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정서재 May 29. 2023

여자의 거울 속에 엄마 얼굴이 있다

이만교 <그녀, 번지 점프를 하러 가다>


어머니만 웃어버리면 세상은 얼마나 화목한가?     



설 <그녀, 번지 점프를 하러 가다>의 화자인 그녀는, 어릴 적에 엄마가 짜증을 낼 때면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그간 세월을 인내하고 용서해 온 엄마를 떠올린다. 그녀는 매일 비슷비슷한 일상에 권태를 느끼는 중이었다. 남편이 벗어놓은 양말 한 짝처럼 집구석에 덤으로 존재하다고 생각하는 그녀는 ‘엄마도 이렇게 살았을까’ 기억을 더듬어본다. 그러다 우연히 바라본 거울에 비친 얼굴 하나를 발견한다. 누구와 많이 닮아있었다.     


2023.5.Song

어떤 여자는 엄마의 딸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딸의 엄마로 살아가기도 한다. '한 여자로 살아내기'가 꽤나 녹녹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야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한다. 엄마의 길이라는 게 있긴 있는 걸까? 딸의 길은? 거울 속의 엄마 얼마 얼굴이 늙어가는 내 얼굴이라는 충격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딸의 거울 속에 둥그렇게 떠오를 내 얼굴을 걱정한다. "넌 OO한테 너무 바라는 게 많아."  딸이 스물이 되는 동안, 내가 엄마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기도 하다. 같은 상황에서 아들에게는 관대하고 딸에게 엄격했다. 딸이 실수하면 내가 저지른 일 마냥 과민했고 다그쳤다. 딸이 곧 나였고 내가 곧 딸이었다.      



어떤 엄마든 부족한 면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살아간다. 그러나 딸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영하고 위에 군림하는 부모는 절대적으로 아이에게 해를 끼친다. 감정은 아이에게 야금야금 침투해서 지속적으로 상처를 준다. "엄마, 엄마가 그때 그랬던 거 기억나?" 독이 되는 엄마가 더 무서운 독을 맞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미 의존의 끈에 묶여버린 딸은 엄마로부터 자립을 꿈꿀 엄두조차 못 낸다. 더구나 부모에게 상처받은 아이는 엄마를 탓하기보다 오히려 자신을 탓하며 살아간다. 자기 비난이야말로 엄마를 비난하는 일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엄마는 이따금 딸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말을 한다. 대부분은 그게 상처가 될지 예상조차 못한다. "네 친구는 그렇다더라."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들은 또는 우리는, 딸에게 서슴없이 무능을 탓하거나 비교하고 놀린다. 독설을 퍼붓는 엄마는 자기 딸이 완벽해야 된다는, 말도 안 되는 기대를 한다. 지나치게 기대하고 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비난도 하고 내가 문제라고 자책도 한다. 결국 자신도 하지 못하는 어려운 목표와 불가능한 기대로 가득 찬 바람에 엄마와 딸 모두 자존감이 바닥을 치게 된다.     


                                  2023.5.Song


엄마는 딸을 훈육한다는 명분하에 마치 군인처럼 명령하고 생각의자에 앉히기를 반복한다. 전문가가 알려준 방법을 오독하여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엄마가 많다. 딸은 그런 엄마가 무서워서 따르기도 하지만 귀찮아서 듣는 척하고, 어느 날은 폭발하기도 한다. 예상 가능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엄마는 정작 자신이 미숙한 인간임을 깨닫지 못한다. 딸에게 끊임없이 어른스러움과 반성을 강요한다. 차라리 딸이 이 상황을 자각하고 폭발한다면 그다음 성숙의 단계로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독한 말에도 침묵한다면 갈등상황은 이어지고 여전히 미성숙한 아이로 내면화될 것이다.      



딸은 엄마가 말하는 대로 자라는 법이다. 딸들에게 엄마는 세상의 중심이다. 동네 카페에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여자가 있었다. “우리 엄마는 엄마도 아니에요.” 남들 엄마와 우리 엄마가 다르다는 이 말은 엄마라는 존재에게 따뜻함을 느껴본 적 없다는 뜻이었다. 그녀의 엄마는 매번 딸은 배려하지 않고 무조건 호출한 뒤, 요구사항만 늘어놓는 엄마라고 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독설이 돌아온다고 한다. 



엄마만 생각하면 항상 가슴이 답답한 여자. 카페에 나와 지나는 사람 구경하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했다. 결국 엄마가 딸에게 나쁜 말과 차가운 감정을 내뱉으면, 딸은 고스란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딸은 엄마의 충고를 따르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엄마가 화를 내면 겁이 나고 엄마가 불행하면 어떻게 할 바를 모른다. 이런 감정을 성장과정에서 느껴온 딸들은, 가치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반대의 사람이 되어 살아갈 가능성이 많다.     



엄마는 엄마의 자존감을 지켜내야 한다약해빠진 자존감으로는 자신을 지키기는커녕 딸에게 쓸모없는 목표치를 강요하고 함께 좌절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상황을 바꾸려면 약간의 용기는 내야 한다. 자기 욕구를 들여다보는 용기 말이다자신을 억압해 왔던 것들불안의 요인 등


“절대 내 책임이 아니야.” 
이 말을 되뇔 용기조차 없다면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 
엄마가 스스로 자존감을 지켜낼 때 딸의 인생도 지켜낼 수 있다.
그래야 비로소 딸의 거울 속에 조금은 괜찮은 여자가 자리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