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다섯째 날
여행의 마지막 날에는 항상 그 도시와 헤어질 결심을 해야 한다.
처음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을 때, 설렘과 떨림 느끼며 그 도시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도시에게 빠진만큼 떠나는 날의 섭섭함도 커진다.
처음 온 도시도 아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도시 파리를 내일 떠난다. 섭섭할 것이다.
2021년의 마지막 날, 나는 파리와의 이별을 앞두고 헤어질 결심을 했다.
에펠탑이 보이는 이 숙소를 떠나 하루를 머물 한인민박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어제는 에펠탑 앞에서 동생과 그렇게 싸웠는데,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숙소로 이동할 생각을 하니 아쉽다.
반면 엄마는 만세를 불렀다.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침구에서 벗어나는 것이 좋은 것이다.
그동안 숙소에 대해 긍정적인 부분만 언급했었지만, 이 숙소의 단점은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것뿐이 아니었다.
이 숙소의 주인은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4인까지 지낼 수 있다고 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숙소는 2인용이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이 숙소에 3인을 예약했고, 그 결과 우리에게 주어진 침구는 2인이 쓸 수 있는 더블침대 하나와 중간 바닥이 푹 꺼진 여행용 빈백이었다.
심지어 크기도 작아서, 몸이 맞는 사람은 엄마뿐이었다. 다른 침구가 있나 문의해보았지만, 똑같은 것뿐이었다.
내가 저 문제의 침구에서 자겠다고 했으나, 엄마는 본인이 자겠다고 했다. 정말 불효가 따로 없었다.
엄마는 저 자리에서만 누워서 볼 수 있는 에펠탑이 좋다고 했다가, 바닥에서 자는 것이 서럽다고 했다. 자리를 바꿔서 자자고 해도, 내가 씻고 나오면 엄마는 이미 저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엄마는 가만히 누워서 에펠탑을 보곤 했다.
엄마는 그 애증의 침구와 헤어지는 것이다.
지하철을 한번 갈아타서 새로운 숙소가 위치한 역에 도착했다.
에스켈레이터도 없는 파리의 지하철을 저주하며 겨우겨우 새로운 숙소 측에서 알려준 입구로 올라왔는데, 뒤돌아보니 건너편에 에스컬레이터가 있는 입구가 있었다.
그런 건 좀 알려주지!
역 근처에는 개선문보다 작은 크기의 기념 건축물이 있었다.
내가 숙소의 위치를 다시 찾는 동안, 동생은 사진을 찍기 위해 그 건축물 쪽으로 향했다.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동생을 부르려는데, 동생이 어떤 여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 여자가 동생의 핸드폰을 빼앗으려 하며 프랑스어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난리냔 말이냐.
당장 달려가 그 여자의 손을 뿌리쳤다. 인종차별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욕설이 튀어나올 뻔했다.
하지만 유교 문화에서 자란 일명 유교걸은 어머니 앞에서 욕을 하지 않는다.
꾹 참고 왜 이러는 것이냐 묻자, 여자는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했다.
저 사람이 내가 파리와 헤어질 결심을 하도록 도와주는구나.
도시와 헤어질 준비 중 하나는 이 도시에서 살 수 있는 것은 다 사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과자, 버터, 가공치즈를 사갈 계획이었다.
운이 좋게도 우리 숙소의 바로 아래에는 마트가 있었다.
1월 1일 휴무를 앞둬서인지 마트에는 사람들로 붐볐고, 우리도 인파 속에 뛰어들어갔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마트에는 우리가 맛있게 먹었던 과자는커녕 PB상품으로 보이는 제품들 뿐이 없었다.
대략 비슷해 보이는 것들을 구매했지만, 우리가 먹었던 것보다는 맛이 떨어졌다.
헤어질 준비도 쉽지 않다.
낭만적인 몽마르뜨 언덕, 웅장한 팡테온, 화려한 물랑루즈 등 아직 파리에서 안 가본 곳들이 많다. 파리를 돌아볼 수 있는 마지막 날, 우리는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우리가 예약을 해 둔 오페라 가르니에와 가깝다는 이유와, 동생이 거금을 쓰기 위해서다.
물론 라파예트 백화점은 곡선의 미를 강조하는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100년이 넘는 역사의 건축물이라는 점과, 이 시기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아주 화려하기 때문에 라파예트 백화점에 가는 것도 그렇게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여행을 하면서 동생이 종종 착용하던 벨트가 하나 있다.
바로 검은색 벨트에 어느 날부터 집 안을 굴러다니던 구찌 벨트의 버클을 단 것이었다. 나는 남성 정장용으로 보이는 벨트 버클에 얇은 여성 벨트가 조합된 그 벨트를 짭찌(짭+구찌)벨트라며 동생을 놀리곤 했다. 동생은 내게 놀림받은 것이 한이라도 되었는지, 진짜 좋은 벨트를 사겠다고 했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려 동생은 정말 벨트를 구매했다. 엄마는 소모품에 큰돈을 들인다며 동생을 나무랐고, 동생은 언니 때문에 사게 된 것이라고 나를 나무랐다.
나무람들을 그냥 흘려보내고, 오페라 가르니에로 향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오페라 및 발레 극장이다. 디자인 콩쿠르에서 당선된 무명 건축가였던 가르니에가 만든 다양한 건축 양식이 혼합된 호화로운 건물로, 현재도 오페라나 발레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원래의 계획은 올해의 마지막 밤을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발레 공연을 보며 보낼 계획이었었다. 그러나 더 저렴한 티켓의 취소표가 풀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간을 보다가 티켓이 매진되어버렸다. 결국 공연이 진행되지 않을 때 오페라 가르니에에 입장해 볼 수 있는 티켓을 구매해야 했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하는 것이다.
파리의 유서 깊은 건축물 오페라 가르니에는 나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곳이었다.
그 오페라 가르니에에 들어가 보니, 발레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모티프로 만들어진 오페라 가르니에의 사교 공간 겸 휴게 공간인 그랑 포이어는 정말 아름다웠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은 거울에 자연빛이 비친다면, 오페라 가르니에의 그랑 포이어는 황금색의 조명이 거울에 비쳐 더욱 고급스러운 느낌도 났다.
엄마는 베르사유 궁전에도 이런 공간이 있냐며 궁금해했다.
언젠가 엄마와 다시 파리에 오게 되면, 그때는 베르사유 궁전을 꼭 가야지.
그랑 포이어를 지나면 공연장 안을 들어가 볼 수 있다
오페라 가르니에는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배경이기도 하다.
실제로 1896년, 공연장에서 샹들리에가 추락한 사고가 있었고, 그것을 계기로 오페라의 유령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공연장의 천장에는 샤갈의 <꿈의 꽃다발>이 그려져 있다.
샤갈을 좋아하는 엄마에게 천장화를 가리키며 샤갈이 그린 그림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엄마는 샤갈의 그림을 좋아해 본 적 없는 사람처럼 어머~라는 말만 남기고 공연장을 나가버렸다. 엄마는 맨날 나가버리기만 한다.
엄마가 샤갈의 그림을 좋아했던 것도 다 지나간 일인가 보다.
오페라 가르니에 이후의 우리의 일정은 예상밖에도 둘째 날에 갔던 파리의 아울렛, 라발레 빌리지였다.
갔던 곳을 왜 또 가냐고 묻는다면, 이모들과 아빠, 남동생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다.
바쁘게 여행하다 보니, 여행을 한다고 용돈까지 쥐어주었던 큰이모의 선물을 사는 것을 깜빡했다.
이 사실을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엄마였다. 그래 놓고는 엄마는 계속 무리해서 선물을 살 필요는 없다며 자꾸만 약한 소리를 했다.
엄마, 확실히 말해. 선물 안 사도 되겠어?
내 물음에 엄마는 그래도 사면 좋지…라고 답했다.
큰이모의 선물만 살 수 없으니, 작은 이모와 아빠, 남동생의 선물도 사야 한다.
다시 라발레 빌리지의 시작이다. 우선, 고객센터로 달려가 마카롱 교환권부터 받아 마카롱을 먹었다.
이모들의 선물은 제법 빨리 구매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빠와 남동생의 선물이었다. 도대체 이들을 위해 무엇을 사야 하는 것이냐!
여러 매장을 둘러본 끝에 벨트를 사기로 했다. 여기서 다시 난관이 발생했는데, 바로 사이즈를 모른다는 것이다.
아빠의 선물로는 늘어나는 골프용 벨트를 구매했지만, 도저히 남동생의 허리 사이즈를 알 수 없었다. 허리 사이즈란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정보지만, 이럴 때 모르니 참 난감하다.
엄마는 남동생의 허리가 나와 비슷할 것이라며, 내 허리에 맞는 벨트를 골랐다. 허참, 어이가 없다.
(실제로 선물한 벨트는 남동생이 겨우 착용할 정도로 간당간당한 사이즈였다.)
선물을 다 샀으니 이제 볼일은 끝났다!
우린 곧장 숙소로 돌아갔다.
원래 파리에서 한 해의 마지막 날을 보내게 되면, 개선문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불꽃놀이는 코로나 때문에 취소되었다.
물론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서는 거의 4시간가량을 인파 속에서 서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엄마를 데리고 갈 생각은 없긴 했지만, 그래도 아쉽다.
동생은 특히 더 아쉬워했다. 아직 못 가본 유명 도시들이 많기 때문에 갔던 도시는 다시 가지 않겠다는 철칙을 가진 동생은, 언젠가 파리에는 또 와야겠다고 했다.
불꽃놀이가 없다고 하더라도 2021년의 마지막 날을, 그리고 파리의 마지막 날을 이렇게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조명이 들어온 루브르 박물관의 야경이라도 보러 갈까 했다.
하지만 우리 숙소의 위치가 치한이 썩 좋은 곳이 아닐뿐더러, 꼭 이런 날에는 자신의 멍청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발광하는 이들이 종종 있기에 무서운 마음이 들었다. 친구들 여럿과 함께라면 가겠지만, 엄마, 동생과 가기에는 고민이 되었다.
이런 고민을 들은 엄마는 마지막 날에 싸돌아다녀 문제를 만들지 말고, 안전하게 잠이나 자라고 했다.
넵, 알겠습니다.
그렇게 여행의 마지막 밤이 침대에 누워 허무하게 끝나간다.
내일이면 유럽 대륙을 떠나 한국으로 향한다.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리스본, 포르투, 릴, 파리… 우리의 여행을 곱씹어본다.
질리는 마음에 다신 안 와야지 싶다가도, 아쉬운 마음에 다시 온다면 무엇을 해야지라며 계획을 세우게 된다.
누군가 한국에 가니 좋냐고 물어본다면 쉽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후련함과 해방감이 든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파리와, 우리의 유럽여행과 헤어질 결심 완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