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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서재 Jun 11. 2023

하루키와의 단 한 번의 만남


-그렇다 하더라도, 너는 이번 생에서 네가 얻고자 한 것을 얻었나?

 그렇다

-무엇을 원했길래?

 이 지상에서, 나를 사랑받는 사람이라 부를 수 있고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

 - 레이먼드 카버 <만년의 조각글 Late Fragment>

 


레이먼드 카버는 마지막 시 <만년의 조각글>에서 자기 인생에 대해 이렇게 자문자답을 한다. 인생의 끝자락 즈음에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다, 나는 사랑받고 있다"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오히려 지난 세월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무엇을 원하면서 살았는지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형철은 <인생의 역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3년부터 단편소설의 대가인 레이먼드 카버에 꽂혀 7편의 소설을 번역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기상으로 문단 데뷔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비롯한 초기 3부작을 완성한 직후부터 카버 작품의 번역작업이 시작됐을 것이다. 하루키의 카버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미국까지 직접 찾아가 그를 만난다. 일본에서 날아온 젊은 작가의 방문은 버 자신에게 큰 반향을 가져왔다. 자기 문학의 근원 감정인 고통, 우연, 굴욕을 하루키에게 간파당한 후, <발사체_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를 발표한다.



우리는 차를 홀짝였다.

내 책이 당신의 나라에서 성공하게 된

타당한 이유들에 대해 점잖게 사색하면서,

당신이 내 소설들에 되풀이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

고통과 굴욕에 대한 대화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그리고 순진한 우연이라는 그 요소에 대해서도.

-  <발사체-무라카미 하루키를 위하여> 레이먼드 카버   

 


하루키와 만난 그날의 단상과 그날 간파당한 자신의 트라우마를 모조리 꺼내서 보여준다. 발사체처럼 우연히 날아온 작가 하루키는 카버의 내면을 들추며, 그에게 있어 고통과 굴욕을 당했던 순간을 떠오르게 한 것이다. <발사체>를 감상하다 보면 마치 "하루키 씨, 유년기에 친구라는 놈들이 던진 얼음덩이에 고막이 터진 그날, 내 인생 최대치의 고통과 우연과 굴욕을 맛봤어, 하루키 당신은 내 작품에 반복적으로 드러난 이 트라우마 3종 세트를 이미 다 아는 것 같더군, 당신의 통찰력을 리스펙 하는 마음을 기억하면서 시를 썼어. 이 세상에 다 드러내서 나의 트라우마를 희석시켜 볼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노르웨이의 숲


<상실의 시대>란 제목으로 우리 서점가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한 후, 판권을 타 출판사가 가져가면서 원제 그대로인 <노르웨이 숲>으로 바뀌어 출간됐다. 하루키에 대한 일본 평단 분위기는 반반이었다. 오에 겐자부로 같은 대가도 영미소설 번역한 느낌이라고 혹평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에 항거하는 투쟁이나 집단주의를 벗어나서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과 사고를 하는 새로운 청춘의 등장에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역으로 일본 독자들도 더 관심을 갖게 됐다. 시대흐름에 맞는 정서가 통했는지 점차 전 세계로 번역되었다.


하루키 초기작의 키워드인 '상실'이라는 단어는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도쿄 유학시절부터 불안과 조급함이 극에 달했다.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공부에 대한 초조함도 있었겠지만 좀 더 근원적인 것이었다. 특히 아쿠다가와 같은 근대 작가를 알고부터 식민지기 조선 지식인의 복합적인 감정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윤동주, 김유정, 그리고 이상 등을 떠올렸다. 이들의 불안은 동시대 일본근대 작가들이 느낀 '막연한 불안'과는 태생부터 결이 다르다. 근대인으로 가는 시대적 불안과 피식민지인으로 무력감과 굴욕이 섞인 불안이 혼재돼 있다. 이 문제에 골몰하다 보니 나도 이 막연한 불안에 동화되어 갔다. 뭔가 조금만 안 풀려도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는 자여'라고 나 자신을 명명하곤 했다. 하루키 초기작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일관된 상실감을 품고 있는 청춘이다. 주로 대학생 정도 남자주인공을 중심이고, 배경이나 사건은 그 세대가 겼었던 전공투(학원 투쟁)와 연애와 좌절 등이다.



나는 하루키를 읽을수록 '막연한 불안이 곧 상실감'이었음을 깨달았다. 실연, 후회, 불안 모두의 집합체였다. 나는 상실감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정체를 파헤치기로 했다. 당시 하루키는 그저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지도 교수님은 생존인물로 논문을 쓰면 평가절하된다, 박사까지 가기 힘들다, 학교에 자리 잡기 힘들다고 경고했다. 한 번뿐인 인생, 뭐 별거 있냐 싶었다. 전략을 버리고 느낌대로 가기로 했다. 그러다 어쩌면 하루키가 계속 좋은 작품을 써준다면 로또 맞는 거 아닌가?




소설책만으론 논문을 쓸 수는 없었다. 관련 칼럼은 잡지 몇 군데에 실렸지만 연구 논문이 있을 리가 없었다. 문학적 성과를 논하기엔 너무 요즘작가였다. 다행히 소설 속의 장소, 재즈음악, 라디오 등과 관련된 안내서가 나오기 시작했고 소설키워드 사전, 몇 편의 의미 있는 평론이 쏟아졌다. 신주쿠 기노쿠니야 서점에서 이 책들을 캐리어에 담아 나르고 매일 번역작업을 했다. 그러나 이대로는 부족했다. 더 유명해지기 전에 만나나 보자.






47세의 하루키는 나이로는 중견 작가지만 이제 세상이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한 작가였다. 패기 있게 당신의 작품으로 논문을 쓰겠소, 하는 외국인 대학원생의 인터뷰에 응한다쉽진 않았을 것이다. 호세이 대학 골목 안 지하 허름하고 퀴퀴한 맥줏집. 작가와의 인터뷰가 처음은 아니었으나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겨자색 조명 아래 둥근 탁자에 마주 앉았다. 하루키는 쥐와 양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초기작 등장인물들은 정식 이름 없이 이런 식으로 불렸다.



나는 <위대한 개츠비>를 쓴 피츠 제럴드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은데 어쩌고 하면서 아는 척 묻기도 했다. 작가의 차기작에 대한 힌트도 들었고, 그가 마라톤 마니아란 사실도 처음 알았다. 여름밤이 깊어갔다. 간다 고서점 방향으로 걸어가면서도 하루키는 열정적으로 뭔가를 설명했다. 쥐가 됐든 양이 됐든 나의 짧은 일본어 탓에 대화 절반은 뜨겁고 축축한 여름밤 공기 속으로 날아갔다. 논문을 증정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과 상실감을 다룬 작품은,

그 시대에 쓰여서 그 시대 사람들과 호흡할 때 가장 가치가 있다.

이 작품은 현실에서 상실을 느끼면서 자아를 지속적으로 찾아가는 것이 인간 숙명이라는 명제를 담고 있다.

- 나의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두 세계" 중



하루키의 방문에 카버가 자극을 받은 것처럼 나의 방문이 하루키 인생에 어떤 반향을 불러왔는지는 알 수 없다. 카버에게 하루키는 발사체였다. 내게도 하루키는 발사체였다. 그는 맨땅에 헤딩하는 연구자에게 친절과 열정으로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했다. 대가도 거절하고 맥줏값도 그가 냈으니 참으로 근사한 발사체가 아닌가. 득실을 따지지 않고 도우려는 마음. 꽤 가치 있다.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당신에게 한수 배운 것들 잘 써먹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맥줏집은 없어졌습니다.



신형철 <인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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