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29

꽉 찬 한 달이었다.

by 최민정


“안녕.”


학교 친구들, 에메랄드 비치, 코코넛 나무 등 정든 사이판과 이별할 시간이다.


울적한 기분으로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렸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나온 큰아이의 표정도 같은 이유로 어두웠다. 하교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스치는 곳곳을 천천히 눈에 담았다. 오래도록 마주하지 못할 풍경인 것만 같아 애잔하기만 하다. 사이판의 하늘, 길가의 들개들에게 작별을 말하려니 코끝이 찡했다.

마지막이 아닌 척 일부러 평소보다 씩씩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칭찬을 퍼부었다. 안전하게 물놀이하고, 낯선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으며, 크게 아프지 않고 한 달을 보내줘서 참 고맙다고 말이다.


“정말 잘했어. 엄마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게 해냈네. 사이판에서 한 달을 보내고 나니 기분이 어때?”

(큰아이) “계속 사이판에 살고 싶어요. 이사 올 방법 없어요?”

(작은 아이) “지금까지 했던 여행 중 사이판 여행이 최고였어요.”


이보다 뜨거운 소감이 있을까.

이런저런 이유로 한 달 살기를 망설이는 엄마가 많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한 번쯤 용기 내 겪어볼 만한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겁쟁이 엄마도 했는데요, 뭘.’


등을 토닥이며 응원해 주고 싶다.

처음엔 누구나 막막합니다. 준비를 다 마쳐도 눈앞에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아요. 하지만 영어가 공용어인 작은 시골 섬으로 긴 여행을 간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사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요. 사이판도 다 사람 사는 곳이라 특별히 어려운 것도 없더라고요. 숙소 있고, 먹거리 있고, 아이들 놀거리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항공권 예매, 숙소 예약과 학교 등록을 해두고 잠시 숨을 돌려보세요. 그럼 80%는 준비된 거예요. 사이판 공항에 착륙하는 순간, 아주 재미있는 모험이 시작됩니다.


막상 살아보니까 영어 좀 못해도 괜찮더라고요. 한국 사람이 영어 발음 좀 어색한 게 우스운 일인가요? 천천히 말하고, 다시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됩니다. 좀 못 알아들으면 어때요? 처음 세상을 만나는 아이의 마음으로 도전해 보세요.

운전? 저는 아직도 쌩쌩 달리는 차가 무섭습니다. 근데 사이판 운전자들은 보통 양보를 잘해요. 신호가 없는 길에서 깜빡이를 켜고 있으면 서로 먼저 가라고 등 떠밉니다. 고속도로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야 하는 곳도 없어요.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정말 가고 싶은데, 일과 경비 등의 문제로 당장 떠나지 못하는 분도 있을 거예요. 저도 가기 전까지 비용이 부담스러웠어요.

나중으로 미루면 어때서요. 그저 마음 한쪽에 한 달 살기를 채워둔다면 언젠가 정말 떠날 날이 올 거예요. 오랜 시간이 지나 아이들이 모두 커버려도 괜찮습니다. 그때 옆에 있는 사람과 손잡고 스페인의 공원을 거닐어도 되고, 베트남의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저는 사실 그래요.


기회가 된다면 두 번, 세 번 또 가고 싶어요. 아이들이 훌쩍 커서 자신들의 미래를 구상할 때 이런 자잘한 경험들이 든든한 기둥이 되어줄지도 모르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인 저도 고단한 일상에 위로가 될 행복한 시간을 많이 쌓아왔거든요. 이런 것들이 적지 않은 돈을 마련해 다녀온 이유가 되고, 전혀 후회하지 않는 까닭이 되었습니다.

돈은, 또 열심히 벌고 모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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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TIP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채 비수기 항공권을 싼 가격에 끊는 상상을 해 봅니다. 가방에는 최소한의 물건을 담고, 낯선 도시의 카페에 앉아 잡지책을 보는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 괜히 가슴이 일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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