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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Feb 10. 2023

복고적 소비와 구별짓기

1969년에 세계 최초로 세이코에서 쿼츠방식의 시계를 출시하기 전까지 시계는 고가의 제품이었다. 전통적인 오토매틱 시계는 고도로 훈련된 시계 장인들이 직접 톱니바퀴를 깎아 수공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을 내리기는 것은 불가능했었다. 산업화의 기본원리인 분업에 의한 대량생산이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1-2만 원의 저가 전자시계도 기능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정확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재밌게도 오히려 이 점이 시계를 사치품 액세서리의 영역과 스마트와치로 양분화시키고 있다.


저렴하게 기능(가성비)이 충족되면서, 첨단기술의 서브장치로서의 스마트와치를 제외하면, 시계는 가심비의 사치성 소비상품으로 변했다. 시간의 정확성은 기본으로 갖춰졌기에 미학적 가치가 특히 강조된다. 동시에 백 년 넘은 스위스 명품 브랜드, 소수의 시계장인, 정교한 기계장치, 단종된 명품모델 디자인 등 전통적 요소들에 대한 복고적 수요가 증가했다.


그런데 저렴하게 생산이 가능한 티비나 노트북도 아닌 왜 하필 시계일까? 몸에 착용하고 휴대하는 개인적 물건이기에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식되며, 집이나 차와 비교하여 크기에 대한 제약이 존재하면서 구별되기 위한 사용자의 심미적 영역을 자극했다고 추측해 본다. 비슷한 경우로는 슈트나 핸드백이 있다.


이러한 이슈에 관해 아직 완전히 정리가 되진 않지만, 저렴한 가격에서 기능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과거의 방식에서 희소성과 비싼 가치(소위 말하는 luxurious, exclusive, classic, vintage)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오픈런을 하면서까지 롤렉스 같은 스위스 장인이 만든 비싼 오토매틱 시계를 찾고, 양복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한 맞춤식 수제 양복을 입고 싶어 한다. 이것은 과거의 계급체계와도 연관된다. 신분제가 없어진 요즘, 수저계급론으로 과거의 특권의식과 귀속적 지위를 복원하려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 현상을 사회적 구별짓기(social distinction)라 주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는 복고적 소비경향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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