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의 크리스마스 악몽

포르투에서 둘째 날

by 김김이


마드리드를 여행하면서 앞서 언급했듯이, 유럽은 일요일에 대부분의 가게들이 문을 닫는다.

일요일은 휴식이라는 기독교적인 개념이 남아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직원들에게도 일요일은 온전한 휴일인 것이다.

한편, 일요일 못지않은 휴일이 있는데, 바로 공휴일이다.

잠시 도시를 머무르다 떠나는 관광객들에게는 불편한 휴일일 수도 있으나, 관광명소나 관광지 쪽에 위치한 식당들은 일요일이나 공휴일에도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니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 보통이면 크리스마스 당일인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다. 우리에게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다.

그 두 가지가 합쳐져 포르투를 지긋지긋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와 동생은 벌써 일어나서 아침으로 요거트와 시리얼을 먹고 있었다.

왜 다들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인가,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사실 우리 집에서 아침잠이 제일 많은 것은 나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오늘은 정말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예전에 포르투에 왔을 때는 옷가게들을 구경하랴, 식당을 찾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랴, 동루이스 다리 옆 모루공원에서 노을을 보며 와인을 마시랴 정말 할 것이 정말 많았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그것도 코로나 음성 결과지 없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와이너리 투어나 파두 공연이라도 예약해둘 걸 후회하다가 어차피 크리스마스고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으니 안되었을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정말 ‘일단 나가보자’라는 마인드를 싫어하는데 오늘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단 나가보는 수밖에…

나도 일어나서 씻고, 엄마와 동생처럼 아침을 먹었다. 우리는 조금 더 뒹굴거리다 점심으로 남겨둔 햄버거와 핫도그까지 먹고 일단 나가보았다.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히베이라 광장, 그러니까 동루이스 다리의 아래로 향했다.


비가 왔던 어제는 너무 추웠기 때문에 옷을 단단하게 껴입고, 숙소를 나섰다.

그런데 어찌나 덥던지! 어제와 달리 오늘은 날이 좋았다. 따뜻한 포르투 본연의 날씨였다.

결국 목도리며, 경량패딩들은 다 내 보조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클레리구스 성당


클레리구스 성당을 지나면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쓸 때 영감을 많이 받았다는 렐루서점이 나온다.

그런데 렐루서점의 문은 굳건히 닫혀있어 문 밖에서만 렐루서점 안을 들여다보았다. 예전에는 렐루서점 옆 해리포터 기념관도 구경했었는데, 아쉬웠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렐루서점 근처에 문을 연 카페를 발견했다. 동생이 어제 젤라또를 먹고 싶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서 젤라또를 먹기로 했다. 평소같았으면 1인1젤라또였겠지만, 많이 먹지 못하는 엄마와 동생이라 젤라또를 큰 사이즈로 한 개만 포장해서 나왔다.


엄마가 고른 패션후르츠맛, 동생이 고른 초코맛, 내가 고른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들은 세 가지 맛 모두 진짜였다.

패션후르츠맛은 정말 새콤한 그 맛이었고, 초코맛은 찐한 초코 그 자체였다. 무엇보다도 피스타치오 맛이 최고였다.


처음 유럽을 여행했을 때,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를 먹고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내가 아는 피스타치오 맛 아이스크림은 고등학교 때 줄창 먹었던 피스타치오마루, 베스x라빈스의 피스타치오 아몬드가 전부였었다. 그런데 유럽에서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를 먹고, 한국에서 먹었던 피스타치오들은 대충 민트맛을 때려 넣은 가짜였다는 것을 깨달았었다.

이 카페에서 산 피스타치오맛 젤라또는 진짜 피스타치오맛이 나는 고소한 젤라또였다. 그래, 이게 바로 피스타치오지!


나는 정말 맛있었는데, 동생과 엄마의 입맛에는 그저 그랬나 보다.

심지어 엄마는 본인이 고른 패션후르츠맛도 한 두입 먹고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동생은 초코맛만 먹고 사라졌다.

정말 맛있는 건데… 그래, 취향 존중한다!

결국 또 내가 다 먹었다.



우리는 아마 카르무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기도하는 엄마


카르무성당 안은 그동안 유럽의 화려하고 웅장한 성당들과 달리 아기자기했는데, 기억에 강하게 남은 것은 성당 한쪽에 실제 크기의 예수님의 모형이 있었다는 것이다.

기억에 남은 이유는 그 예수님을 골고다 언덕에서 방금 끌어내려 관에 넣은 것 같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모형을 본 엄마는 충격이라며 성당 밖으로 나갔다.



카르무 성당 앞에는 정말 놀랍게도 무료 코로나 검사소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

휴일에 검사소를 운영하는 유럽이라니? 상상도 못 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검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우리도 검사를 받아볼까 했지만, 어차패 검사 결과는 우리가 포르투갈을 떠나는 내일 나올 테니 받지 않기로 했다.


날씨 좋은 포르투



우리는 천천히 걸으며 포르투의 건물들을 구경했다.

엄마에게 건물들이 알록달록 아기자기하지 않냐고 물었으나, 벽이 얼룩덜룩해서 칠을 다시 해야겠다며 허술해 보인다고 했다. 나는 멀리서 보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아아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지만 멀리서 보면 사랑스러운 도시 포르투여, 우리 엄마 마음에는 들지 못한 것 같다.



우리는 공원 벤치에 앉아 엄마의 어렸을 적 이야기, 엄마의 친구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대부분 듣는 쪽이었다.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사람들을 구경했다.

공원에는 책을 읽는 사람들, 강아지와 공을 던지며 놀고 있는 사람들, 아이와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등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유럽의 크리스마스란 이렇게 일상적인 것일까? 나에게 크리스마스는 번화가에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모여있는 일종의 행사였는데, 오늘은 정말 평화롭고 평범한 휴일 같다.

동생은 아무것도 안 하는 이 시간이 아깝다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마 근처에 있던 포르투대학교에 구경간 것 같다.


한참 앉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엄마는 동생이 사라진 지 시간이 꽤 흘렀다며 동생을 찾으러 가야 한다고 일어섰다.

하지만 동생은 내 시야 안에 있었기에, 나는 엄마에게 농담삼아 동생을 두고 도망치자고 했다.

우리는 큰 나무 뒤에 숨어있었는데, 우리의 예상과 달리 동생은 우리가 있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었다. 동생은 한참이 지나도 사진 찍기에 바빴고, 결국 엄마가 동생의 이름을 크게 외치자 그제야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우리는 포르투에서 가장 오래된 광장인 히베이라 광장을 향했다.

엄마는 집들을 구경하며 포르투의 집들은 바르셀로나나 마드리드와 다르게 생겼다고 했다. 당연하죠, 포르투는 포르투갈이니까요.

우리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내려갔다. 언덕은 올라가는 것도 힘들지만, 내려가는 것도 쉽지 않다. 결국 우리는 언덕배기에 있는 공원에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포르투의 내리막길과 언덕배기에 위치한 공원


그늘진 벤치를 찾아 앉아 재정비를 했다.

신발을 다시 신고, 손소독제를 한 번씩 하고 말이다. 엄마는 당이 떨어진다며 젤리를 하나 먹었고, 동생은 발이 답답하다며 신발을 벗어버렸다.

그런데 앉은 지 얼마나 되었다고, 엄마는 이제 일어나자고 했다. 벌써 다 쉰 건가? 동생이 조금만 더 쉬자고 항의했으나, 엄마는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엄마는 빨리 지치기도 하지만, 충전도 빨리 되는 사람이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엄마는 연비가 안 좋은 차라는 내 말에, 엄마는 기름을 많이 먹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연비가 그렇게 나쁜 건 아니라고 했다.

동생은 투덜거리면서 신발을 다시 신었다.



드디어 히베이라 광장에 도착했다.


히베이라 광장에서, 엄마와 동루이스 다리


내가 3년 동안 더 컸던가? 3년 만에 히베이라 광장에서 본 동루이스 다리는 내 기억보다 작았다. 어제 위에서 볼 때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말이다.

동루이스 다리의 아래 길은 공사 중이었는데, 그래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처음 동루이스 다리를 봤을 때처럼 설레진 않았다.


히베이라 광장에는 그래도 사람들이 많았고, 운영하고 있는 식당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럼 무엇하나, 우리에게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는걸. 우리는 돌벤치에 앉아 동루이스 다리와 도루강은 바라보았다. 동생은 또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러 사라졌다.


엄마에게 혹시 배가 고프지 않냐고 물었는데, 아까 젤리를 먹어서 괜찮다고 했다. 역시 기름을 많이 안 먹는 차와 비슷하군. 엄마는 오늘 저녁에 뜨거운 물을 받아 컵라면을 먹기로 했으니 지금은 무엇도 먹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정은 동루이스 다리를 건너가 해가 지는 것을 보는 것이다.

오늘은 종일 걷고, 앉아서 이야기를 한 것이 다였는데, 엄마에겐 어땠을까? 엄마에게 오늘 어땠냐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좋았지, 뭐.라고 대답했다. 엄마의 대답을 의심했지만, 다시 대화를 계속해갔다. 그래, 어차피 곧 파리에 가면 매일매일이 바쁠 테니까 지금 잔뜩 여유를 부리는 것도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또 엄마가 이제 일어나자고 했다.


내 계산으로는 아까 언덕의 공원에서도 그렇고 이 광장에서도 그렇고, 더 시간을 끌어야 일몰시간을 얼추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미 동생을 찾으러 멀리 가고 있다.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해가 질 때까지 한참 기다리게 생겼다.



엄마가 동생을 잡아왔고, 우리는 동루이스 다리를 건넜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는 정말 전속력으로 걸어갔다. 높은 곳은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옆에 물이 흘러서 그런 것 같다. 엄마를 쫓아 다리를 건너는데, 땀이 났다.




다리를 건넜다면, 이젠 올라가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도 평지로 다녔는데, 포르투갈에 와서 언덕을 이렇게 자주 오르내린다.

그래도 예전에는 일몰 시간에 맞춰 뛰어올라가느라 힘들었었는데, 이번에는 고양이도 구경하며 느긋하게 올라가니 제법 오를만했다.

일몰 스팟이라고 불리는 모루공원에는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많아 남아서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동생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동생은 내가 리스본에서 새로 구매한 가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자기에게 너무 잘 어울리는 것 아니냐며 깐죽거려서 정말 꿀밤을 먹여주고 싶었다. 우리는 좀 더 높은 곳에서 동루이스 다리를 보기 위해 맞은편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올라갔다.


수도원 위에서 본 동루이스 다리


포르투는 위에서 볼 때 더 사랑스럽다.

푸른 하늘에 붉은 지붕들까지, 보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런데 강가에다가, 높은 곳에 있어서인지 바람이 찼다. 우리는 경량패딩과 목도리를 착용했다. 하루 종일 내 보조가방 안에 있던 것들이 이제야 빛을 본 것이다.


엄마와 동생이 좋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때 난 조금 초조했다.

일몰시간까지 두 시간 반. 우리는 과연 그 시간을 기다릴 수 있을 것인가? 일몰을 보려다 감기에 걸린다면 큰일이다.

보통 이런 애매한 시간에는 카페에 들어가거나 마트를 구경하곤 한다. 하지만 카페는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으니 불가능이다. 그렇다면 마트에 가야 한다. 오늘 운영하고 있는 곳이 없을 것임을 알면서도 괜히 구글지도를 켰다. 그러다 근처에 운영 중이라는 마트 두 곳을 발견했다! 엄마와 동생에게 마트에 구경을 가겠냐고 물었고, 슬슬 추웠던 엄마와 동생을 빠르게 그래!라고 답했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문을 닫은 마트들이었다. 이 정도 되니 포르투가 지긋지긋하다.


다시 모루공원으로 돌아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일몰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노을을 포기하고 돌아갈까?라는 내 말에 엄마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좋아했다. 동생은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자기도 추웠다며 숙소로 돌아가자 했다. 그러면서 이럴거면 왜 이렇게 일찍 숙소에서 나온 거냐며 나를 타박하는 말도 덧붙였다.

역시 이래서 일단 나가보자가 싫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포르투에서 유명한 나타 에그타르트 가게의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맛있는 것은 비교해봐야 한다.

엄마와 동생은 리스본에서 먹은 것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뜨끈하고 맛이었지만, 내 입에는 좀 달고 필링이 묽었다. 나는 역시 에그타르트는 원조인 리스본의 파스텔 드 나타라고 생각한다. 한편 엄마는 한입 베어 먹은 에그타르트를 더 못 먹겠다고 해서 다시 통에 넣었다. 이런 소식좌여…






어제 숙소 프런트 직원이 분명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면 15분 전에 말해달라고 해서 프런트로 향했다.

프런트에는 어제 그 남자 직원과 다른 중년의 여성 직원이 있었다. 남자 직원에게 뜨거운 물이 필요하다고 했고, 남자 직원이 대답을 하려는데 여성 직원이 휴일이라 안된다며 남자 직원의 말을 가로막았다.

오늘 엄마는 하루 종일 뜨거운 물을 기다려왔는데! 내가 어제 물어봤을 때는 15분 전에만 말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었으나, 크리스마스는 직원들에게도 휴일이라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이럴 수가… 나는 옆에서 곤란해하는 남자 직원에게 야속하다는 눈길을 보내고 방으로 돌아왔다.


내가 빈 손으로 돌아오자 엄마와 동생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냥에 실패한 가장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어차피 내일이면 포르투를 떠나니 사다 둔 것을 먹는, 냉장고 파먹기를 했다. 엄마나 동생이 아빠처럼 매끼 제대로 챙겨 먹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다행인 순간이었다.




어제오늘 코로나 음성 결과지가 없어서, 그리고 크리스마스라 겪었던 어려움들 때문에 빨리 프랑스로 넘어가고 싶다가도, 포르투에서 엄마와 동생이 못 해본 것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어 아쉽기도 하다.

확실히 2박3일은 짧은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엄마는 별다른 생각이 없어 보이고, 동생은 하루빨리 파리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이제는 그게 본인들의 진짜 생각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엄마와 동생이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괜찮은 척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만큼, 그들의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 포르투는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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