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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서재 May 05. 2023

진상손님 편

봉부아,《다정함은 덤이에요》

"이런 날이면
인간은 모두 외롭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존재라고 했던
내 주둥이를 꿰매고 싶어진다."(《다정함은 덤이에요》p.101)



봉부아의《다정함은 덤이에요》는 저자이자 화자인 편의점 주인이 편의점을 둘러싼 일상의 단상을 풀어놓은 책이다.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은 필연적으로 진상 인간을 만나기 마련이다. 어느 날은 주인이 원하는 다정한 손님도 만나지만 어느 날은 예외 없이 불편한 손님을 맞닥뜨린다. 편의점에 '십인래필유미소', '백인래필유진상'이라는 말이 있다며 열 명 중에 반드시 웃게 하는 손님이 있고, 백 명 중에 반드시 진상이 있다는 뜻이라고 말하는 주인의 넋두리는 거의 달관의 경지에 이른 듯하다.



담배맛을 묻는 손님에게 나는 흡연자가 아니라 맛은 모르다고 했더니, 파는 사람이 그것도 모르냐는 시비로 돌아온다. 그날의 사건은 주인의 마음에 아픈 상처로 남는다. 마음 상한 주인은 드러누워 지친 몸과 맘을 달랠 수밖에 없다. 편의점 주인은 담배 손님에게 모욕을 받았다고 여긴다. 하루종일 모든 인간이 외롭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존재는 아니라며 침대 속에서 곱씹는다. 우연히 유튜브에 나온 배송기사 인터뷰가 뜻밖에 주인의 억울한 심정을 풀어지게 만든다. 배송기사는 자신이 겪은 배려 깊은 집을 소개하고, 배송지 목록에 그 집이 있는 날이면 하루가 행복하다고 말한다.



편의점 주인은 배송기사 인터뷰에 오늘  담배 손님을 떠올린다. 주인은 담배 손님을 진상 손님으로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응징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타인의 지나친 행동과 언사에 우리가 관용을 베풀 필요는 없다. 모든 관계에는 선이라는 게 있는 법. 관용이란 무엇일까? 자기 신조와는 다른 타인의 사상이나 행동을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허용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장착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왈쩌의 《관용에 대하여》는 '야만의 방식이 아니라 문명의 방식으로 답하라'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대화와 예절이 교육을 통해 전승되면서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관용적 태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서로의 가치는 대립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애정과 수용적인 태도를 갖춘다면, 누가 더 우위에 있는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도 알게 된다.




편의점 주인은 배송 기사와 배려 깊은 집 사이의 인정을 본 계기로, '관용'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모른다고 딱 잘라 말할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었을 거란 깨달음도 얻는다. 생존을 하기 위해 우리는 손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손해를 보거나 타인에게 상처를 입는 것은 거의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다정함은 덤이에요》는 소시민의 생활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다정함을 덤으로 장착하며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우리는 모두 한때 낯선 사람이었던 사람들과 친구가 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연민과 공감능력이 있으며, 집단 내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능력은 진화를 통해서 획득한 우리 종 고유의 특성이다.(《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p.196)



브라이언 헤어는 약육강식의 논리보다 친화력과 다정함이 우리의 생존을 지속시키는 무기라고 역설한다. 협력과 소통이 인간사회를 번성시켰다면서 '다정해야 생존한다'는 낯선 조합을 제시한다. 이 조합은 '다정함'에 주목하면 안심이 되고, '생존한다'에 주목하면 다소 삭막해진다. 그래도 다정한 것이 살아남아 인류를 지속시켰다면 그것이 이기적인 유전자나 의도적 생각에 기인한다고 해도 공존하는 삶으로 갈 확률이 많다.



편의점 주인은 결국 사람은 마음을 나누며 함께 피는 꽃과 같은 존재임을 상기한다. 즉, 다정한 태도, 관용적인 태도가 좋은 삶을 사는 데는 더 낫다는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아름다운 말만 늘어놓은 자신의 주둥이를 꿰맬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해야겠다고 토닥일지도 모를 일이다. 주인과 손님은 좀 더 유연한 대화를 나눌 것이고 매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담배 손님이 주인에게 진상을 부릴 확률 또한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전히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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