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김이 Oct 22. 2022

혹독한 신고식,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에서 첫째 날


어렸을 때 나는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가면서 항상 운이 따라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적어도 여행을 할 때는 운이 좋다는 믿음은 여전했다.

해외에 많이 나가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비행기를 타면서 한 번도 내 캐리어가 분실되거나, 손상되거나, 늦게 나온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그런 사례들을 보면 정말 운이 안 좋은 사람들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가 돼서야 깨달았다.







순조롭게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공항직원이 편의를 봐주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 일행은 함께 입국심사를 할 수 있었다.

여행기간이 3주라는 말에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보여달라고 했고, 항공사 어플을 보여주니 빠르게 통과시켜주었다.

미리 작성해둔 스페인 입국 큐알코드도 빠르게 패스.


시작부터 좋다고 생각했다.

이제 짐만 찾아서 숙소로 가면 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우리의 짐은 나오지 않았다.


불행 중 다행히도,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짐이 아직 안 나온 몇몇 사람들이 더 있었고, 다 함께 기다렸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지났나, 다들 화를 내기 시작했다.


나도 화가 났다.


그렇지만 어떤 행동을 하진 않았다.

다른 누군가가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나는 해외에서 불의를 마주해도 참는 편이었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것은 그냥저냥 넘어가는 편이다. 그리고 해외에서는  잘 넘어간다.

일단 귀찮음이 가장 크고, 그다음은 내가 외국인이고, 소수이기 때문이었다.

언어는 둘째 치더라도 내가 여기서 컴플레인을 걸어  사람들을 불쾌하게 하면   불이익이 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있었다.


캣콜링을 당해도 욕을 하는 것이 다였고, 교환학생 시절 분명  같이 같은 서류를 준비했는데도 굳이  것만 트집이 잡혀 직원이 거주증을 줄듯 말 듯  때도 그랬다.

어차피 캣콜링 정도는 처벌 대상도 아니고, 거주증을 못 받으면 나만 손해다.

기껏 해봐야 나중에 구글맵에 후기를 남기는  다였다.

부당하든 어찌 되었든 목적만 달성하면 되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엄마와 동생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클레임을 걸자고 했다.

나를 앞세워서 말이다.  중에서 영어를   있는 사람은 나밖에 으니 말이다.


그동안 여행 준비를 하면서 그렇게 틱틱거리고 으스댔는데, 도저히  자리에서  수가 없었다!

괜히 강한  그래! 따지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클레임을 걸어봤자 직원들은 별반응이 없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 싸울 수 있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는  아닌데 잘 말할  있을까? 하는 생각에 떨렸다.


고객센터로 향하는데 우리와 함께 기다리던 한 아저씨가 따라와 클레임을 걸러 가는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같이 가자고 한다.

나보다 영어든 스페인어든 더 능숙해 보이는 아저씨에 한시름 덜고 함께 고객센터로 갔다.


답은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역시! 이게 유럽이지.

새삼 유럽에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아저씨와 나는 어떤 수확도 없이 돌아와 다시 기다렸다.

얼마나 더 기다렸을까? 드디어 캐리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캐리어를 챙기면서 우연히 옆을 보았는데, 캐리어가 깨진 사람도 있었다.

운이  좋은 사람이네..’라고 생각하며 우리도 공항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런데 동생의 캐리어도 깨져있었다.

운이 없는 것은우리.




분명 내가 어떤 재질의 캐리어를 사라고 말했는데, 대충 싼 캐리어를 산 탓이다.


만약  혼자였다면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고, 어차피 싼 것이니 냥 공항을 나갔을  같다.

그러나 이번에도 엄마와 동생이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고, 다시 고객센터로 향했다.

아까 함께했던 아저씨는 본인의 캐리어를 찾고,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보이며 이미 공항을 빠져나갔다.

그러니까 이제는 혼자인 것이다.


캐리어가 깨졌으니 리포트를 작성하겠다 하자, 역시 답은 기다려라였다.

15분 정도 기다렸나? 드디어 직원이 나에게 서류를 줬다.

서류를 작성하고 캐리어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다시 기다려 항공사에 제출할 서류를 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공항을 나오니 아무도 없었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어떻게 가야 하지?



원래는 사람들을 따라가 시내에 가는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따라갈 사람이 다.

막막했고, 캐리어 때문에 이미 정신이 나간 지 오래다.


눈에 보이는 버스 티켓 기계를 만지작 거리다가 시내버스가 오자 기사 아저씨에게 바르셀로나 시내에 가는 버스냐고 물어봤다.

아저씨는 는 얼굴로 저 앞의 공항버스를 가리켰다.

그제야 떠올랐다. 맞아,  하늘색 공항버스를 타야 했지!

아저씨에게 연신 스페인어로 고맙다는  ‘그라씨아스!’ 외치고 공항버스로 뛰어갔다.



드디어 공항을 빠져나간다.

공항버스를 타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가다 보면, 몬주익 왕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그쪽으로 눈길을 주지 않았다.

동생과, 마 모두 핸드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안 그래도 얼마 남지 않은 기운이 더 빠지고 말았다.



바르셀로나 시내에 도착했다. 이제 근처에 위치한 숙소만 찾아가면 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핸드폰 데이터가 터지지 않았다.

분명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에 해외 유심으로 바꿨는데 먹통이었.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기 전에 사용설명서를   읽은 것이 이렇게 업보로 돌아온 것이다.



길 위에는 당황 , 숙소에는 언제 가냐는 엄마, 그리고 신나서 사진과 영상을 찍느라 홀로  멀리 가버린 동생이 있었다.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하루 만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할 수 있지?


겨우겨우 끊어질  약한 광장의 와이파이를 잡아 구글맵을 켜 숙소로 향했다.

숙소 직원이 오피스 건물 처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발견안내를 주었다. 드디어 숙소 도착이다.




혼자 산다면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하나에 주방과 거실로 구성된 숙소였다.


하지만 여유를 즐길 시간이 없었다.

예약해 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입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숙소에서 충분히  다음에 성당에 가는 일정이었지만, 공항에  시간 넘게 잡혀있던 바람에 늦어졌다.


데이터가 안 터져도, 시간은 다가오니 별 수 없다.

숙소의 와이파이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가는 길을 외워두고 숙소를 나섰다.






지하철에서 나와 뒤돌아보라는  말에 엄마와 동생이 았다.

엄마와 동생의 입에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둘이 감탄하는 모습을 보니 오늘 힘들었던 일들을 을 수 있었.

아무렴 어때? 다 해결되었고, 이렇게 좋아하는 걸!

그런데 자세히 보던 엄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징그러운데?  기둥은 옥수수인가?”


옥수수를 모티프로 한 것이 맞긴 한데, 흥이 깨졌다.

이렇게나 빨리 말이다.


멀리서도 성당을 보며 사진   찍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을 하기 전에 내가 열 번은 말한 것이 있다.

바로, 소매치기를 조심해라

그 말 때문인지 엄마는 지갑과 여권을 몸 구석구석에도 숨겨두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짐 검사를 하는데, 엄마는  숨겨둔 지갑과 여권 등을 주섬주섬 꺼냈다.


그런  까진  꺼내도 되는데…’라고 생각하는데, 엄마는 짐을 꺼내고 정리하는데 벌써 힘이 빠졌다고 했다.



어쨌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외부와 다른  다른 아름다움을 만날  있다.


엄마와 동생은 또다시 탄성을 질렀고, 나는 예전에 들었던 가이드 투어를 떠올리며 짧은 설명을 해주었다.


성당 내부는 자연을, 기둥은 사람의 뼈를 모티프로  거래. 그리고 성당 지하에는 가우디 무덤이 있어. 원래는 전망대도 올라갈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닫았나 봐”


여기서 진짜 미사를 드리기도 하니?”


모르는 질문이다.

대충 그런 것 같다며 말을 돌리고 찬찬히 구경을 했다.

한편 동생은 난리도 아니었다. 너무 예뻐! 그렇게 그녀의 런웨이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사진을 찍기 위해 계속 가방과 외투를 집어던졌고, 나는 이러면 소매치기들이 훔쳐갈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동생이 들을 리가 없었고, 나는 그저 사진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사진을  찍는다는 동생의 타박이었다. 그럼 혼자 찍어라, 이놈아.

다시 찍어달라는 데로 양껏 찍어준다.

엄마도 찍어주려 보니, 엄마가 없어졌다.


주변을 살피 엄마는  멀리 의자에 앉아있다.


엄마도 내가 처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안에 들어왔을  느꼈던 신비함, 위대함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을까?

다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스페인 성당은 의자도 예쁘다며 묵직한 의자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예상했던 답은 아니었지만 그랬다.


저기로 가면 기도하는 공간도 있어. 한번 가볼래?

엄마는 그러자고 했다.


기도하는 공간은 파티션이 쳐져있고, 입구는 경찰이 지키고 있었다.

경찰은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댔다.

엄마는 이곳이 기도하는 공간이냐고 묻고 싶었던 것인지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를 취했고, 경찰은 끄덕였다.


그렇게  한마디 없이 엄마  외국인과의 소통이 끝났다.

그냥 나가자 엄마에게  기도를  하냐고 물으니, 엄마는 그냥이라고 답했다.


한편 동생은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혼자 남은 것을 느꼈는지 우리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자신을 두고 갔냐는 동생의 물음에 나도 그냥이라고 답했다.

엄마도 대답하기가 귀찮았었나 보다.



우리는 성당 아래 박물관을 둘러보고, 화장실을 들렀다 성당을 나왔다.

벌써 해가 져있었다.





성당 바로 앞에 있는  트에서 장을 보기로 했다.

오랜만에 유럽의 물가를 실감하니 사고 싶은 게 많았다.

반면에 엄마는 유럽 화폐의 감이 안 잡혀서 물가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생에게는 먹고 싶은 간식들을 골라오라 하고, 엄마를 오렌지주스를 짜는 기계 앞으로 데려갔다.


이게 뭐니?”


생오렌지주스를 짜는 기계야. 오렌지 100%”


엄마에게 기계를 작동하는 법을 알려줬다.

엄마는 최대한 많은 주스를 병에 담으려다 조금 흘렸다.


엄마는 빨간 것이 먹고 싶다고 했다. 토마토파스타? 턱도 없는 소리였다.

다행히 내가 몇 개 챙긴 비빔장 소스가 있었다.

그걸로 제육볶음을 만들어 먹기로 했다.

엄마는 평소 맥주 한 캔을 겨우 마시면서, 맥주가 싸다며 5캔이나 사겠다고 했다.

이 맥주는 결국 여행을 하면서 내내 들고 다니게 된다.


성당도 그렇고, 장보기도  끝냈다. 이제 무사히 숙소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바르셀로나 신고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려는데 이번에는 내 교통권이 말을 안 듣는다.

뒤에 사람들이  서있지, 엄마와 동생은 건너편에서 어쩔  몰라하지, 이때 진짜 짜증이 나서 미치는  알았다.


엄마와 동생은 그냥 넘어오라고 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

독일에서 동양인인 나만  집어 교통권 검사를 했던 기억과, 여행카페에서 몰래 지하철을 탔다가 교통권 검사를 해서 벌금을 물었다는 글이 떠올랐다.


아 쫌! 내가 알아서 할게!


결국 엄마와 동생에게 짜증을 내고 티켓 기계에서 새로운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

그리고 드디어 들어왔는데, 지하철   쪽에 위치한 인포메이션센터를 발견했다.

왜 인포메이션센터가 역 안에 있는 건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인포메이션 센터에 들어가 인식이  되던 티켓을 환불해달라 했다.

직원은 환불은 안 되고 새것을 주겠다 했다.

그거라도 받았다.




아주 화려한 신고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고작 첫날인데 너무 지친다.




우리는 와인을 한잔 마시면서 오늘 있었던 다사다난함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나와는 다르게, 엄마와 동생은 오늘 있었던 다사다난함보다는 그럴 때마다 내가 짜증을 내서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가 주제가 되어버렸다.

엄마는 내가 짜증을 낼 때 내 눈치를 보게 된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너무 무섭고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다고?


엄마는 인상을 쓴 내 얼굴이, 툭툭 내뱉는 말투가 너무 무섭다고 했다.

동생도 내가 너무 예민해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짜증을 낸다고 했다.

엄마는 말을 하다가 감정에 북받쳤는지 휴지를 달라고 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공감을 구하지 못한다.


오늘 많은 일이 있었고, 나는 오늘 많이 짜증을 내기도 기에 할 말은 없었다.

나는 앞으로는 짜증을 덜 내겠다고 약속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그 문제들을 유연성 있게 대응할  알아야 한다.

나는  유연성이 부족했다. 그리고 배려도 부족했다.

엄마는 처음 외국에 나와서 긴장했을 텐데 말이.


사춘기의 청소년들이 상대의  한마디에 감정이 오르내리는 것처럼, 갱년기의 엄마에게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중요하다.


엄마를 회복시키자라는 목적으로 여행을 왔는데, 배려는 커녕  혼자 여행을 하는 것처럼 너무 감정적으로 군 것에 대해 반성했다.



그렇게 바르셀로나의 첫째 날이 지나갔다.

엄마는 그 다사다난함에도 불구하고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것 같지만 말이다.


이전 06화 운수 좋은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