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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Aug 20. 2022

도시의 번영: 생산이 있어야 분배도 있다.

1900년에서 1980년까지 세계의 생산량 중 80%는 유럽 및 아메리카(미국, 캐나다)에 집중되어 있었다. 근현대의 과학, 정치, 경제, 예술 등이 서구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근간에는 바로 세계경제를 지배했던 절대적인 "생산량"에 있었다. 예를 들어 영국과 미국은 최소한 1970년대까지는 빈부격차가 적고 주택시장은 안정화되었으며 노동소득이 높았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산업적 생산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Piketty, T (2017) 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 London: The Belknap Press.

이 당시 영국에서 생산을 통해 발생하는 잉여가치는 케인스주의 재정정책에 기반한 공공의 대규모 인프라 건설 및 운영에 흡수되어 다시 중산층(도시 근로자)에게 재분배되었다. 잉글랜드 중북부의 많은 도시들이 석탄, 철강, 철도, 화력 발전소 등의 대규모 국가 주도 생산시설에 의존하여 지역경제가 돌아가고 있었고 여기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통해 부가 지역으로 재분배될 수 있었다. 당시 영국에서 중산층의 노동자들이 30대에 semi-detached house 형태의 집(2층 단독주택이 맞벽으로 붙어있는 디자인으로 외부공간에 정원, 주차장, 창고 등을 갖추고 있음)을 구매하여 가족을 꾸리는 것은 일반적인 산업사회의 모습이었다.


70년대 말까지 영국 인구의 1/3이 social housing이라 불리는 공공임대주택에서 저렴하게 거주해왔으며, 현재의 NHS(국가의료서비스)라는 무료 공공의료제도도 당시에 만들어진 복지 시스템이다. 다시 말해, 90년대 이후로 낮아진 산업 생산량을 극복하기 위해 이루어진 대처 정부의 공공서비스 민영화 정책은 국가 전반의 부의 재분배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물론 이미 생산량이 떨어진 상태에서의 분배 시스템은 대처 총리의 경제 개혁 이전부터 오작동하고 있었다.


제조업이 예전 같지 않은 영국과 미국은 금융 및 서비스 산업으로 구조개혁에 성공하여 경제성장을 지속해오고 있지만, 제조업이 망가진 도시들은 끝없는 추락을 경험하고 있다. 즉, 국가는 여전히 부유하지만 제조업 및 공공인프라 생산을 통한 분배 시스템이 약해지면서 계층 양극화가 극대화되고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해지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양적완화를 통해 대량으로 발행된 화폐는 유동성을 높이고 버블을 발생시켜 근로자의 노동 수익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감소시키고 있다.


이론적으로는 국가의 번영(경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리고 계층 간 소득 불균형(부의 분배)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첨단 기술의 끊임없는 개발 및 혁신을 통해 제조업의 경쟁력과 생산량을 높게 유지해야 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충분한 생산이 확보되면 정부는 세금으로 거둬들인 늘어난 공공재정을 투입하여 계층 간 지역 간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다. 즉, 세금 형태로 모아진 부는 공공사업 투자를 통해 지역과 계층에 재분배를 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생산이 충분히 받쳐주지 않는 도시에서의 도시재생 사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요즘 대안적으로 나타난 것이 로컬 비즈니스인데 지방의 소도시에서 창업이 가능한 자본을 마련한 청년층이 지역으로 내려와 지역 건축자산을 활용한 생산(문화공간, 양조장, 카페 등)을 함으로써 외부 관광객을 유치하고 대도시에 집중된 부를 지역으로 끌어오는 전략이다. 문제는 수요가 발생하는 대도시의 경제상황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대도시에 거주하는 관광객의 취향에 맞추다 보면 로컬 비즈니스가 표준화되고 특색을 잃어가면서 소도시간 경쟁이 심화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결국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해외 관광객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전략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국가가 바로 일본이다. 오랜 시간 디플레이션을 겪어온 일본은 중앙정부는 소비 활성화에, 지방정부는 관광산업 활성화에 집중해오고 있다. 하지만 국가의 생산이 약해지게 되면 근본적으로 경제 활성화와 도시재생은 절반의 성과(줄어든 파이의 재분배)밖에 기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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