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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김이 Oct 22. 2022

화장실, 그것이 문제로다

바르셀로나에서 둘째 날


임신과 출산을 겪으면 요도괄약근이 약해진다.

거기에 나이가 들면 노화로 인해 방광이 아래로 쳐지게 되니, 화장실을 더 자주 가게 된다.


그러니까 내 말은 중년의 엄마와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화장실에 대한 정보에 밝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새벽 5시쯤에 잠에서 깼다.

불면증으로 뒤척이던 엄마는 잠든 지 얼마 안 된 것 같았고, 동생은 잘 자고 있었다.


조심히 거실로 나갔다.

핸드폰 데이터가 안 되는 충격과 공포의 상황을 오늘 또다시 겪을 수 없다. 빨리 해결해야 한다.

다행히 시차가 맞아 유심칩 판매처와의 실시간 채팅 상담을 할 수 있었고, 유심칩을 다시 개통했다.

드디어 인터넷이 터진다!

전화는 여전히 안됐는데, 판매처에서는 현지에 있는 유심 매장에 가서 알아서 해결하라 했다.

귀찮기도 했고, 인터넷이 잘 되니 여기서 만족하기로 했다.


인터넷이 있으니 무엇도 두렵지 않다.



여행을 하다 보면 제 때 끼니를 챙기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렇기에 평소에는 아침밥을 잘 안 먹더라도, 여행할 때만은 아침은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

어느새 방에서 나온 엄마가 부스럭거리며 그 작은 캐리어에서 비닐팩을 꺼냈다.

엄마에게 그게 뭐냐고 물어보자, 비상식량이라고 했다.

비닐팩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봉지 수프와 젤리가 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말해줬다.


우리는 아침으로 엄마의 수프를 나눠먹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는 오늘은 어디에 가는 거냐고 물었다.

몬세라트, 그러니까 산에 간다고 얘기해줬다. 엄마는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 잘 됐다고 했다.

엄마가 신고 온 저 샛노란 등산화, 산과 아주 잘 어울린다.

그래, 우린 산에 갈 거야.



바르셀로나의 시내에서 몬세라트에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지하철을 타고, 시외 기차를 한번 갈아타면 된다.

출발하기 전에 시내의 광장을 한번 둘러보자는 내 말에, 엄마는 그럼 일찍 나가자고 했다.

그렇게 큰 광장이 아닌데…. 역시나 ‘이게 끝이냐?’는 말을 들으며 산책은 아주 빠르게 끝났다.

엄마는 그래도 늦는 것보다 이른 것이 낫다고 했다.


몬세라트로 향하는 기차는 정말 여유로웠다.

옛날에는 사람이 꽉 차다 못해 서서 갔었는데, 이 시국에 여행하면 이런 장점이 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저 멀리 몬세라트의 바위산이 보였다.


“가우디가 저 산을 보고 어제 갔던 성당을 건축한 거래.”


내 말에 엄마는 조금 관심을 보였고, 동생은 사진을 찍어야 하니 창가에 앉은 나에게 저리 비키라고 했다.


도착한 몬세라트 역. 이제 산 위로 올라갈 차례다.

몬세라트 역에서 산 위로 올라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케이블카, 다른 하나는 산악열차다.

나는 산악열차가 좋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한 로망과 비슷하게, 스위스의 산악열차에 대한 로망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몬세라트에 올라가는 산악열차는 스위스의 산악열차와 다르지만, 그래도 내가 처음 산악열차를 타면서 느꼈던 그 감정을 엄마와 동생도 느껴보길 바랐다.


하지만 엄마는 열차 밖으로 보이는 절벽이 무섭다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몬세라트 수도원에 도착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것은?

바로 화장실 가기다.

무료화장실이 별로 없는 유럽에서는 눈에 보이는 관광지 내의 화장실은 한 번쯤 다 들어가 봐야 한다.


다 같이 볼일을 해결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추위였다.


스페인이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때는 12월, 겨울은 겨울이었다.

게다가 수도원은 해발고도 725m 위에 있으니 추웠다.

나는 경량 패딩에 목도리까지 했는데, 그래서 엄마와 동생에게 혼자만 따뜻하게 입었다는 눈초리를 받았다.

평소에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는 척을 하면서, 오늘은 따뜻하게 입으라고는 말 한마디 안 해줬냐는 것이다.


내가 산에 간다고 했잖아….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유명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소년 성가대다.

그런데 소년 성가대는 방학을 해서 모두 집에 돌아가고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엄마는 소년합창단이 싫다고 했다.

왜냐고 물어보니, 예전에 수도사들이 소년들을 성적으로 학대를 하는 내용을 담은 영화를 봤었던 기억 때문에 별로 좋지 않다고 했다.

안 좋은 기억은 머리에 오래 남나 보다.

우리는 추위를 피해 따뜻한 기념품샵 안으로 들어갔다. 종이나 파우치 등 아기자기한 제품들이 꽤 있었는데 구매하지는 않았다.


기념품샵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와도 바깥은 여전히 추웠다.

엄마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몬세라트라는 관광지 내에 단 하나 있는 카페에 말이다.

나 혼자였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그 카페에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백신 큐알코드를 검사했다.

우여곡절 발급받아온 큐알코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몬세라트에 있는 그 카페의 평은 그렇게 좋지 않았었다.

실제로 음식의 맛은 보통이었다. 하지만 양이 정말 많았고, 적당히 친절했다.


우리는 커피, 그리고 감자튀김과 감자조림을 먹었다.

감자와 감자의 조합인데, 따뜻해 보여서 고르게 되었다.

보기와는 달리 감자조림은 차가웠지만, 산 위에 있는 산장카페의 경험은 새로웠다.



몬세라트의 절경을 마저 둘러보고 바르셀로나 시내로 돌아갔다.

기차를 타기 전에 엄마는 당이 떨어졌는지, 부스럭거리며 한국에서 가져온 젤리를 먹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스페인은 음식이 맛있다. 그러나 아까 산장카페에서 먹은 감자조림을 스페인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엄마와 동생이 그 감자조림을 스페인 음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비극이다.

그러니 외식을 해야겠다!


우리의 첫 외식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바르셀로나 맛집, 예능 ‘원나잇 푸드트립’에서 권혁수가 음식을 먹고 눈물을 흘렸다는 비니투스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네 종류의 타파스와 샹그리아를 시켰다.

워낙 먹는 양이 적은 엄마는 무슨 음식을 네 개나 시키냐며 질색했지만, 막상 나온 타파스의 양을 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엄마, 이건 그냥 음식이 아니라 타파스라고, 술안주 같은 개념이야.”


그래도 엄마는 양이 너무 보잘것없다고 했다.

맛은 어떠냐고 물어보니 그럭저럭 먹을만하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이 샹그리아를 안 마시겠단다.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었다.

음식은 남겨도 아니 안 먹더라도, 술을 남기는 것은 아까워하는 엄마는 샹그리아를 주로 마셨다.

조금 과음을 한 것 같기도 했지만,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괜찮다고 했다.





남은 일정은 가볍게 시내를 둘러보고 싶어서 신청한 바르셀로나 시내 야간 산책 투어다.

투어 전에 숙소에서 쉴까 했는데,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스페인의 패션 브랜드 ‘자라’를 발견했다.

엄마는 이번 여행에 챙긴 옷은 트레이닝복뿐이다.

평소 엄마는 여행을 할 때 그렇게 입고 다니기도 했고, 해외에 자주 다니는 삼촌이 옷은 여행지에서 사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스페인에 가면 자라의 옷이 싸다고 하도 말을 해놔서 그런가, 엄마는 자라에 가자고 했다.


자라에는 쇼핑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많은 인파 속에서 옷을 구경하다 보니 엄마를 놓치고 말았다.


“엄마 어딨어?”


“몰라?”


태연하게 대답하는 동생 뒤로 멀리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파란색의 니트와 패딩조끼를 골라 계산대 줄에 서있었다.

생각보다 엄마는 혼자서도 잘한다.

한편 동생은 엄마가 들고 있는 니트를 보며 자기도 입어야겠다며 탐을 냈다.



숙소에 짐을 두고 투어 미팅 장소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한 것 같아서 달려갔는데 우리가 1등이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엄마와, 한참 뒤에 여유 있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천천히 와도 될뻔했다고 생각했다.



가우디가 디자인한 가로등


크리스마스 기간을 맞이해 바르셀로나 시내는 조명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한참 가이드에게 건축가 가우디와 바르셀로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엄마가 귓가에 속삭였다.


“이 근처에 화장실은 없니?”


아뿔싸!

샹그리아의 2차 신호인 것이다!

많이 급하냐는 물음에 엄마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이동하면서 가이드에게 근처에 화장실은 없냐 물었으나, 난처한 표정으로 화장실 이용은 어렵다고 답했다.

엄마는 급한 건 아니니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중간중간 엄마의 급함을 체크하며 가이드를 따라 바르셀로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에 다 달았다.


지친 엄마와 동생


박수와 함께 투어가 끝났고 우리는 화장실로 숙소로 향했다.

숙소까지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버스 배차시간이 길어 걷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리게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숙소까지 걸어서 가기로 했다.


뛰어! 안돼, 뛰지 마! 그럼 빠른 걸음으로 걸어!


열심히 걸어 무사히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오늘의 일로, 엄마는 앞으로 마시는 것을 조심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한편, 엄마에게 오늘 투어가 어땠냐고 물어보니, 엄마는 도리어 이렇게 해서 투어사는 얼마를 받냐고 물어봤다.

썩 좋은 반응은 아니었다.

엄마에게 오늘은 서비스 투어고, 내일은 좀 더 전문적이고, 더 길고, 더 힘든 진짜 투어를 할 예정이니 일찍 자라고 했다.

엄마는 오늘은 많이 걸어서 잠을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지만, 마음먹은 것처럼 쉽게 잠들지는 못하고 중간에 화장실을 가야 했다.


역시 화장실,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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