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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May 03. 2022

사회 및 산업구조와 음주문화

순수한 소주를 즐기는 한국인과 다르게 영국인들은 도수가 높은 보드카, 진, 럼, 테킬라 같은 증류주는 토닉워터, 탄산수, 소다, 주스, 콜라 등과 섞어마시는 걸 선호한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보통 술을 마실 때 기름지거나 맵고 짠 음식의 술안주와 함께 마시는걸 당연하게 여긴다. 치맥이나 두부김치, 제육볶음, 부대찌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영국인들은 음식과 함께 반주를 하는 경우는 보통 와인이나 맥주 한두 잔을 마시며, 식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술을 마실 때는 안주의 개념이 없이 차를 마시듯 순수하게 술만을 즐긴다.


즉, 안주 없이 독한 증류주를 먹기는 힘들기 때문에 희석해서 연하게 마시는 방식이 선호되는 걸로 보인다. 


어제 아는 영국인 친구에게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사 온 안동소주를 선물하여 함께 마셨는데 얼음을 넣고 탄산수나 크랜베리 주스를 섞어 마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40도가 넘는 소주를 안주 없이 먹기에는 힘이 들어 섞어 마셔야 했다. 함께 저녁으로 케밥을 먹었지만 본격적인 음주는 밥상을 다 치운 뒤에 이루어졌다 (영국의 레스토랑에서도 식사가 끝나면 테이블을 한번 치워주며 이후에 디저트나 (추가) 음주가 시작된다.)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쌀농사를 지었던 과거 한국의 농경사회에서는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함께 술잔을 돌리며 마시는 잔치문화가 있었다. 이것이 현재의 한국식 음주문화에 영향을 끼친 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여기에 함께 식사를 하는 찌개 문화 역시 여러 사람이 둘러앉아 안주를 공유하여 함께 마시는 현재의 음주문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집단과 위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사회에서 윗사람이 마신 술잔을 돌려 마심으로써 소속감을 확인하기도 했다. 대학 MT부터 회사 회식까지 굉장히 유사한 목적의 음주 메커니즘을 가진다.


이미 18세기부터 산업화를 겪은 영국에서는 펍에서 맥주 한잔을 시켜 조용히 혼자 축구를 보며 마시거나 소규모로 마시고 귀가하는 것이 대표적인 도시 근로자들의 음주문화다. 분업화된 생산구조(공장 라인에서 각자 맡은 생산 임무만 반복하여 실행)와 도시 노동자들의 개인주의 그리고 음주문화는 분명 관계가 있어 보인다. 또한 개인화된 서구사회에서 우리처럼 푸짐하게 차린 술안주를 공유하며 술을 마시는 건 상상(?) 하기 힘든 문화다. 심지어 영국인들은 피자도 각자 한판씩 시켜 먹는다. 박사과정생들끼리 피자가게에서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이러한 룰(?)을 몰랐던 나와 중국인 친구만 주문을 하지 않아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증거는 빈약하지만 (또한 아직은 개인적인 이론이지만) 이처럼 음주문화에는 그 나라의 사회 및 산업구조가 반영되어 있다.


*논외로 개인플레이(개인기, 포지션별 역할), 팀의 협력(패싱, 전술), 집단의 목표(지역/도시/커뮤니티 간 경쟁), 산업 자본가의 경제적 후원(훈련장 및 경기장, 전문적 훈련, 경영을 위한 금융지원)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클럽축구가 유럽 사회에서 인기 있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기독교적 가치를 기반으로 커뮤니티를 중시하면서 동시에 개인의 삶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유럽 사회와 클럽축구는 공통점이 많다. 넷플릭스 다큐인 '죽어도 선덜랜드(2018, 2020)'는 이러한 물음에 어느 정도 답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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