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신고식,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서 첫째 날

by 김김이


나는 지금껏 내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해외에 많이 나가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비행기를 타면서 한 번도 내 캐리어가 분실되거나, 손상되거나, 늦게 나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그런 사례들을 보면 운이 안 좋은 사람들인가 보다 했었다.


그런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깨달았다.




순조롭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공항직원이 편의를 봐주어서 엄마와 동생 셋이 함께 입국심사를 할 수 있었다.

여행기간이 3주라는 말에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보여달라고 했고, 항공사 어플을 보여주니 빠르게 통과시켜주었다.

미리 작성해둔 스페인 입국 큐알코드도 패스.


시작부터 좋다고 생각했다.

이제 짐만 찾아서 숙소로 가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의 캐리어는 나오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짐이 아직 안 나온 몇몇 사람들이 더 있었고, 함께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나, 다들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도 화가 났다.


그렇지만 어떤 행동을 하진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할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나는 해외에서 불의를 마주해도 참는 편이었다.

나는 외국인이고, 소수다.

언어는 둘째 치더라도 내가 여기서 컴플레인을 걸어 저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면 더 큰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첫 유럽여행에서 기차에서 캣콜링을 당했을 때도, 교환학생 생활을 하면서 거주증을 받으러 갔을 때 직원이 똑같은 서류에도 굳이 내 것에만 트집을 잡아도 그랬다.

그 자리에서 뭘 해봤자 나만 손해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구글맵에 후기를 남기는 게 다였다.

어찌 되었든 나는 해외에선 부당하든 어찌 되었든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엄마와 동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항의를 하러 가자고 했다.

나를 앞세워서 말이다. 셋 중에서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동안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틱틱거리고 나 혼자 고생하고 있다며 으스댔는데, 도저히 그 자리에서 뺄 수가 없었다.

괜히 강한 척 그래! 따지자! 하고 갔지만 떨렸다.

나… 영어를 잘하는 건 아닌데 컴플레인을 잘 걸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그런 상황은 피하는데..


고객센터로 향하는데 우리와 함께 기다리던 한 아저씨가 따라와 클레임을 걸러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같이 가자고 한다.

나보다 영어든 스페인어든 더 능숙해 보이는 아저씨에 한시름 덜고 함께 고객센터로 갔다.

답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아, 맞다. 이게 유럽이지. 새삼 유럽에 온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와 나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기다렸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드디어 캐리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내 캐리어를 발견해 챙기면서 우연히 옆을 보았는데, 캐리어가 깨진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깨진 캐리어를 힐끔 보더니 그냥 그대로 공항을 나가버렸다.

운이 안 좋은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며 우리도 공항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동생의 캐리어도 깨져있었다.

운이 없는 것은… 우리도 포함이었다.



기내용 캐리어를 위탁해서일까? 아니면 재질도 안 보고 그냥 저렴하게 구매해서일까?

그 순간에 별의별 원망이 다 들었다.


만약 나 혼자였다면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깨진 건 아니니까 캐리어를 들고 그대로 나갔을 것 같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다시 고객센터로 향했다.

이번에는 아까 함께 갔던 그 아저씨도 없다. 아저씨는 본인의 캐리어를 찾고,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척 보이며 그대로 공항을 빠져나갔으니까.

떨리는 마음으로 고객센터 앞에 섰다.


캐리어가 깨졌으니 리포트를 작성하겠다 하자, 역시 답은 기다려라였다.

15분 정도 기다렸나? 드디어 직원이 나에게 서류를 줬다.

서류를 작성하고 캐리어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다시 기다려 항공사에 제출할 서류를 받아 공항을 나오니 아무도 없었다.


우리 바르셀로나 시내에 어떻게 가야 하지?



원래는 사람들을 따라가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아무도 없다니!!

막막했고, 캐리어에 관한 일들로 정신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버스 티켓 기계를 만지작 거리다가 시내버스가 오자 기사 아저씨에게 바르셀로나 시내에 가는 버스냐고 물어봤다.

아저씨는 웃으면서 앞에 저 공항버스를 타라고 한다.

그제야 아! 맞아 저 하늘색 공항버스를 타야 했지!

아저씨에게 연신 스페인어로 고맙다는 뜻인 ‘그라씨아스!’를 외치고 공항버스로 뛰어갔다.



공항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향했다.

신이 난 것은 동생뿐이었다.

나는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어서인지 기운이 좀 빠졌었고, 엄마는 핸드폰 충전을 해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볼 수 있는 몬주익 왕궁 쪽으로 눈길도 주지 않았다.

동생은 SNS에 게시글을 업로드하느라 바빴다.


공항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숙소만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다.

핸드폰이 터지지 않았다.

분명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해외 유심으로 바꿨는데 인터넷이 안 됐다. 사용설명서를 잘 안 읽은 것이 이렇게 업보로 돌아온 것이다.



어떻게 하루 동안 이렇게 많은 일이 연속으로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당황한 나와, 숙소에 언제 가냐는 엄마, 그리고 신나서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저 멀리 가버린 동생.


멘붕이었다.


겨우겨우 끊어질 듯 약한 광장의 와이파이를 잡아 구글맵을 켰다.

숙소 체크인 오피스 건물 근처까지 도착해 입구를 찾고 있는데, 우리를 발견한 숙소 직원이 밖으로 나와 안내를 해준 덕분에 체크인을 완료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 숙소


그렇게 무사히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해외에서 살게 된다면 이런 아파트먼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방 하나에 주방과 거실이 딸린 숙소였다.

하지만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입장 시간이 얼마 안 남았기 때문이다!

원래 계획은 숙소에서 충분히 쉰 다음에 성당에 가는 일정이었지만 공항에서 두 시간을 넘게 지체하는 바람에 늦어졌다.


옷만 갈아입고 숙소 와이파이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 가는 방법을 모조리 캡처해둔 뒤 성당으로 향했다.





지하철을 타고 환승 없이 한 번에 도착했다.

뒤돌아보라는 내 말에 뒤돌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처음 보는 엄마와 동생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우와!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이전까지 있었던 일은 모두 잊게 되었다.

아무렴 어때? 다 해결되었고, 이렇게 좋아하는 걸!

그런데 자세히 보던 엄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좀 징그러운데? 저 기둥은 옥수수인가?”


흥이 깨졌다.

멀리서도 한번 보자며 연못 건너편 포토존에서 사진도 몇 장 찍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유럽의 관광지들은 공항처럼 입장 전에 몸수색을 하는데, 내가 하도 여행하면서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라고 해서인지 엄마는 몸 안쪽에 숨겨둔 지갑과 여권 등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런 것 까진 안 꺼내도 되는데..

어쨌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다른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수 있다.




엄마와 동생은 또다시 탄성을 질렀고, 나는 예전에 가이드 투어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며 짧은 설명을 했다.


“성당 내부는 자연을 모티프로 하고, 기둥은 사람의 뼈를 모티프로 한 거래. 그리고 성당 지하에는 가우디 무덤이 있어. 원래는 전망대도 올라갈 수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닫았나봐”

“여기서 진짜 미사를 드리기도 하니?”


모르는 질문이다.

대충 그런 것 같다며 말을 돌리고 찬찬히 구경을 했다.

한편 동생은 난리도 아니었다.

너무 예뻐! 그렇게 그녀의 런웨이가 시작되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계속 가방과 외투를 집어던지는 동생에게, 다른 곳에서도 이러면 소매치기들이 훔쳐간다는 경고를 했다. 하지만 동생이 들을 턱이 없었고, 나는 사진을 찍어주었다.

돌아오는 것은 사진을 못 찍는다는 동생의 타박이었다.

내가 봤을 때는 괜찮은 것 같은데…

다시 찍어달라는 데로 양껏 찍어준다.

엄마도 찍어주려 보니, 엄마가 없어졌다.


허둥지둥 주변을 살피는데 엄마는 저 멀리 의자에 앉아있다.

엄마의 곁으로 다가가 옆에 앉았다.

엄마도 내가 처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 들어왔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엄마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스페인 성당은 의자도 예쁘다며 묵직한 의자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생각했던 답은 아니었지만 그랬다.

저기로 가면 기도하는 공간도 있어. 한번 가볼래? 엄마는 그러자고 했다.


기도하는 공간은 파티션이 쳐져있고, 입구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댔다.

엄마는 이곳이 기도하는 공간이냐고 묻고 싶었던 것인지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고, 경찰은 끄덕였다.

말 한마디 없이 엄마는 처음으로 외국인과 대화를 한 것이다.

엄마는 그냥 나가자고 했다. 엄마에게 왜 기도를 안 하냐고 물으니 그냥이라고 답했다.


한편 동생은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우리가 없어진 것을 느꼈는지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왜 자신을 두고 갔냐는 동생의 물음에 나도 그냥이라고 답했다.


우리는 성당 아래 박물관을 둘러보고, 화장실을 들렀다 성당을 나왔다.

벌써 해가 져있었다.







성당 바로 앞에 큰 마트가 하나 있어서 장을 보고 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유럽의 물가를 실감하니 사고 싶은 게 많았다.

반면에 엄마는 유럽 화폐의 감이 안 잡혀서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생에게는 먹고 싶은 간식들을 골라오라 하고, 엄마를 오렌지주스를 짜는 기계 앞으로 데려갔다.


이게 뭐니?

생오렌지주스를 짜는 기계야. 오렌지 100%.


엄마에게 기계를 작동하는 법을 알려줬다.

엄마는 최대한 많은 주스를 병에 담으려다 조금 흘렸다.


엄마는 빨간 것이 먹고 싶다고 했다. 토마토파스타? 턱도 없는 소리였다.

다행히 내가 몇 개 챙긴 비빔장소스가 있었다.

그걸로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우리는 동생이 고른 간식들과 다음날 먹을 것들을 샀다.

성당도 그렇고, 장보기도 잘 끝냈으니 숙소로 돌아가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아직 바르셀로나 신고식이 끝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데 이번에는 내 교통권이 말을 안 듣는다.

사람들은 뒤에 줄 서있지, 엄마와 동생은 건너편에서 어쩔 줄 몰라하지, 이때 진짜 미치는 줄 알았다.

주변에는 티켓 기계만 있을 뿐이었다.

엄마와 동생은 그냥 넘어오라고 했다.

하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독일에서 동양인인 나만 콕 집어 교통권 검사를 했던 기억, 여행카페에서 몰래 지하철을 탔다가 프랑스에서 교통권 검사를 해서 벌금을 물었다는 글이 떠올랐다.


아 쫌! 내가 알아서 할게!


결국 엄마와 동생에게 짜증을 내고 티켓 기계에서 새로운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드디어 들어왔는데, 지하철 역 안 쪽에 위치한 인포메이션센터를 발견했다.

지하철 티켓을 끊어야 인포메이션 센터를 갈 수 있는 것이다.

인포메이션센터에 들어가 인식이 안 되던 티켓을 환불해달라 했다.

그런데 한번 사용했던 것이라 그런지 새것을 주겠다 했다.

그거라도 받았다.




화려한 신고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첫날인데, 일정도 많은 게 아니었는데 너무 지친다 지쳐.


여행 중 고기를 먹을 때 요긴하게 쓰였던 팔도비빔장 소스


엄마 말에 따르면 제육볶음은 더 달았어야 했다고 했지만, 제육볶음도, 파스타도 맛있었다.

엄마는 특히 저 만두 같은 라비올리와 고기가 들어간 볼로네제 소스가 괜찮다고 했다.


우리는 와인을 한잔 마시면서 오늘 있었던 다사다난함에 대해 얘기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주제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내가 짜증을 낼 때 내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무섭고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뭘 했다고!라고 묻자 찌푸린 얼굴이, 툭툭 내뱉는 말투가 너무 무섭다고 했다.

동생도 내가 너무 예민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짜증을 낸다고 했다.

엄마는 말을 하다가 감정에 북받쳤는지 휴지를 달라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할 말은 없었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오늘 많이 짜증을 내기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런 것들에 유연성 있게 대응할 줄 알아야 한다.

오늘 나는 그 유연성이 좀 부족했다.

그리고 처음 외국에 왔다는 것에 대해 긴장한 엄마를 위한 배려도 부족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사춘기 때 말 한마디에 감정이 오르내리지 않았는가.

엄마를 회복시키자라는 변명 아래 여행을 왔는데, 배려는 커녕 나 혼자 여행을 하는 것처럼 너무 감정적으로 굴지 않았나 반성했다.


오늘은 여행 첫날이니까 좀 봐줘. 앞으로 짜증을 덜 내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첫째 날이 지나갔다.

엄마는 그 다사다난함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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