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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Aug 15. 2022

도시는 잉여가치를 담기 위해 끊임없이 진화해 왔다

아주 간략히 살펴본 잉여가치와 도시화의 역사

지금까지 도시는 경제적 잉여가치 축적에 최적화된 형태로 변해왔다. 특히 봉건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면서 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20세기 초중반에 "도시계획"이라는 학문이 독립적으로 발전한 이유도 이러한 변화와 연관 지을 수 있을 것이다. 현대 도시의 규모와 기능은 더 이상 전통적인 건축가 개인의 능력으로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도시계획은 행정, 경제, 교통, 상하수도 인프라, 경관, 부동산, 커뮤니티 등으로 다시 세분화되어 관리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잉여가치의 축적은 도시변화의 중요한 동인(driver)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곳간에 쌓아둔 쌀을 통해 잉여가치를 축적했다. 하지만 이것은 보관 가능한 양과 기간에 한계가 있었다. 우선 쌀을 쌓아두기 위한 큰 창고가 필요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인력이 필요했고, 썩지 않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습기 관리 등 과학적인 장치들이 필요했다. 즉, 잉여가치 축적을 위한 관리비용이 높았고 한계가 명확했다. 이런 이유로 농업에 기반한 잉여가치 축적의 한계는 상업이 발달하기 전까지 도시의 고밀화를 제한했다.


이후 등장한 것은 화폐다. 원래 화폐는 무역과 상업이 발달한 유럽에서 금이나 은의 교환증의 형태로 발전해왔다. 영국의 화폐 단위인 파운드(pound)가 무게를 재는 단위에서 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쌀은 물론 금이나 은을 직접 가지고 다니기에는 너무 부피가 크고 무겁기에 언제나 교환이 가능한 화폐의 발명은 잉여가치의 보관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주었다. 하지만 화폐는 기술적으로는 무한대로 교환이 가능했었지만 금과 연동되었기에 금의 생산량에 따라 양적으로는 유한하게 관리되었다.


유럽의 도시들은 식민지 건설 및 착취를 통해 거두어들이는 잉여가치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설탕을 이용한 디저트, 중국의 차 문화, 인도의 향신료, 회화 등의 예술 작품, 고급 건축물에 대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잉여가치들은 바로 부동산과 예술작품을 포함한 소비상품으로 전환되어 축적되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 화려한 식문화, 의복, 갤러리의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들, 과학의 비약적 발전, 산업혁명 등은 바로 르네상스 시대 이후에 잉여가치가 유럽에 집중되면서 나타난 흔적들이다. 이것은 1970년대에 미국이 금본위제도를 중지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화폐와 금 사이의 가치를 연계하여 화폐 발행을 제한했던 금본위제가 사라지면서 80년대 이후 금융산업은 비약적인 발전 및 팽창을 해왔다. 아시아로 제조업 생산공장들이 이전되면서 서구의 선진국들은 탈산업화와 함께 금융산업에 집중했다. 산업혁명 이후로 미국과 유럽의 제조업은 실질적인 생산을 통해 잉여가치 축적에 기여해왔었지만, 세계화와 금융화를 통해 (그리고 소련의 붕괴로) 동아시아 및 제3세계에 투자된 자본과 이에 대한 금융 수익은 선진국에 축적되기 시작했다.


제조업은 생산원가와 사용가치에 맞게 고정된 가격이 형성되었고 수요에 맞게 생산량을 조절하여 가격을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더 높은 수익을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로 가격을 낮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대량생산을 해야만 했었다. 하지만 금융상품들은 수요에 따라 가격이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교환가치에 기반하였기 때문에 유동성을 통해 시장에 축적된 잉여가치를 거의 무한대로 빨아들이기에 적합했다. 런던과 뉴욕 도심의 마천루는 세계 각지에 투자된 막대한 금융자본을 흡수하고 있는 금융회사들의 높은 빌딩들이 차지하고 있다.  


1970-80년대에 고도성장을 했던 일본은 소니와 도요타 등 탄탄한 제조업 기업들을 통해 미국과의 무역으로 굉장한 양의 잉여가치를 발생시켰고, 이는 다시 일본 국내외 부동산 금융상품에 주로 흡수되었다. 1989년에 미쓰비시가 미국 뉴욕의 심장, 록펠러 센터를 매수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건이었으며, 이는 미국인들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조정되면서 일본 기업들은 수출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었으며 이는 이후 30년간의 장기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실질적인 제조업 생산 및 수출을 통한 잉여가치 발생이 약해지고 금융상품에 형성되던 버블을 받쳐주지 못하면서 부동산에 과잉 흡수되었던 버블이 92년에 붕괴되었다. 일본 고도성장기의 잉여가치 축적 흔적은 현재 도쿄 도심의 인프라 시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높은 빌딩들을 연결하는 거대한 공중 보행로 시설들은 당시에 잉여가치가 국가 주도의 인프라 시설에도 상당수 흡수되었음을 보여준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중국은 제조업을 통해 벌어드린 수익을 신도시 및 부동산 개발을 통해 흡수해왔었지만 최근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인한 생산량 감소는 새로운 금융 위험을 촉발하고 있다.


최근 들어 미국은 제조업 시설과 기술혁신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닫고 다시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첨단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통해 실질 생산량이 금융산업을 받쳐주지 못하고 버블이 발생하면 엄청난 재앙이 오게 됨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 제조업의 해외 이전으로 제조업에 종사하던 미국의 상당수 중산층이 붕괴되어 미국 사회의 계층 양극화가 심화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많은 선진국들이 기술혁신을 통해 IT서비스 및 첨단 제조업의 생산 수익을 자국 내에서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재 최첨단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와 넷플릭스나 구글 같은 IT서비스의 소비자로부터 수집되는 데이터는 미래산업의 중요한 자본으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금융과 결합된 데이터가 잉여가치를 흡수하는 새로운 수단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얼마전 구글과 한국의 카카오의 갈등에서도 나타나듯이 벌써부터 구글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에서 거래되는 모든 수익의 일정 부분을 미국 본사로 흡수하기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하고 있다. 이제는 국가간 경계를 초월하여 디지털 플랫폼의 데이터 거래를 통해 잉여가치가 특정 기업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도시(특히 도심)는 잉여가치를 흡수하기 위한 최적의 형태로 발전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도심에 위치한 금융, 제조업, IT산업의 글로벌 기업들의 빌딩들이 데이터 수집과 처리에 최적화된 형태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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