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동루이스 다리

포르투에서 첫째 날

by 김김이


사람마다 무서운 것이 있다.

내 동생은 바이킹을 무서워해서 한 번만 타자고 애원해도 절대 타지 않고, 남동생은 벌레를 무서워해서 한여름에도 방에서 창문을 열지 않고 선풍기만 켠다. 나는 예전에 선단 공포증이 있어서 바늘의 뾰족한 부분을 잘 못 봤었다. 아빠는 치즈를 무서워(싫어)했어서 치즈가 들어있다고 하면 내 샌드위치를 뺏어먹으려다가도 다시 내려놓곤 했다. 이제는 아빠도 치즈를 먹게 되어서 치즈 경쟁자만 늘어났지만 말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로 말하자면, 정말 다양한 것들을 무서워하는 공포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리스본을 떠나 포르투갈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포르투로 향한다.


예전에 혼자 여행을 하면서 엄마와 함께 오고 싶은 도시들이 몇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포르투다.

당시 날씨도 너무 좋았으며, 음식도 맛있고, 밤에 동루이스 다리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산책을 하는 것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좋은 것은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고 싶어 진다. 나는 엄마가 당연히 포르투를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엄마와 포르투를 공유하고 싶었다.




이른 아침의 리스본



리스본에서 못해본 것들이 많아 아쉽지만, 포르투로 가는 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처음에 지하철 방향을 잘못 타는 작은 실수가 있었지만, 무사히 포르투행 국영기차를 탈 수 있는 오리엔트 역에 도착했다.


오리엔트 역, 사진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리엔트 역은 1998년 세계 박람회를 위해 지어졌으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 1001’에 소개된 건축물 중 하나다.

하지만 이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이나 세고비아 수도교와 같은 굵직굵직한 건축물들을 본 이후여서 그런가, 엄마와 동생에게는 이 역이 특별하지 않게 느껴졌는지 역을 보고도 무덤덤했다. 뒤늦게 이 역에 대해 설명해주자 엄마는 사람의 갈비뼈 같다고 했고, 동생은 죽기 전에 봐야 할 것도 많다고 했다.



리스본에서 포르투까지는 기차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데, 지루한 시간이었다.

엄마는 갱년기를 겪는 중이라 밤에도, 낮에도 잠에 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뜬 눈으로 세 시간을 보냈고, 동생은 오랜 시간 앉아있는 것이 허리가 아파 엄마의 무릎에 반쯤 누워서 갔다. 나는 중간에 표 검사를 하느라, 우리의 캐리어가 괜찮은가 확인하느라, 옆에 새로운 사람이 오면 또 움찔하느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피곤한 와중에 맞은편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검은콩 두 개에 웃음이 나왔다.



반면 엄마는 개를 켄넬에 넣지도 않고 기차를 탔다며 화들짝 놀랐다.

엄마에게 유럽권은 개와 함께 생활하니 익숙하니 이해해야 한다고 말해주었지만, 엄마는 저러다가 개가 짖거나 실례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했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강아지는 소란 한 번 피우지 않았고, 도착지에서 조용히 주인과 함께 기차에서 내렸다.

강아지는 꼬리를 내리고 있었는데,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는 주인이 얼마나 애(개)를 잡으면 개가 저렇게 기가 죽어 꼬리를 팍 내리고 있냐며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반려견을 입양할 때 자격을 따지고, 반려견에 대한 철저한 교육 덕분에 개와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캄파냐 역에서 지하철과 같은 기차로 환승해 상벤투 역에 도착했다.


상벤투 역 내부는 아줄레주 양식으로 꾸며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지만, 그 벽들은 모두 공사 중이라 가려져있었다.


푸른 하늘의 포르투


날씨가 정말 좋았다.


포르투의 숙소는 새벽에 공항 이동에 용이하도록 공항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작은 호텔로 잡았다.

그리고 이 숙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의 근처이기도 했다. 숙소 체크인을 하기 전에 그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맥도널드 가드가 우리의 앞을 막아섰다.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지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포르투갈은 코로나19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었고, 식당 등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48시간 내 발급받은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지가 있어야 한다는 정책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그 정책의 적용은 12월 26일부터였다.

오늘은 24일이었고, 26일은 우리가 프랑스로 떠나는 날이었다. 그래서 타이밍이 딱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게 무슨 일이냔 말이냐!


나를 비롯한 출입이 금지된 사람들이 정책은 26일부터 아니냐고 물었으나, 가드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를 가져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음성 결과지가 있는 몇몇 사람들은 맥도널드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들 중 한 명을 잡고 어디서 검사를 받았냐고 물었다.

그 사람은 어제 근처 검사소에서 받았는데,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 검사소가 다 닫았을 거라며 어깨를 으쓱하고 떠났다. 유럽이란!

마지막으로 가드에게 포장은 가능하냐고 물었고, 가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맥도널드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동생이 신나게 사진을 찍는 동안 나는 키오스크를 잡고 씨름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맥도널드면 뭐하나, 맥도널드의 키오스크는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키오스크인데!

이 지점에서만 파는 메뉴도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찾아볼 여유도 없었다. 한편 엄마는 실내는 코로나가 무섭다면서 맥도널드를 나가버렸다.

난국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햄버거 세트들을 받고 맥도널드를 나와 엄마와 동생을 데리고 숙소로 돌아왔다.

엄마와 동생은 햄버거를 하나를 다 못 먹는 위장을 가지고 있어 햄버거를 잘라 나눠먹었다. 그러다 보니 양이 잔뜩 남아 저녁에 마저 먹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저녁으로 맛있어서 두 번이나 갔었던 식당에서 문어 요리를 먹는 것이었는데, 상황을 보니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어서 어려울 것 같다.

게다가 내가 크리스마스의 유럽을 너무 과소평가했다.

베를린은 크리스마스에도 옷가게며 식당, 마트 어느 정도 열었었는데 포르투는 얄짤없을 것 같다. 분명 내일은 크리스마스라 가게들이 문을 다 닫을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 우리는 내일 먹을 음식을 사고, 장도 봐 둬야 한다.

아까는 날씨가 좋았는데 날이 흐려지고 있으니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먼저 포르투 시내에 있는 큰 쇼핑몰로 향했다.

아르마스 교회


언덕들을 지나 쇼핑센터로 향하는 길에 아르마스 교회를 지나쳤다. 아르마스 교회는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인 아줄레주 양식으로 장식된 앤티크한 느낌이 물씬 나는 교회였다. 그러나 엄마와 동생은 관심이 없었다.



그래, 쇼핑몰이나 가자.


크리스마스를 앞둔 쇼핑몰, 동생은 아르마스 교회보다 이 트리를 더 좋아했다.


쇼핑몰 지하에 있는 마트에서 물과 시리얼, 우유 등을 샀다.

1월 6일 동방박사가 온 날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마트와 베이커리에는 스페인 전통 빵인 로스꼰이 진열되어 있었다. 형형색색의 로스꼰을 한번 구매해서 먹어볼 법도 했으나, 로스꼰은 정말 컸다. 케이크보다 더 컸다. 평소 가족 중 누군가의 생일이면 베이커리에서 파는 가장 작은 케이크를 먹는, 그것마저도 남기는 우리 집, 특히 나와 달리 아주 작은 용량의 위장을 가진 엄마, 동생과 함께 로스꼰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안 되었다.

그래서 로스꼰을 통째로 사는 대신 카페에서 조각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장을 보고 나오니 카페에서 옷가게까지 모조리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게 포르투의 크리스마스이브인 것이다.

아직 내일 먹을 식사 거리는 못 샀는데! 빠른 걸음으로 숙소 쪽으로 향하는데 비가 우수수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삼단 우산 하나에 머리만 넣고 비명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다행히 숙소 앞 핫도그 가게는 아직 문이 열려있어 내일 먹을 핫도그 세 개를 포장해왔다.

정신없는 크리스마스나기 준비였다.



힘이 빠져 침대에 누워있다 보니 어느새 해도 지고 비도 그쳤다. 우리는 맥주를 들고 동루이스 다리에 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포르투를 사랑하는 이유의 7할은 에펠탑을 만든 에펠의 제자가 만들었다는 동루이스 다리라고 생각한다.

오늘 정말 정신없었지만, 동루이스 다리에만 가면 포르투에 대해 좋은 기억만 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루이스 다리에 가는 길에 지나친, 산투 일데폰소 성당


크리스마스이브라서 그런지, 비가 왔어서 그런지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나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어렸을 때 봤던 영화를 보면 꼭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며 무섭다고 했다.

그런 영화는 주로 안개 낀 영국 아닌가? 그러나 저러나 엄마는 무섭다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가려면 선택을 해야 한다.

위로 갈 것이냐, 아래로 갈 것이냐.

포르투도 리스본 못지않게 엄청난 언덕의 도시다. 우리의 숙소는 따지자면 다리의 윗길이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오늘 엄마와 동생의 남은 체력을 생각했을 때, 내려갔다 올라가는 것은 힘이 들 것이라고 생각해 위로 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동루이스 다리의 윗길


동루이스 다리의 아래 길은 차가 다니지만, 위로는 트램이 다닌다.

위아래 모두 양쪽으로 도보가 있는데, 아무래도 윗길은 트램이 지나지 않을 때 트램 길로 갈 수 도 있기 때문에 폭을 더 넓게 쓸 수 있다.

윗 길로 갈 때의 또 다른 장점은 멋진 도나우강의 전경을 볼 수 있다. 특히 야간에 지난다면,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본 도나우 강 전경


나와 동생은 이 야경을 보며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하며 천천히 다리를 건넜다. 그런데 우리와는 달리, 엄마는 누구보다도 빠른 걸음으로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왜 그러지? 추워서 그런가? 엄마를 쫓아가 동루이스 다리가 어떠냐고 물었다. 엄마는 말 시키지 말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내가 다시 묻자 엄마는 질색하며 대답하고, 다시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 향했다.


“무서워, 무섭다고!”


그제야 아차 싶었다. 엄마는 높은 곳과, 물을 무서워한다. 그 둘이 콜라보된 곳이 바로 이 동루이스 다리인 것이다.

엄마는 평소에 운전을 할 때도 아래 물이 흐르고 있는 다리를 지나면, 아래가 보이는 것이 무서워 1차로로 달리곤 했다. 그런 엄마 입장에서는 도보가 난간 쪽으로 있는 동루이스 다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엄마에게 지금은 트램이 안 다니니 안쪽으로 가도 된다고 외쳤지만, 이미 저 멀리 가버린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허탈하기도 하고, 짜증이 났다.

엄마는 왜 이렇게 좋은 것을 보고도 즐기지 못하는 걸까? 아깝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엄마의 무섭다는 말을 듣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나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까 비가 왔어서 바닥이 미끄러운데 만약 실수로 헛디뎌 아래로 떨어지면 어떡하지? 여분의 신발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도 핸드폰은 방수라서 다행이다.


동루이스 다리


다리를 다 건너고 나서야 엄마는 진정할 수 있었다.

나름의 소동을 겪고 나니 엄마나 나나 동루이스 다리에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동생만 신이 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오늘도 쉽지 않은 하루인 것이다.

맥주나 마시자


하지만 맥주를 마실 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몰 스팟으로 유명한 모로 공원은 밤이 되니 딱히 어두울뿐더러, 사람도 없었다.

‘이렇게 어두침침하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게다가 비가 왔어서 벤치들이 모두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나마 밝은 곳에 위치한 마른자리를 찾다 보니, 어떤 뷰도 볼 수 없는 트램 역 입구 앞 벤치에 앉아야 했다.




정말 낭만도, 무드도 없었다.


맥주를 마시다 갑자기 엄마는 작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바로 낮에 샀던 시리얼이었다. 안주가 있어야 한다며 작은 봉지에 덜어온 시리얼을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춥고 궁상맞다고 생각했는데, 엄마와 동생은 초콜릿으로 코팅된 시리얼이 맛있다며 좋아했다.

좋으면 된거지 뭐.





숙소로 향하면서, 엄마가 따듯한 국물을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리의 숙소는 커피포트가 없는 호텔이었기 때문에, 나는 따뜻한 물이 룸서비스로 가능한지 호텔에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도착하니 엄마가 이번에는 아까 산 핫도그가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국물은 내일 먹기로 하고, 오늘은 핫도그를 먹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나는 뜨거운 물이 룸서비스로 가능한지 데스크에 물어보았다.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남자 직원은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고, 내가 내일도 가능하냐고 묻자 15분 전에만 말해달라고 했다. 돈을 내고 내일모레 탈 비행기 티켓도 프린트했다.


그 사이 엄마와 동생은 핫도그를 세팅해두었다.


구글맵 평도 꽤 좋았던 핫도그


엄마는 낮에 먹은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이 핫도그가 훨씬 맛있다고 했다.

겨우겨우 들어가서 주문한 햄버거구만… 나도 핫도그를 먹어보았다. 엄마 말대로 핫도그는 맥도널드 햄버거보다 맛이 있었다.






사람은 똑같을 수가 없다. 각자 다른 취향과 입맛, 다른 공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싫고 무서운 것일 수 있다. 예전에 여행을 하면서는 각자의 취향도 따지지 않고, 그 자리에 없는 엄마를 마음대로 상상하며 내가 해주는 것은 모두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에게도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무서워하는 것이 있다.


왜 나는 엄마들은 자식들이 해주는 것을 무조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엄마가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경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좋아하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저녁에 높은 곳에서 야경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엄마는 그 시간에 숙소에서 쉬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인 것이다.

엄마와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당연스럽게도 ‘딸, 덕분에 너무 좋았어. 고마워’라는 말을 기대했고, 엄마는 어린 시절 싫다는 콩과 버섯을 먹으라고 강요받았던 나처럼, 원하지도 않는 것을 강요당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엄마에 대해서, 엄마의 취향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단순히 모르는 것을 가르쳐준다, 경험시켜준다라는 명목 아래 오히려 엄마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아니었을까 반성한다.

타인을 완전히 아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엄마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 자식이 되고 싶다.



그러니까 내일은 아래 길로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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