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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Mar 25. 2020

그러고 보니 한국의 좋은 점

새애삼 깨닫다.

한국에서 코로나 확진자의 수치가 치솟기 시작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한국은 안 되겠다. 미세먼지도 짜증 나는데 코로나 하며, 정말 못해먹겠다. 정말 이민을 생각해야겠다."였다. 하지만 곧이어 유럽, 미국의 수치가 한국을 넘어서면서부터, 인스타에 국뽕이 가득한 짤 들을 흐뭇하게 보면서 "그래, 한국이 좋은 점도 많지."로 바뀌었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 기분 및 이성의 방향조차 바뀌는 가벼운 나란 사람은 사실 그다지 낯설지 않다. 그래서 한번 써보기로 했다. 남편이 너의 글에는 부정적인 기운이 너무 많다는 말을 듣고, "원래 나란 사람 회의적인 사람, 사람은 그러므로 더 고운 인격체로 발전하는 거지."라며 넘어갔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남편의 한국으로의 복귀 명령을 받고 제일 좋아한 사람은 나였다. 그래서 더듬어 보는 내가 한국이 그리웠던 이유를 여기서 나열해보자.


[기분이 좋기에 재미 반 섞어 재미있게 쓸 예정이므로 말투부터 살짝 초딩 모드, 진지하지 않게 한번 써보기로.]


한국이 좋은 이유 1: 하필 거기서 태어났다.

일단 고향이라 좋은 것, 내 나라라서 좋은 것이 첫 번째 이유. 해외에 오래 살다 보면 다들 애국자가 되어간다. 해외에서 외국인으로 겪은 서러움, 답답함, 한계가 있는 위치 등 정말 수 십 년 지나 내 나라 말이 잘 생각이 안나는 정도이거나 해외의 삶이 너무 만족스럽지 않은 이상 패턴은 비슷한 것 같다. 보통 한국인들을 만나면 해외에 나온 지 5년 미만인 사람들은 (다시 말하지만 진지하지 않고 정확하지 않은 개인적인 시각의 정보) 한국의 좋지 않은 점들만 나열하며 해외 삶에 대해 극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해외에서 오랜 기간 절어계시는 분들은 한국의 기억이 (원래 추억은 아름답게 남는 법) 좋은 점들로 가득하다. 혹은 반대로 한국에 대해 부정적으로 침 튀어가며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일단 다들 한국와의 인연은 100퍼 끊지 않고 있다는 점 (왜 자꾸 주기적으로 한국에 오시냐고요, 욕하는 유학생들은 왜 자꾸 방학마다 한국에 나오는데). 한 인간의 성장기에도 유년기가 평생을 좌우한다는데, 그 유년기를 비롯한 많은 시간들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정서, 문화, 감성, 기억, 추억 등등이 한국에 자리 잡고 있다. 나의 가족들도 거기에, 나의 오랜 친구들도 한국에 있다.


모국어라는 언어 또한 한 몫한다. 배우지 않아도 나의 생각, 감정, 의견 등을 갖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음을 외국어로 표현하려고 하다 보면 모국어가 얼마나 편한지 알 수 있다.


한국이 좋은 이유 2: 상위 이유와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외국인으로서의 삶. 그리 녹록지 않다.

한국의 안 좋은 뉴스들은 단번에 내 귀에 들어오고, 그 내부의 문화는 내가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더 부정적일 수 있다. 어쩌면 비유하자면 가족과도 같은 부분이다. 가족은 단점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좋은 점을 상기하며 언제나 러블리한 가정도 있지만 한국인들 중에도 굳이 나가라는데도 안 나가고 한국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듯, 나가는 애들은 한국의 안 좋은 점을 보고 나가거나 다른 삶을 동경하며 나갔다. 하지만 그들은 해외에 살면서 한국만큼 해외의 뉴스를 깊게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더 깊이 깔래야 깔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미국에서 대통령이 되었을 때 독일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뿌리가 외국인인 출신이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된다는 것이 아직 독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한동안 독일 현지 친구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요새는 한국에서 지나가다 낯선 이와 이야기를 트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는 없지만, 하건 말건 일단은 그런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 외국인은 오래 할 수 없다. 그들의 유머 코드, 세대공감 토크, 시사 이야기 등은 외국인으로서 공부를 해야 하는 알 수 있는 부분이지, 자연스럽게 나오는 부분이 아니다. 특히나 언어가 아직 익숙하지 않을 때, 정치 이야기하면 일단은 숨멎,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누군가 던진 농담에 다들 웃는 데 따라 웃으면서 내용은 모르는 (내용을 알아도 웃기지 않을 때도 있써...), 그래서 나의 토크 패턴이 돌아왔을 때 헛소리하는 기억이 다 커서 해외 나가신 분들은 있을 것이야.


한동안 언어도 익숙해지고 문화도 많이 익혔다 싶으면 나는 비자를 다시 발급받으러 가야 하는 외국인의 신세이다. 다들 같은 위치처럼 친해지고 익숙하다가도 그러한 토픽이 나오면 아... 너 외국인이지. 영주권 받지 그래?를 한번씩 들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면 (설마 저지르지야 안겠지만) 언제나 추방이 기다리고 있는 외국인이다.


친구들 또한 자연스럽게 생기지 않는다. 어느 정도 그들과 맞추려는 나의 노력을 동반한다. 외국인이 노력을 해야만 얻어지는 사적인 관계들이다. 뭐 설명이 충분히 가능한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하면 된다. 하얀 외국인은 언어에 대한 강점 때문 에라도 조금 더 좋은 취급을 받는 이유는 알지만, 그 부분을 배재하고 보자, 한국어도 잘 못하고 한다 해도 말하다가 가끔씩 헛소리를 하거나 가끔 답답해 디지는 포인트를 여러 번 안겨주는 친구를 처음부터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냐고..  또 유머 코드도 안 통하면 그야말로 버리는 카드. (거기서 태어난 교포들은 제외ㄱㄱ)


이제는 출신 신분의 이유 아닌 레알 한국이 좋은 이유를 알려드리겠다.


한국이 좋은 이유 3: 나의 희생으로 타인이 즐거울 친절한 서비스

이런 거 없다. 직원마다, 상점마다, 내가 대하는 존재의 케바케일 뿐 전반적으로 친절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유럽 사람들. 환불 한번 하려면 온갖 증명에 긴 대기시간에 까다로운 절차에 피곤하다. 레스토랑에서 맛이 없다고 불평할 수 있는 나라도 내가 겪어본 나라는 한국이 유일. 독일에서는 맛이 없다 불평하면 "니 입맛에 안 맞으면 다른 데 가서 먹지그래?"를 당할 것이다. 비행기에서 만난 프랑스 여자 두 분을 도와주다가 인천공항에서 버스 티켓을 환불할 일이 생겼는데 다시 창구로 가서 변경하겠다니 알겠다며 바로 변경해주는 장면을 보고 뒤에서 내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입을 벌리고 있던 그녀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겨울이라 혀가 추웠을 텐데)


한국이 좋은 이유 4: 나의 희생으로 타인이 즐거울 빠른 업무 속도

은행 계좌 개설만 해도 독일은 반나절이 걸린다. 다른 나라 또한 마찬가지 우리나라처럼 비대면으로 몇 분 안에 개설 가능한 나라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좀 심히 빠르기를 바라는 게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고객 입장에서는 어쨌거나 개이득. 오히려 너무 빨라서 뭐 좀 읽을라 치면 내 순서가 오는 바람에 불편한 경우도 있다.


한국이 좋은 이유 5: 지독하게 깔끔 떨기

한국은 꽤나 청결하고 위생개념이 있는 편이다. 너무 심해서 귀찮을 정도. 사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병에 걸리거나 죽지 않는데도 대부분 깔끔하다. 가끔은 한국사람들, 특히 나이 좀 드신 분들이 맨날 뭐 삶고, 씻고, 닦고, 빨고 하시는 거 보면서 전쟁 때 위생상태가 안 좋아서, 그래서 주변에 아픈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하고 쓸데없는 생각까지도 들 정도이다. 뭐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한국인의 청결 함덕분에 코로나도 그나마 선방하고 있는 것 아닌지...


해외에서는 설거지를 예로 들자면 싱크대에 따듯한 물을 받아놓고 주방세제를 푼 다음 접시를 퐁당퐁당 스펀지로 슥슥 닦고 거치대로 바로 올려놓고 건조한다. (식기세척기 없는 집 또는 식기세척기 안 쓸 때 상황). 내가 물로 다시 헹구는 것을 보고 그렇게 안 해도 된다며 소량의 세제는 몸에 해롭지 않다고 했다. "그럼 세제 한번 컵에 따라 드리까아-" 하려다 그저 웃고 말았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뉴질랜드나, 영국이나, 독일이나. 특히 독일은 그나마 위생수준이 꽤 높은데도 그러하다. 뉴질랜드는 정말,,, 자연이 받쳐주지 않았으면 아픈 사람들 많아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인간의 면역력은 생각보다 강한가보다. 안 씻을 손으로 피시 앤 칩스를 마구마구 먹은 다음 손가락에 남은 부스러기를 정말 쪼옥쪼옥 빨아먹는 키위(뉴질랜드 현지인들을 키위라고 부릅니다.) 들을 보면 "저렇게들 면역력을 키우는 것이구나"라는 동경심이 생긴다.


유럽여행을 가서 여름에 지하철을 타 보신 분들은 알지만 겪어보지 못한 악취를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그렇다. 잘 씻지 아니하는 분들이 계신다. 여름에는 씻어도 땀이 나서 어쩔 수 없다 쳐도 겨울에는 오히려 더 안 씻는 경우도 있다. 겨울은 냄새가 널리 널리 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나 보다. 사실 손 씻는 문화는 100년도 채 되지 않았을 정도로 유럽에서 씻는다는 것은 건강하지 않다는 인식이 있었다. 손을 소독하는 의미에서 씻는 개념 자체가 한 의사에 의해 제안이 되었는데 그 의사는 당시 엄청나게 까였다고 한다. (하면 의사들도 수술 전에 손을 씻지 않았다는 이야기.)


한국이 좋은 이유 6: 책임감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과일 수도 있으나 해외에서 좀 살다 보면 한국인이 책임감이 꽤나 강하다고 느낄 수 있다. 책임에 따른 무게 때문인지는 몰라도 업무에서나 과제 등 책임회피가 굉장히 강하다. 딱히 너의 책임이야! 를 묻지 않아도 "그건 내 책임 아닌데?"를 자주 시전 당한다. 그렇게 몇 번 당하고 나면 아예 처음부터 세게, 가끔은 관등성명을 요구하게 된다. 이름을 물어본다는 말은 나의 이름으로 고객의 불만을 표시할 수 있다는 뜻이고, 곧 나의 책임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름만 물어보면 일 처리가 한결 수월해진다. (해외 혼자 오래 살아 독해진 여자의 팁. 대신 언어가 뒷받침되야합니다. 어눌하게 하면 당함.)


한국이 좋은 이유 7: 대인배가 많아요.

어리기 때문에 내 사비로 밥을 사주고, 후배이기에 챙겨주고, 기분이 좋아 한턱 쏘고, 남이지만 남자이기에 짐을 들어주고는 아직 내가 해외에서 현지인들에게 겪어보지 못했다. 아 아니다. 몇 번 있다. 한국인 여자 친구를 둔 독일인들이나 아시안 문화를 알고 경제적 여유가 좀 되는 현지인들은 가끔 이런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지만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 내가 처음 뮌헨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뉴질랜드 고등학교에서 이미 알았던 독일 교환학생들) 맥주 한잔하러 갔을 때, 다 같이 먹은 칩스를 정확하게 n등분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었고,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다 같이 맥주 한 박스씩 들고 나르는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게르만 혈통이라 그런가 여자들도 힘이 세데요. 나는 허리 부러질 뻔했는데). 기분파라기보다는 남에게 나의 마음을 조금 더 내주는 듯하다.




뭐 사실 평상시에는 한국의 안 좋은 점이 더 많은 비중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친구들이 가끔 해외 그립지 않냐고 물어올 때면 이따금씩 되뇌어지는 포인트이긴 하다. 나의 대답은 항상 "아직까지는 그다지.."이다. 정치, 국민성, 사회이슈 등 문제 되는 부분이 많기는 하나 (다른 나라도 사실 별거 없어.. 너무 상위 1%와 비교 말자) 나의 허전함을 채워주는 나라는 또 이 나라밖에 없는 팩트이기에. 자국민이라는 말이 외국인으로 살아본 사람에게는 얼마나 힘이 되는 의미인지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르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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