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기 2단계-숙소 편
나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넌 특기가 뭐냐는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나는 항상 곤란해하지만, 달리 학교에서는 해가 바뀔 때마다 나에게 내 특기를 물었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아무도 내 특기를 궁금해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회사들은 자기소개서에 특기란을 기재하며 끊임없이 내게 특기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내 특기는 뭘까? 취미는 그때그때 바뀌긴 하지만 대답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특기를 대답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웠다. 이걸 특기라고 하기에는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널렸을 것 같아 자신이 없었다. 저걸 특기라고 하기에는 내가 그만큼 즐길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항상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내 특기는 어디서나 잠을 잘 자는 것이라고. 나는 잠을 자는 것을 정말 좋아했고, 어디서든 잘 잤다. 그리고 이건 내 작은 자랑거리이기도 했다. 엄마를 닮은 부분이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잠을 좋아했다. 아니 어쩌면 필요로 했다. 작은 소음에도 금방 잠에서 깨버리고, 짧게 자도 생활이 가능한 아빠는 먹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면 아빠와 달리 엄마는 먹지 않더라도 푹 자야하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랬다! 나도 엄마처럼 머리만 붙이면 어디서든 잘 잘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옆에서 누가 노래를 불러도 느즈막히 일어나 점심시간을 넘길 때까지 잘 수 있었다. 뒤척임에도 잠에서 깨버리는 동생과 달리 나만 가지고 있는, 엄마를 닮은 특기였다.(남동생을 별개다)
하지만 엄마는 갱년기가 되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제 어디서나 잠을 잘 잔다는 것은 나만 가진 특기가 되었다.
보통 숙소는 여행 전체 경비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한다. 고려해야 할 부분도 많다. 위치, 가격, 시설, 그리고 유럽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드버그까지! 그렇기 때문에 숙소 예약에는 신중을 기해야 했다. 나 혼자 여행할 때는 숙소는 그렇게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잘 자는 나에게 숙소란 잠만 자는 곳이었다. 그래서 남녀 혼성 8인실은 기본이고, 22인실에서도 자봤다. 그래도 잘 잤고, 예산도 많이 아꼈다. 하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엄마와의 여행에서 그런 불효를 저지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효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숙소 구하는 기준
1. 이동에 용이한 위치에 있을 것
2. 우리만 사용하는 공간일 것
3. 주방이 있을 것
4. 베드버그 후기가 없을 것
5. 엘리베이터 있을 것
6. 와이파이가 될 것
7. 주방이 있을 것
주방은 왜 있어야했을까? 엄마는 갱년기로 불면증, 관절염 등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이후로, 코로나에 걸리는 것을 극심하게 두려워했다. 갱년기에는 가만히만 있어도 아픈데, 코로나에 걸리면 얼마나 더 아프겠니!라고 하면서. 당시 뉴스에서는 프랑스는 코로나 확진자가 35만 명이 나오니 만니, 확진자 수가 전세계 1위니 어쩌니 하던 때였다. 35만명? 비슷한 시기에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는 7만명 정도였으니, 딱 5배였다. 게다가 여행 경험을 공유하는 커뮤니티에서는 여행 중 코로나에 확진되어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들이 종종 올라오니, 두려움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도 덩달아 두려워졌고, 마스크 착용이 어려운 식당을 이용해도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주방이 있는 숙소를 구하기로 한 것이다.
보통 숙소는 얼마만큼의 돈을 쏟느냐, 어느정도 시간을 들여 검색하느냐에 따라 퀄리티가 달라진다. 또다시 검색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검색하는 건 정말 싫다. 시간도 급박하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연휴까지 겹치니, 이미 물량이 다 빠져나가 얼마 남지 않은 선택지 중에서 최선을 찾아내는 것은 어려웠다. 최대한 하나씩 차근차근 예약을 해나갔다. 그러나 이런 내게 끝까지 고민을 하게 하는 도시와 고통을 주는 도시가 있었는데, 바로 포르투갈의 포르투와 프랑스의 파리였다.
포르투는 주방때문이었다. 의 숙소는 마지막까지 고포르투에서 다음 도시인 프랑스 릴로 가는 비행기는 오전 6시 50분이었다. 그렇다면 공항에는 적어도 새벽 5시에는 도착해야했다. 포르투는 극강의 언덕이 가득한 항구도시였는데, 항구도시하면 떠올리는 아름다운 숙소들은 모두 극강의 언덕을 지나야했다.
예전에 혼자 포르투에 갔을 때도 새벽에 캐리어를 끌고 언덕을 올라가 공항버스를 탔었다. 지금 기억이 미화되어 올라갈만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허벅지에 푸르뎅뎅한 멍이 들었던 것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숙소 후보에 있던 아파트먼트에 이런 경우 택시를 불러줄 수 있냐 문의했지만 아무 답이 없었다.
포르투에서 머무르는 것은 2박 3일, 그마저 마지막 날은 새벽 이동이다.
이틀 정도는 주방이 없는 호텔을 써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 공항버스를 타기 좋은 곳에 위치한 호텔 예약하자.
파리 숙소 예약은 나에게 고통을 주었다.
지금껏 항상 아침과 저녁을 한식으로 제공하는 한인민박을 갔었기 때문에, 파리는 내게 한식의 도시였다.
물론 한인민박들의 시설은 열악하다.
닭장 같은 이 층 침대들과 밥 먹을 때마다 펴는 간의 책상, 그리고 정말 작은 화장실. 게다가 그 화장실을 여러 명과 공유해야 한다.
한식과 위치만으로 엄마와 동생과 함께인 여행에서 한인민박을 쉽게 선택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때는 크리스마스 직후, 그리고 새해 직전.
파리의 호텔과 에어비앤비의 가격은 정말 말 그대로 날뛰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맙소사가 절로 나왔다.
선뜻 결정이 어려웠고, 한국인이 관리해 명목상 한인민박이지만 아파트먼트식인 숙소들을 눈길을 돌렸다.
그렇지만 3인이 5일간 묵을 수 있는 숙소는 없었다. 절망하며 설정을 이것저것 만져보았다.
어쩔 수 없이 날짜를 조정했을 때, 3인이 묵을 수 있는 아파트먼트 숙소를 찾아냈다!
숙박이 가능하다는 답을 받았을 땐, 정말 비명을 지를 뻔했다.
세상에! 그것도 에펠탑 뷰의 숙소였다.
혼자 여행하는 가난한 여행객이었을 때는 감히 꿈도 못 꾸었던 그 에펠탑뷰였다.
비록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숙소였고, 그리고 2인이 가장 좋지만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4인까지 가능하다는 약간의 불안감을 조성하는 문구가 있었지만, 4박에 100만 원 초바의 가장 최선의 가격대였다.
게다가 에펠탑 뷰에 주방까지 있는 아파트먼트인데 아무렴 어때!
사실은 내가 가장 에펠탑이 보인다는 사실에 가장 흥분한 것은 나였지만, 파리에 처음인 엄마와 동생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예약을 완료했다.
그렇게 에펠탑뷰 숙소에서 4박, 그리고 찾아낸 3인실이 있고 1박을 예약을 받아주고, 아침식사까지 제공하는 한인민박 1박을 예약했다.
정말 쉽지 않은 준비였다.
그래도 여행 준비의 3분의 2가 끝난 것이다.
이제 적당한 가이드 투어, 입장권 같은 티켓들을 예약하고, 짐만 싸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것은 평화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돈이 찾아올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