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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Feb 08. 2023

혁신과 도시의 번영

철의 여인이 몰락시킨 철의 도시 세필드

인기 미드인 왕좌의 게임에서 네드 스타크 역할을 맡은 숀 빈은 영국 셰필드 출신의 할리우드 배우다. 그는 지역 축구클럽인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광팬으로 알려져 있는데 스스로 칼날의 뜻을 가진 블레이즈(Blades)라 칭한다. 셰필드 유나이티드 팀의 별칭이기도 하다.


이렇듯 한때 철강 노동자들이 대다수였던 셰필드 시민들에게 철(steel)은 자부심의 상징이다. 그래서 셰필드역을 나오자마자 눈앞에 펼쳐지는 경관은 Cutting Edge라는 이름의 철로 만든 긴 벽을 타고 흐르는 인공폭포(water feature)다.


미국 뉴욕의 Brooklyn Bridge는 1883년에 완공되었는데 교량 상판을 지지하는 강철 케이블선은 영국 셰필드에서 제조되었다고 한다.


셰필드의 도구 및 식기(tools and cutlery) 제조는 이미 13세기부터 시작되었고, 1751년에 도가니로 제강법(crucible steel process)이 처음 발명되었다. 1857년에 개발된 Bessemer converter을 통해 iron에서 불순물을 제거하여 고순도의 steel을 생산할 수 있었다. 1913년에는 셰필드의 금속공학자인 Harry Brearley가 개발하여 첫 스테인리스 금속의 생산이 이루어졌다.


셰필드의 번영은 발명과 혁신의 연속이었던 철강산업의 역사 덕분이었다. 기술적 우위를 통해 전성기 시절의 셰필드는 영국 철강 제조의 90%, 유럽 시장의 50%를 점유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유럽시장에서 철강의 과잉공급과 철의 여인(the Iron Lady)이라 불린 대처 총리의 강력한 탈산업화 및 금융육성 정책으로 인해 1981년 27,000개의 셰필드의 철강 관련 직업은 1991년까지 7,000개로 줄어들었다. 영화 풀 몬티(1997)는 이러한 90년대 초의 셰필드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변화(특히 남성성)를 그리고 있다.


이후 셰필드는 치열한 도시재생의 노력을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2003년 4월 1일 가디언 기사(Built on tradition)에 의하면 당시 셰필드는 영국의 비런던 지역 중 가장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였다.


이런 이유로 보통 한국에서 공유되는 셰필드 도시재생 성공사례는 2000년대 초중반의 사례다. 현재 맨체스터와 셰필드를 포함한 영국의 구 공업도시들은 낮은 생산성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기술혁신은 도시 활성화의 핵심 연료라는 사실을 셰필드의 역사가 잘 보여주고 있다.


*첨부된 사진은 2016년 7월의 셰필드 풍경이다. 박사과정을 위해 처음 영국에 도착했을 때 담은 도시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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