과 다구간 티켓 중에 골라야 했고, 다구간티켓일 경우, 첫 도시와 마지막 도시를 어디로 설정할 것인지다. 두 번째는 여행기간, 세 번째는 항공사 선택이었다.

결국은 여행 계획을 어느 정도 세워야 항공권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엄마에게 유럽 어디를 가고 싶냐고 물었다. 스페인이라고 했다. 다른 곳은? 모르겠다고 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내 몫이다.


‘스페인’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도시는 바르셀로나다. 그렇게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첫 도시는 바르셀로나로 정해졌다. 그렇다면 나가는 도시는 어디로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세계지도를 떠올려 본다. 스페인을 가는데 바로 옆에 포르투갈을 안 갈 수가 있나? 없다. 그렇게 포르투갈도 추가된다. 추가하다 보니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계획을 짜다 보니 욕심이 생겨버렸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바로 위가 프랑스인데 말이지. 이왕 오랜만에 나가는 유럽인데, 내가 가장 감명받았던 도시이자, 나만 보고 있는 것이 죄스러워서 엄마 생각이 가장 많이 났던 도시, 파리를 추가하자! 엄마랑 가는 여행이니까!


그렇게 첫 도시는 바르셀로나, 마지막 도시는 파리가 되었다.




가는 나라들의 윤곽이 잡히니 파티원이 추가되었다. 바로 이탈리아에서 대판 싸웠던 그 동생이었다. 파리에 꼭 가고 싶단다.

그래도 이젠 사이도 꽤 나쁘지 않고, 둘 다 이십 대 중반으로 제법 성인이니 괜찮지 않을까? 둘보다는 셋이 더 재밌겠지. 흔히들 그러는 것처럼 과거를 미화하며 동생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였다.



스페인은 바르셀로나, 세비야, 마드리드에 가기로 했다. 바르셀로나와 세비야는 각자 스페인의 다른 매력을 보여주는 매력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그리고 마드리드는.. 그냥 스페인의 수도로 여겨진다. 마드리드는 내가 안 가본 미지의 도시였고, 여행을 가는데, 그 나라의 수도는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마음에 추가했다.

개인적으로 포르투갈을 좋아했다. 여행을 하면서 좋은 동행인들을 만났었고, 같이 먹었던 에그타르트를 비롯한 음식들이 맛있었다. 적당히 따뜻한 날씨도 좋았다. 잊고 있던 좋은 기억들이 SNS에 올라오는 포르투갈 사진들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리스본과 포르투에 가야지.

마지막으로 파리.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도시고, 동생이 가장 가고 싶은 도시, 그리고 엄마에게는 유럽 하면 떠오르는 도시.


나는 자신 있었다.

이미 한 번 내지는 두 번 이상 가본 유럽 도시들이니 여행하기 쉬울 것이라는 첫 번째 착각, 내가 좋아하니까 남들도 좋아할 것이라는 두 번째 착각을 했으니 말이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정말 놀랍던 것은 바로 항공권의 가격이었다. 여행업계가 얼어있어서 그런지 항공권은 정말 저렴했다.


그럼 어떤 항공사를 선택해야 할까?

항공사를 선택하는 나만의 기준이 있다. 경유냐, 직항이냐. 상대적으로 가격 부담이 적은 경유를 선택한다. 그리고 나선 중동 항공사를 제외했다. 중동에서 경유하는 만큼, 비행시간이 아시아나 유럽 항공사에 비해 4시간 정도 더 길었기 때문이다. 대략 스무 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을 견디는 것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항상 제외했었다.


그러나, 이건 코로나 이전의 기준이었다.

당시 여행을 가는 것은 코로나에 걸릴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했다. 특히나 확진자들의 자가격리를 관리하는 한국과는 달리, 유럽은 자가격리를 온전히 개인의 양심 맡겼고, 확진자가 도시를 돌아다녀도 아무런 제지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PCR 음성 결과지가 필요했고, 만약 확진된다면 음성이 나올 때까지 입국할 수 없었다. 더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계획도 필요했다.


여행 중 만약 코로나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당시 가장 안정적인 방법은 가장 먼저 귀국 편 항공권을 미루고, 자가격리할 공간을 구해 PCR 검사가 음성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코로나에 확진이 되면 무료로 표 변경이 가능했으니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자가격리를 할 공간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리의 마지막 도시인 파리에서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하며 생활비를 감당하는 것은 꽤나 금전적으로 부담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항공사가 바로 중동항공사 E사였다.

당시 E사는 탑승 전 72시간 내의 PCR 검사에서 음성인 승객들만 태우니 좀 더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항공권에 코로나19 글로벌 웰니스 보험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항공편을 이용한 지 31일간 유효한 이 보험은, 코로나에 확진될 경우 1인당 하루 100유로씩 최대 14일간 제공했다. 항공권을 사면 보험이 함께라니 완전 1+1, 오일머니 만세를 부르며 예약했다.

당시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이 항공사, 게다가 최저가였으니 선택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게 내 첫 번째 실수였다.

그리고 바로 이어 내 두 번째 실수가 발생한다. 바로 항공권을 항공사 공식 홈페이지에서 구매한 것이 아니라, 최저가를 쫓다 여행 대행사를 통해 표를 구매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다고 자만하고 생색을 내고 나니 마냥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설레기 시작했다.

엄마와 동생이 바르셀로나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볼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리스본에 가면 꼭 에그타르트를 먹어야지. 포르투의 동루이스 다리에서 야경을 보며 와인을 마시면 정말 좋아할 거야. 파리 에펠탑을 보고 기절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설레발을 친지 하루 만에 첫 번째 위기가 도래했다.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의 유형인, 오미크론이 등장한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