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기 3단계
엄마와 동생과 유럽여행을 간다고 가족들에게 발표한 뒤, 이상하게 이모들과 삼촌이 나를 만날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
“너희 엄마 괜찮겠니? 가뜩이나 체력도 안 좋은데.”
“그래도 최대한 대중교통이나 택시 타고, 하루 일정도 최소한으로 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그게 말처럼 되니? 하루에 걸어야 하는 양도 정해져 있다면서?”
“.. 네?”
“순례길 말이야. 너네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거 아니었니? 네 엄마가 그러던데?”
나중에 이 사건에 대해 엄마에게 물어봤지만, 엄마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모들과 삼촌은 엄마에게 우리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간다고 들었다 했다.
도대체 여행과 순례길은 스페인 말고는 공통점이 하나도 없는데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우울증에 걸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엄마는 갱년기로 우울증이 온 데다가, 우리가 정확히 어떤 나라의 어느 도시를 가는지 몰랐다.
그래서 아마 스페인하숙 얘기를 하면서 산티아고 순례길 얘기까지 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사업이 많이 축소되었다.
그래서 생각보다 투어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다.
마음에 드는 업체가 있으면 모객이 가능한 날짜를 조율하고, 안 될 경우 새로운 업체를 찾는 연속이었다.
예약을 한다 해도 모객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 이틀 전에 투어가 취소되거나 날짜가 바뀌기도 했다.
그래서 초반 바르셀로나 투어들만 미리 예약을 해두고, 그 이후에는 그때그때 예약하기로 했다.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입장권들도 섣불리 구매할 수 없었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날 불안하게 했고 은근한 스트레스를 주었다.
그러나 이건 문제도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출발 3일 전, 엄마와 동생을 직접 만나 짐을 꾸릴 때 발생하기 시작했다.
예정되었던 퇴사날이 되었다.
감사인사를 드리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자취방으로 향했다.
약 한 달 간은 방을 비울 테니 열심히 청소를 하고, 다음 날 본가로 향했다.
여행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기인한 불안함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날씨는 어떨지, 동생과 어떤 옷을 공유할지, 그럼 어떤 옷을 가져가야 할지, 버리고 올 만한 것들은 있는지!
엄마와 동생은 무거운 것을 잘 못 드니 기내용의 작은 캐리어를 가져가기로 했다.
20일 여행에 그 작은 캐리어라니! 그럼 나는 계획했던 것보다 더 큰 캐리어를 가져가야 하려나?
많은 고민을 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집에는 나의 고민을 함께 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이모들과 통영에 여행을 갔고, 동생은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출국 3일 전인데 말이다!!!
내가 가자고 한 여행이니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이라니!!
엄마가 통영에 간다는 것은 알고는 있었지만, 짐은 조금 싸 두고 갔을 줄 알았다.
빈 캐리어만 덜렁 있는 것이 아니라!
짜증이 났다.
그리고 나는 짜증이 바깥으로 표출이 되는 미성숙한 사람이었다.
먼저 온 동생은 대충 내 눈치를 보며 짐을 챙겼다.
그리고 출국 2일 전,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피곤해서 일단 쉬겠다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행을 하면 피곤하니까 그럴 수 있다.
그래도 저녁에는 준비하겠지?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결국 틱틱거리던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엄마에게 짐을 싸라고 했고, 엄마는 짐을 쌌다.
평소 엄마와 말다툼을 하게 되면, 엄마는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려 내 일방적인 짜증이 되어버리곤 한다.
이번에 엄마는 짐을 싸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침묵이 엄마도 자기가 어느 정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트러블의 시작이었다.
나는 엄마가 어떤 상황인지 잘 몰랐다.
사실 갱년기가 뭔지 몰랐다.
그냥 열 좀 오르고, 짜증이 많아지는 건가?
흔히들 갱년기를 사춘기에 비유한다.
하지만 나는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 말고는 내 사춘기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의 갱년기도 여행하면 다 낫겠지 생각했다.
갱년기는 뼈마디가 부딪히면 비명을 지를 정도로 아프고, 불면증에 시달려 이명이 들리고, 우울증이 온다는 것을 몰랐다.
당시 엄마는 이를 극복하고자 나름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한약과 수면제를 복용, 당신의 자매들과의 여행 등이 그 노력에 해당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열심히 여행을 준비하는 불쌍한 ‘나’에 심취해있었다.
그래서 짜증을 내는 것은 어쩌면 내 권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명령조로 짜증을 내는 것이 늘어나자, 엄마는 어두운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 버렸다.
나는 그런 엄마에게 답답함을 호소하며 대답을 강요했고, 옆에 있던 동생은 내게 엄마에게 예의 있게 굴라며 부채질을 했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던 중 출국 하루 전, PCR 검사를 하러 갔을 때 터지고 말았다.
인터넷에서는 PCR결과가 제법 빨리 나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결과는 늦어졌고, 병원 근처에는 마땅히 주차를 할 공간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엄마는 폭발했고, 예상보다 높은 PCR 검사비에 예민해져 있던 나도 짜증을 냈다.
내가 말했다.
“여행은 계속 나 혼자서 준비했는데, 이 정도 가지고 대단한 피해자인 척하지 마.”
피해자인 척하지 마라. 이 말은 피해자라는 것을 부정하는 말이다.
전 직장에서 피해를 입고도 외면당했던 엄마에게, ‘피해자인 척하지 말라’는 큰 상처가 되었다.
침묵이 시작되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되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엄마는 얼마의 손해가 있든,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하는 사람이다.
갑자기 엄마가 여행을 안 가겠다고 선언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제야 슬슬 눈치를 보며 동생과 엄마에게 대화를 좀 하자고 했다.
그런데 사실 대화는 아니었다.
일방적인 내 통보였다.
엄마는 할 얘기가 없다 했고, 동생은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와 동생을 붙잡고 여행 준비에 협조 좀 해달라고 했고,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나는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매일마다 퇴근을 하면서 삼십 분씩 통화를 했던 그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짜증을 낸 건 미안하다 사과하고 나도 자리를 비웠다.
어찌 되었든 무사히 PCR검사지를 받았고, 비행기 체크인을 하고, 스페인 입국을 위한 큐알코드도 발급받았다.
문제의 짐도 다 쌌다.
준비는 다 되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그 불안감에 휩싸여 엄마는 여행을 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척했다.
여행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그러나 갱년기는 단순히 여행을 한다고 괜찮아지지 않는다.
엄마에게는 여행이 아닌 신경외과적인 치료가 먼저라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