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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Aug 25. 2022

추월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

모방의 시대에서 스케일업의 시대로

압축성장과 추격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본인의 업무에 대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질문에는 그동안 인색했었다. 저 멀리 앞서가는 선진국들을 타겟으로 설정하고 쉴 새 없이 달려가는 과정에서 질문을 던질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학부를 다니던 이천 년대에는 사례연구와 번역서들이 넘쳐나던 시대였었다. 그 당시는 "왜"라는 질문보다 "어떻게"라는 방법이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던 때였다. 선진국들의 도시전략을 배우고 그 효과를 분석하여 어떻게 한국의 도시들에 적용할지를 고민했었다. 그 최전방에는 세계 각지에서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방법론을 배워와 국내에서 신기술로 적용해왔다. 누군가는 마치 방문판매를 하듯 본인이 깔끔하게 포장해온 가지각색의 해외사례 보따리를 펼쳐 보이며 그 지식의 구매를 종용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현재 우리가 추격하던 목표에 거의 근접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선진국으로 진입하여 추월 이후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왜"라는 질문과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추격의 시대 관점에서는 이것이 모호하고 효율이 낮은 시간낭비로 느껴지겠지만 누구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론과 기술의 개발은 끊임없이 어제보다 나은 한 발짝 전진을 매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것은 지독하게 느리고 외롭고 비싸고 힘든 과정이지만 시행착오를 통한 축적의 시간은 아무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열쇠와 같다. 그리고 그 개척의 방향에 대한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왜라는 질문과 정체성의 형성이다. 실리콘벨리의 글로벌 IT기업 CEO들이 끊임없이 조직의 가치에 의문을 던지며 비전과 정체성을 마치 종교지도자처럼 설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추적의 시대에는 레퍼런스를 모방하여 개선하였지만, 추월의 시대에는 레퍼런스를 발판으로 새로운 방향으로 도약을 해야 한다. 따라서 과거 모델인 모방의 기술자들보단 새로운 아이디어를 현실적인 사업으로 꿋꿋이 버티며 만들어갈 수 있는 스케일업 경험자들을 육성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소수의 천재가 아닌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갈 다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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