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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일촉즉발, 위기의 여행 준비

준비하기 3단계


엄마와 동생과 유럽여행을 간다고 가족들에게 발표한 , 이모들과 삼촌의 오해를 샀다.



“너희 엄마 괜찮겠니? 가뜩이나 체력도 안 좋은데.”


“그래도 최대한 대중교통이나 택시 타고, 하루 일정도 최소한으로 했으니 괜찮을 거예요.”


“그게 말처럼 되니? 하루에 걸어야 하는 양도 정해져 있다면서?”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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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 말이야. 너네 산티아고 순례길 가는 거 아니었니? 네 엄마가 그러던데?”



오해는 푼 이후에, 엄마에게 도대체 이모들과 삼촌에게 뭐라고 말한 것이냐 물었다.

엄마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도대체 왜 그런 오해가 생겼는지 궁금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우울증에 걸리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말이 횡설수설, 불확실하게 나온다.

엄마는 갱년기로 우울증이 온 데다가, 우리가 정확히 어떤 나라의 어느 도시를 가는지 끝까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아마 여행의 시작인 예능 ‘스페인하숙 이야기를 하다가 어찌어찌하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 얘기까지 나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불확실성은 오해를 부르고, 불안감을 주고, 분란을 만든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사업이 많이 축소되었다.

일일투어 업체들이 없어지기도 하고, 투어 인원이 많지 않아 이틀 전에 투어가 취소되기도 하고, 날짜가 갑자기 변경되기도 했다.

그런 불확실성이 날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불안함은 새발의 피였다.

진짜 문제는 출발 3일 전, 엄마와 동생을 직접 만나 짐을 꾸릴 때 발생하기 시작했다.






예정되었던 퇴사 날이 되었다.


감사인사를 드리고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나왔다.

약 한 달 간은 방을 비울 테니 열심히 청소를 하고, 다음 날 본가에 갈 계획을 하고 잠에 들었다.

정년퇴직을 하면 출근하는 꿈을 꾸곤 한다는데, 그날은 나도 회사에 지각을 하는 악몽을 꾸었다. 이제는 그곳으로 출근을 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악몽을 꾸어서인지, 여행에 대한 불확실함에서 기인한 불안함 때문인지 심난했다.



여행하는 동안 들고 다닐 우리의 짐은 어떻게 구성되어있을까?

18인치 기내용 캐리어 두 개와 24인치 화물용 캐리어 한 개다.

한 사람당이 아니라, 세 명의 짐을 합해서 말이다.

엄마는 갱년기로 손가락이 퉁퉁 붓고 마디마디가 아파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었다. 동생은 그냥 약골이어서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다. 그래서 둘은 20일 간 18인치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 다니기로 했다.

작은 캐리어에 들어가지 않는 짐들은? 바로 내 24인치 캐리어에 들어가는 것이다.

24인치도 그렇게 큰 크기는 아니지만, 내가 여행을 할 때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떻게 짐을 싸야 효율적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집에 도착했다.

그러나 집에는 나의 고민을 함께 할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엄마는 이모들과 통영에 여행을 갔고, 동생은 친구들과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빈 캐리어들만 거실에 덜렁 놓여 있었다.


출국 3일 전인데 말이다!!!


화가 났다.


내가 먼저 가자고 제안한 여행이니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이렇게까지 비협조적이라니!!

여행을 간 줄은 알았지만, 적어도 짐은 조금 싸 두었을 줄 알았다.

빈 캐리어만 덜렁 있는 것이 아니라!


다행히 거의 밤이 돼서야 동생이 돌아왔고, 대충 내 눈치를 보며 짐을 챙겼다.

나는 여행지 날씨는 어떠냐는 동생의 물음에 내가 어떻게 아냐고 소리를 꽥 지르곤, 어떤 옷을 공유할지에 대해 토론했다.



출국 2일 전, 드디어 엄마가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엄마는 너무 피곤하니 일단 쉬어야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피곤하니까 그럴 수 있다.


나는 면접을 볼 때, 나의 단점을 꼽으라고 하면 성급함이라고 말할 정도로 인내심이 없는 편이지만 저녁까지 기다렸다.

그럼에도 엄마의 캐리어는 여전히 텅 비어있었고, 계속 틱틱거리던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엄마에게 짐을 좀 싸라며 한 소리를 했다.


엄마와 말다툼을 하게 되면, 엄마는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가 버려 나만의 일방적인 짜증이 되어버리곤 한다.

이번에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옷을 휙휙 캐리어에 던져 넣었다.


나는 침묵이 엄마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엄마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묻는다면 확실하게 대답할  없지만, 그때는 엄마가 명백하게 무언가 잘못했다고 굳건히 믿고 있었다.



그렇게 분란이 시작되었다.


내가 어떻게 20일 간 여행을 가는데 짐을 직전에 쌀 수 있냐며 언성을 높이면, 엄마는 자기는 원래 그렇다고 답했다.

동생은 나에게 짜증을 내지 말라며, 나 때문에 엄마뿐만 아니라 자기도 화가 난다고 했다.

아니 도대체 둘이 나한테 화가  일이 뭐가 있어?


사실 내가 하고 있던 것은 나의 여행을 준비하는 것뿐이었는데, 그때는 엄마와 동생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열심히 여행을 준비하는 불쌍한 ‘나’에 심취해있었고, 그래서 짜증을 내는 것은 내 권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명령조로 짜증을 내는 것이 늘어났고, 가뜩이나 갱년기로 말수가 없어진 엄마는 어두운 표정으로 자신만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동생은 엄마에게 대답을 강요하는 나에게 ‘예의 있게 행동해’라며 옆에서 답답함으로 불이 난 가슴에 부채질을 했다.


각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불확실함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분란은 출국 하루 전날, PCR 검사를 하러 가면서 조금 나쁜 방식으로 마무리되었다.


인터넷에서는 PCR결과가 제법 빨리 나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결과는 늦어졌고, 병원 근처에는 마땅히 주차를 할 공간이 없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엄마는 폭발했고, 예상보다 높은 PCR 검사비에 예민해져 있던 나도 짜증을 냈다.

내가 말했다.


“여행은 계속 나 혼자서 준비했는데, 운전 좀 하는 것 가지고 유세 좀 부리지 마. 누가 보면 대단한 피해라도 입은 줄 알겠네.”


저 발언에는 세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 번째로 정작 유세를 부린 것은 나였는데 그것을 엄마에게 돌렸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운전하는 노고를 무시했다.

 번째 엄마의 트라우마를 자극한 것이었다.

‘누가 보면 대단한 피해라도 입은 줄 알겠다’는 말은 피해 입은 것을 부정하는 말이다.

전 직장에서 피해를 입고도 외면당했던 엄마는, 이 말로 인해 당시의 트라우마를 떠올렸던 것이다.



그렇게 침묵이 시작되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되고 나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엄마는 얼마의 손해가 있든,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안 하는 사람이다.

내가 실수를 했다는 반성보다, 갑자기 엄마가 여행을 안 가겠다고 할까 봐 두려움이 더 컸다.



그제야 슬슬 엄마와 동생의 눈치를 보며 대화를 좀 하자고 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일방적인 내 통보에 가까웠다.

엄마는 할 얘기가 없다 했고, 동생은 별 생각이 없었다.

나는 그런 엄마와 동생을 붙잡고 여행 준비에 협조 좀 해달라고 했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동생과 달리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난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를  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엄마는, 매일마다 퇴근을 하며 삼십 분씩 통화를 했던 그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짜증을   미안하다며 사과를  , 자리를 피했다. 이제는 나도 그냥 덮어두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무사히 PCR검사지와 스페인 입국을 위한 큐알코드도 발급받았고, 비행기 체크인도 했다.

문제의 짐 역시 다 쌌다.

막상 갈 때가 되자 불안함이 엄습했다.

그 불안감에 허우적거리느라 엄마는 여행을 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는데 모르는척했다.

여행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말이다.


나는 엄마가 어떤 상황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했.

갱년기가 무엇이기에 엄마를 저런 상태로 밀어 넣었을까?

흔히들 갱년기를 사춘기에 비유한다. 나는 사춘기 때 친구들과의 트러블이 있었던 것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래서 갱년기는 그냥 열 좀 오르고, 짜증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추측했고, 여행을 하면 다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갱년기 때, 열 좀 오르고 짜증이 많아지는 정도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엄마가 겪은 갱년기는 뼈마디가 부딪히면 비명을 나올 정도로 아프고, 불면증에 시달려 이명이 들리고, 온몸이 무겁고, 우울증이 오는 것이었다.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갱년기를 극복하고자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한약과 수면제를 복용, 당신의 자매들과의 여행을 통한 기분전환도 그 노력에 해당되었다.



그러나 엄마도, 나도 착각했던 것은 갱년기는 단순히 여행을 한다고 괜찮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에게는 여행이 아닌 신경외과적 치료가 먼저라는 것을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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