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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Jun 27. 2020

한국스퇄 육아

이유가 다 있었구나.

겪어봐야 안다고, 임신도 하기 전부터 육아 관련해서 관심이 많았던 나는 EBS나 일반 한국과 서양의 육아방식의 차이점을 다루는 영상을 많이 접해왔다. 그중 제일 인상 깊었던 하나는, 한국 엄마들은 대게 아이들을 깨우고 씻기고 먹이고 옷을 입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기 바쁜데 반해, 비교대상이었던 서양 집의 가정생활을 들여다보니 유치원생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서 자고 있는 엄마 아빠를 깨우고 혼자 옷을 입고 유치원 갈 준비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 프로에서는 이 차이에 대해서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나 양육하는 자세만을 짚어주었지만, 내가 직접 키우다 보니 결정적으로 시작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버렸다.

 


그거슨 바로 아이의 수면 패턴!!



독일에서 육아를 시작해서였던지, 내가 알고 있는 아기의 수면 텀은 서양 기준에 많이 맞춰져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식 육아와 패턴 자체가 달랐다. 만 2세 전까지는 저녁 7시면 이미 재울 준비를 하고 8시, 늦어도 8시 반에 재우고 나는 밀린 집안일과 나머지 뒤치다꺼리(라 쓰고 자유시간을 만끽하기)를 하다 12시에 잠이 들곤 했다. 피곤한데 이어 잠도 모자란 나는 아침까지 1분이라도 더 잠이 필요했고 일찍 잠에 든 아들 녀석은 매정하리만큼 정확히 6시 반에 기상해서 나의 머리통을 들어 세우며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오랜 시간의 수면에 상쾌한 아침을 맞은 그는 아침부터 풀로 채워진 에너지로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다가 채 8시가 되지 못해 심심해한다. 아침 산책을 질질 끌려나가 밖에서 에너지를 어느 정도 발산하고 들어오면 10시 정도. 새벽 6시 반부터 에너지를 뿜 뿜 해대던 녀석은 11시쯤 낮잠을 청하려 든다.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에너지를 밝은 대낮의 기운과 함께 태워버리고 나면 오후 7시쯤 이미 녀석의 눈 주위는 안쓰러울 만큼 시커멓게 잘 시간이 다가옴을 알려준다. 어린이집 대기하면서 나와 맞춰진 패턴이다.


싱글 때야 부지런 떨며 6시 반에 일어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 저질체력에게 피곤하기 짝이 없는 기상시간이다. 하지만 저녁 이른 육퇴를 위해서 일어나곤 했다. (조삼모사: 아침에 피곤하거나 저녁에 피곤하거나) 일어나자마자 벤티 사이즈의 커피를 내려 마시기 시작하며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사실 혼자 해외에서 생활할 때에도 기상시간은 늘 6시 반이었지만 자의와 타의는 상당히 다른 삶의 질을 선사함을 깨달았다.


어쨌든, 아이를 가진 친구들과의 모임이나 그 어느 곳에 가도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자리를 떴다. 9시가 넘어서 아이의 패턴을 고려하지 않고 늦게 자리를 떴는데도 불구하고 주변 아이들은 그 시간이 되어도 많이 졸려하지 않는 모습에 의아했었다. 아직 유치원생들인데도 자러 가는 시간이 너무 늦다고 생각했다. 




만 2세가 되어갈 즈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우리 집 사람 비글의 패턴은 점점 바뀌어, 현재는 10시까지 버티고, 가끔은 11시까지 버티다 잠에 든다. 기상시간은 30분 정도 늦추어졌지만 저녁에 자러 가는 시간이 너무 늦어져버렸다. 걱정되는 부분은 점점 재우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 또한 점점 늦어진다는 점이다. 어쩔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2시간 이상씩 재워대니 낮에 수면을 이미 어느 정도 충전한 에너자이저가 일찍 졸려할 리가 만무하다. 원래 잠이 없는 아이라 낮잠을 줄이고 밤잠을 유지한 나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낮에 너무 자버리고 나니 저녁잠을 낮으로 그저 옮기면서 졸린 타이밍을 약간이라도 놓치면 다시 하이퍼가 되어 무서운 저녁시간이 되어버리곤 한다.


게다가 여름이 오면서 9시가 되어도 밖에 아이들 떠드는 소리와 함께 배달 오토바이 소리며 영 잠이 와야 하는 환경이 아니다. 설상가상 크면서 정이 더 쌓여가는 아빠는 정시퇴근을 하고 온다 해도 교통체증에 시간을 까먹고 집에 일찍 도착해야 7시다. 아빠를 보는 순간 아이는 화색이 되어 오던 잠도 물리치고 놀려고 억지로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만 같다. 내가 공들여 맞춰놓은 얼리버드의 패턴 따위는 어린이집 규칙이, 밖에서 늦게 주무시는 아이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남편의 회사 업무시간이, 출퇴근 시간 교통체증이 지나가던 개에게 던져줬다.


이렇게 우리 가족의 패턴 또한 EBS에서 봤던 한국 가정의 패턴으로 늦게 잠이 들고 늦게 일어나게 되는 것이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방식이 나쁜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것이지만, 순수하게 EBS 프로그램 제작자에게 알려주고 싶다.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에서 자기 주도적으로 키우느냐 아니냐에 모든 것이 달린 것은 아니라고..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일찍 일어나 심심해서라도 자기 가방을 챙겨서 나가자고 엄마 차키를 들고 신발을 신으며 나가자고 재촉하던 우리 아들은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아침에 엄마가 깨워야만 일어나는 아이로 변할 수도 있음을 예감하고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엄마 아빠도 제어할 수 없는 환경이 만든 육아방식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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