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그것이 문제로다

바르셀로나에서 둘째 날

by 김김이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 요도괄약근이 약해진다.

게다가 나이를 먹으면 노화로 인해 방광이 아래로 쳐져서 화장실을 자주 가게 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중년의 엄마와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에 대한 정보에 밝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차 적응 때문이지 새벽 5시쯤에 잠에서 깼다. 불면증으로 뒤척이던 엄마는 잠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고, 동생은 잘 자고 있었다.

조심히 거실로 나갔다.

전날 인터넷이 안 되는 바람에 겪었던 충격과 공포의 상황을 또다시 겪을 수는 없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시차를 맞춰 유심칩 판매처와의 실시간 채팅 상담을 할 수 있었고, 유심칩을 다시 개통했다.

드디어 인터넷이 터진다! 전화는 여전히 안됐는데, 판매처에서는 현지에 있는 유심 매장에 가서 알아서 해결하라 했다.

번거롭기도 했고, 인터넷이 잘 되니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인터넷이 있으면 무엇도 두렵지 않다.



여행을 하다 보면 끼니를 거르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그렇기에 평소 아침밥을 잘 안 먹더라도,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전날 사둔 요플레를 꺼내려는데 어느새 방에서 나온 엄마가 부스럭거리며 그 작은 캐리어에서 비닐팩을 꺼냈다.

엄마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자, 비상식량이라고 했다.

비닐팩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봉지 수프와 젤리가 있었다. 젤리는 한국보다 여기가 더 종류도 많고 싼데..라는 말을 삼키고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아침으로 엄마의 수프를 나눠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는 오늘은 어디에 가는 거냐고 물어봤다.

몬세라트, 그러니까 산에 간다고 얘기해줬다. 엄마는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 잘 됐다고 했다.

그래 엄마, 우린 산에 갈 거야.



바르셀로나의 시내에서 몬세라트에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스페인광장역으로 가서 시외기차를 타면 된다.

출발하기 전에 광장을 산책하려고 일찍 숙소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나왔다. 엄마에게 ‘이게 끝이야?’라는 말을 들으며 산책은 아주 빠르게 끝났다.

어쩔 수 없이 계획보다 빨리 지하철을 타고 스페인광장역으로 향했다.

몬세라트로 향하는 기차는 정말 여유로웠다.

옛날에는 사람이 꽉 차다 못해 서서 갔었는데, 이 시국에 여행하면 이런 장점도 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 몬세라트의 돌산이 보였다.


가우디가 저 산을 보고 어제 갔던 성당을 건축한 거래.


내 말에 엄마는 조금 관심을 보였고, 동생은 사진 찍을 때 창문에 내가 비치니 비키라고 했다. 나는 네가 다른 자리로 가라며 자리에서 버텨 동생을 쫓아냈다.

도착한 몬세라트. 이제 산 위로 올라갈 차례다.

몬세라트 역에서 산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케이블카, 다른 하나는 산악열차다.

나는 산악열차가 좋다. 앞서 언급했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한 로망과 비슷하게, 산악열차라는 단어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알프스 소녀의 하이디를 떠올린다. 나는 대중교통편에 대한 판타지가 많은가 보다.

내가 처음 산악열차를 타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엄마와 동생도 느껴보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열차 밖으로 보이는 절벽이 무섭다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수도원에 도착했다.

이제 해야 할 것은? 바로 화장실 가기다.

무료화장실이 별로 없는 유럽에서는 눈에 보이는 관광지 내의 화장실은 한 번쯤 다 들어가 봐야 한다.

다 같이 볼일을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추위였다.

스페인이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12월, 겨울은 겨울이었다. 게다가 수도원은 해발고도 725m에 있으니 추웠다.

경량 패딩에 목도리까지 한 나는 혼자만 따뜻하게 입었다는 눈초리를 받았다. 거기다가 평소에 다른 건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는 척을 하면서, 오늘은 따뜻하게 입으라고는 말 한마디 안 해줬다는 싫은 소리도 들었다. 내가 산에 간다고 했잖아..


성당을 둘러봤다.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소년 성가대다. 그런데 소년 성가대는 방학을 해서 모두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 이 아쉬움을 엄마에게 말했더니, 엄마는 소년합창단이 싫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예전에 수도사들이 소년들을 성적으로 학대를 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봤었던 기억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안 좋은 기억은 머리에 오래 남나 보다.

소년 성가대에 관심이 없는 엄마를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따뜻한 기념품샵으로 향했다. 의외로 아기자기한 것들이 좀 있었는데 구매하지는 않았다.

기념품샵을 나왔는데도 아직 날은 추웠다.

엄마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카페는 말로만 듣던 백신큐알코드를 검사했다. 우리가 미리 발급받아온 큐알코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사실 혼자 여행할 때는 굳이 카페를 가지 않는다. 혼자 돌아다니면서 구경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괜히 인터넷에서 어디 관광지 그 카페 비싸고 맛없어요!라는 글을 보고 괜히 겁먹었었기 때문이다.

몬세라트에 있는 카페도 내가 알기로는 평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었다. 실제로 맛은 보통이었다. 하지만 양이 정말 많았다.

우리는 커피, 그리고 감자튀김과 감자조림을 먹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감자만 먹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감자가 참 따뜻해 보였다.

보기와는 달리 감자조림은 차가웠지만 산 위에 있는 산장카페의 경험은 새로웠다.



몬세라트의 절경을 마저 둘러보고 바르셀로나로 돌아갔다.

기차를 타기 전에 엄마는 당이 떨어졌는지, 한국에서 가져온 그 젤리를 먹었다.

바르셀로나로 가는 기차 안에서 생각했다. 스페인은 음식이 맛있는데, 아까 먹은 감자조림을 스페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엄마와 동생이 그 감자조림을 스페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꽤 비극이다.

외식은 최소화하기로 했지만 그래도 한 번쯤은 타파스 가게에 가도 되지 않을까? 시간도 애매해서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그렇게 우리는 첫 외식을 하기로 했다.

첫 외식 장소는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바르셀로나 맛집, 권혁수가 먹고 눈물을 흘렸다는 꿀대구 요리를 파는 비니투스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내에서 부유한 도시로 여겨진다. 그래서 그런지 식당 안에는 한국처럼 투명 아크릴 가림막이 설치되어있었다.




나는 세 종류의 타파스를 시켰다.

워낙 먹는 양이 적은 엄마는 무슨 음식을 세 개나 시키냐며 질색했지만, 막상 나온 타파스의 양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이건 그냥 음식이 아니라 타파스야. 술안주 같은 개념이야.


그래도 엄마는 양이 너무 보잘것없다고 했다.

맛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럭저럭 먹을만하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이 샹그리아를 안 마시겠단다.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둘이서 많은 양의 샹그리아를 마셔야 했다.

이때 엄마는 조금 과음을 한 것 같았지만, 화장실을 한번 다녀왔으니 괜찮다고 했다.





남은 일정은 가볍게 시내를 둘러보고 싶어서 신청한 바르셀로나 시내 야간 산책 투어다.

투어 전에 숙소에서 쉴까 했는데,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자라’를 발견했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 트레이닝복만 가지고 왔다. 평소 엄마가 여행을 할 때 그렇게 짐을 싸기도 하고, 해외에 자주 다니는 삼촌이 옷은 여행지에서 사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스페인에 가면 자라 옷이 싸다고 하도 말을 해놔서 그런가, 엄마는 자라에 가자고 했다.

자라에는 쇼핑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런데 많은 인파 속에서 옷을 구경하다 보니 엄마를 놓치고 말았다.


엄마 어딨어?

몰라.


둘러보니 엄마는 제법 귀여운 파란 니트와 패딩조끼를 골라 계산을 하기 위해 줄을 서있었다.

생각보다 엄마는 혼자서도 잘하는 것 같다. 한편 동생은 엄마가 산 니트를 보며 자기도 입어야겠다며 탐을 냈다.



숙소에 짐을 두고 투어 미팅 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서 달려갔는데 우리가 1등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엄마와, 그 뒤에 여유 있게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천천히 와도 될뻔했다고 생각했다.


가우디가 직접 디자인한 가로등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아서인지 바르셀로나 시내는 조명으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한참 가이드에게 가우디와 바르셀로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엄마가 귓가에 속삭였다.


근처에 화장실은 없니?


아뿔싸! 샹그리아의 2차 신호인 것이다! 많이 급하냐는 물음에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이동하는 중에 가이드에게 근처에 화장실은 없냐 물었으나 난처한 표정으로 화장실 이용은 어렵다고 했다. 엄마는 급한 건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중간중간 엄마의 급함을 체크하며 가이드를 따라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에 다 달았다.


걷는게 조금 힘들었을 엄마와 동생


박수와 함께 투어가 끝났고, 화장실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숙소까지 좀 걸어야 해서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버스 배차시간이 길어 걷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게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숙소까지 빠른 걸음으로 가기로 했다. 열심히 걸어 무사히 화장실 아니, 숙소에 도착했다.




침대에 누워 엄마에게 오늘 투어가 어땠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이렇게 해서 투어사는 얼마를 받냐고 물어봤다.

썩 좋은 반응은 아닌 것 같다.

아무렴 어때. 엄마에게 오늘은 간의 투어고, 내일은 좀 더 길고 더 힘든 진짜 투어를 할 예정이니 일찍 자라고 했다.

엄마는 오늘은 많이 걸어서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잠들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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