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파리에서 여섯째 날, 유럽에서 마지막 날

by 김김이

여행을 마무리할 준비가 다 끝났다.

수화물 무게가 초과될 일은 없고, 공항에 제출할 서류들의 분류를 이미 끝낸 지 오래다.

무사히 공항에 가서 비행기만 타면 된다. 물론, 비행기 환승을 한번 해야 하긴 하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걱정할 것 하나 없다.

남은 할 일은 오직 한국에 가서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것뿐이다.





드디어 떠나는 날의 아침이 밝았다.

새해라고 숙소에서 아침식사로 떡국을 준비해주었다.

엄마는 파리에서 다른 사람이 해준 떡국을 먹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다른 한인민박들이 그렇듯, 여기 숙소의 식사도 제법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했다.

문득 여행카페에서 고가의 물건을 수화물에 실었다가 도난을 당했다는 글이 떠올라 엄마에게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엄마는 캐리어를 다시 열어 아울렛에서 구매했던 스카프를 주섬주섬 꺼냈다.

내가 우리의 물건은 그렇게 고가는 아니니 괜찮을 것이라고 했으나, 엄마는 본인의 인생에서 큰 마음을 먹고 산 스카프라며, 절대 도난당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 도난당하는 것보다 철저한 것이 낫다. 나와 동생도 나름의 고가의 물건들을 캐리어에서 빼 기내용 짐으로 옮겼다.



장거리 비행기 탑승을 앞두고 우리 모두 편한 옷으로 무장을 하고 방을 나섰다.

고마운 숙소의 스텝들이 캐리어를 건물 1층까지 옮겨주기도 했다.


이제 정말로 떠날 시간이다.



숙소에서 공항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우리가 환승해야 하는 역을 멈추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렸다.

다음 역에서 허둥지둥 내린 우리는,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한 끝에 반대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다행히 그 지하철을 타고 환승하는 역에 내릴 수 있었다.


정말 우리를 쉽게 보내주지 않는다.



다시 불안증이 도져, 이 플랫폼이 공항으로 가는 열차를 타는 곳이 확실하게 맞는지 초조해하며 열차를 갈아탔다.

다행히 공항으로 바로 가는 직통열차였고, 그제야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열차 밖으로 보이는 파리의 외곽의 풍경은, 일반 유럽의 시골 동네처럼 보였다.

그 풍경이 내가 교환학생 시기를 보냈던 독일의 시골 동네 같아서인지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제야 여유를 가지고 엄마와 동생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내가 다음에는 이탈리아를 가서 성지순례에 대한 엄마의 꿈을 이루자고 했더니, 엄마는 이제 돈이 없다고 했다.

그때가 되면 나도 그렇고, 동생도 일을 하고 있을 테니 괜찮지 않겠냐고 묻자, 엄마는 좋다고 했다.

한편 동생은 자기는 이탈리아에 가 본 적이 있으니,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딴지를 걸었다.



어느새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은 정말 아비규환이었다. PCR 검사를 하는 줄이 디즈니랜드의 놀이기구 대기 줄보다 훨씬 길었고, 급한 사람들도 흥분한 상태여서 고성이 오고 갔다.

PCR 검사를 미리 받아놔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아닌 기계가 처리하는 것이라 낯설어 조금 예민해지긴 했지만, 텍스리펀 서류도 처리했다.

티켓 발권과 수화물 맡기기도 완료하고, 남은 잔돈으로 빵을 사 먹었다.

그러고 나니 지폐 50유로(당시 약 68,000원) 한 장이 남았다. 50유로에 카드를 더하면 무엇이든 살 수 있다.

파리 공항에도 면세점이 있지 않겠냐는 내 물음에, 엄마는 선글라스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조금 이르게 탑승수속을 했다.


예상과 달리, 제1 터미널이 아니어서 그런지 면세점은 아주 작았다.

결국 50유로는 엄마에게 환수되었고, 우리는 자리를 잡고 긴 시간을 기다렸다.


엄마는 언제부턴가 보기 시작한 유튜브 숏츠를 봤고, 동생은 사진들을 보정했다.

나는 잠시 채용공고가 뜬 곳이 있나 살펴보다 SNS로 현실도피를 해버렸다. 한국에 간다는 것은 취업준비생이라는 나의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행기는 연착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게 불안하지는 않았다. 같은 비행기를 타는 한국인들도 많았을뿐더러, 비행기 연착이라면 예전에도 경험해본 적이 있다.

과거, 동생과 이탈리아 로마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탔었던 핀란드항공이 연착되었던 적이 있다.

그럼에도 30분 만에 환승에 성공했다. 심지어 왜인지 몰라도 항공사 측에서 연착된 비행기에 타있던 사람들의 좌석을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해주기도 했다.


우리가 환승할 아부다비 공항은 그다지 크지도 않았고, 어차피 연착이 되면 비행기들 간에 연락을 주고받을 것이니 마음을 놓았다.

오히려 에티하드 항공이 핀란드항공처럼 우리의 좌석을 업그레이드 해주진 않을까 기대를 했다.

떡 줄 사람은 꿈도 안 꾸는데 말이다.


다시 기다리는 동안, 내 한 몸과도 같았던 낡은 운동화를 버리고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운동화를 떠나보내 아쉬운 내게, 엄마는 운동화가 제발 버려달라고 애원한다며 편히 보내주라고 했다.



슬리퍼를 신고 드디어 비행기에 입성했다.


동생은 혼자 세 자리를 쓰고 싶다며 맨 뒷자리를 체크인해두었다. 그런데 막상 가니 동생의 자리가 있는 라인은 꽉 차 있었고, 엄마와 내 자리 사이는 비어있었다.

결국 동생과 자리를 바꿔주었고, 나는 맨 뒷자리의 창가 자리에 짱 박혀 갔다.


그래도 나는 창밖을 보며 가는 것을 좋아해서 좋은 시간이었다.

중동 항공사를 타면 비록 비행시간이 길어지지만,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알프스 산맥 위를 지난다는 것이다.


해질녁의 알프스 산맥




하늘 위에서 알프스 산맥을 내려다보니, 산맥이 높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지는 산맥에 그 넓이를 가늠해볼 수는 있었다.

가끔 보이는 불빛에 알프스 산맥에도 사람이 살고 있을까? 조난을 당하면 누군가 나를 찾을 수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창밖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기내식도 나쁘지 않았다.

거기에 영화까지 보다 보니 결국 한숨도 못 잔 채로 아부다비에 도착했다.


아부다비 전경



다음 비행기 출발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내심 불안하지만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모든 일은 방심했을 때 일어난다.

내려서 보니, 앞에서 먼저 비행기에서 내린 엄마와 동생은 온데간데도 없었고, 전광판 어디에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었다.



새해의 첫 날, 나는 이 낯선 아부다비 공항에서 혼자 남겨진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