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공식적인 행사가 있었다. 전에 일하면서 알던 사람들을 한자리에서 많이 볼 만한 행사였다.
요즘 밖에 나가 그냥 산책을 하거나 맛집, 카페 등을 다니면 괜찮은데 전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좀 불편하다. 나도 변하고 그 사람도 변했는데 마음은 이상하게 예전의 관계를 돌이켜 생각하곤 하는 것이다.
내가 전에 발을 담궜던 동네는 좀 빨리 바뀌고, 사람을 수단을 여기고, 배신이 흉이 되지 않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라고 말하니 무슨 조폭, 범죄조직 그런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건 아니다)하던 곳이지만. 일단 사람을 보면 좀 피곤해 질 수 있는 곳이라는 이야기다.(이렇게 생각하니 또 너무 평범하고).
나에 대한 탐구를 하다 보면 글에 대한 회의가 많이 든다. 글을 쓰면서 밥 벌어 먹고 산 사람이 맞는가 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냥 동네 산책하듯 후줄근하게 하고 가기는 좀 그래서 다시 머리도 감고, 화장도 공들여하고 옷도 비교적 정장 분위기가 나는 옷으로 입었다.
그러고 신발장으로 가 보니 최근 신던 신발들이 다 운동화라 운동화를 신고 나갈까(누가 나에 대해 신경이나 쓰겠어) 하다가 그래도 구두 비스므레 한 오래된 신발을 들었다.
2년 전쯤 샀지만 거의 신지 않아 반짝반짝 한 새 구두의 모습으로 나의 간택을 받았다.
근데 신고보니 뭔가 하얀 것이 묻어나오는 것이 아닌가? 가죽 부분 염색한 염료가 낡아서 조각조각 떨어져 나오는 것이었다.
뭐 괜찮겠지 하고 행사장으로 갔는데 신발의 상태는 더욱 심각해졌다.
반짝반짝하던 외양이 염료가 떨어지고 낡은 가죽이 한 조각씩 떨어져 나오며 신발은 어느새 누더기가 됐다.
그래도 굿굿하게 신고 있으려니 밑창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좀 푹신한 느낌이 들더니(이때만 해도 ‘그래 편한 신발이라 걸어다니기는 좋군’이라고 생각했다) 밑창 검은 고무부분이 하나씩 부서져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꽤 높은 굽의 구두가 폭싹 내려앉을 판이다.
행사는 시에서 하는 국제행사를 잘 준비하기 위한 발제와 토론을 겸한 포럼이었는데 전에 의견을 모아 발표하는 형식이어서 새로울 것은 없었다. 나는 일단 행사장을 나왔다. 내 발을 둘러싸고 있는 신발이 갑자기 와사삭 부서지며 맨발이 나올 것만 같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맨발로 걸어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러면서 갑자기 모공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이러고 있나?”
발전을 멈추고 쓰임이 멈추면 사람은 속에서부터 곯아 조금씩 낡아 어느 사이 부서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고, 릴스를 보며 깔깔거리고 웹소설과 웹툰을 보며 내 시간을 낭비하고 있을 때 알지도 못하는 사이 이렇게 낡고 고루해져서 어느 순간 조각조각 흩어지고 있다는 공포가 업습했다.
영화 <빠빠용>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빠삐용이 꿈에서 자신을 기소한 검사를 대면하고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소!” 라고 말하자
“맞다. 넌 사람을 죽이지 않았지만 살인 보다 더한 죄를 저질렀다. 그것은 인생을 낭비한 죄다!”라고 검사가 답하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