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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May 03. 2022

17-19세기 영국 철도의 역사와 위기를 통한 기술혁신

초기 철도의 역사는 1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탄광지역에서 석탄을 운반하기 위해 철로가 처음 설치되었다. 셰필드에는 1729년에 마차철로(wagonway)가 처음 설치되었다. 스팀엔진이 발명되기 전이라 말이 직접 선로를 따라 끌어야 했다. 현재까지도 사용되는 마력(horsepower)은 이때부터 새로운 엔진의 성능을 말과 비교하여 나타내는 단위로 사용되고 있다. 


1698년에 Tomas Savery에 의해 압축된 증기를 통해 탄광에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처음 발명되었고, 1712년 Tomas Newcomen이 이것을 엔진의 형태로 개발하였으며, 1765년에 James Watt가 개량된 스팀엔진을 상용화시켰다. 이후 James Watt가 독점한 시장에 여러 경쟁자들이 도전장을 내밀기 위해 개량형을 개발하면서 성능은 개선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에는 증기의 압축을 충분히 높여 속도를 높이기 위한 튼튼한 보일러를 만들 기술이 없었으며, 무쇠로 만들어져 4톤이 넘는 기관차(locomotive)로 인해 철로는 쉽게 파손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말을 통한 운반은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즉, 운송수단의 엔진과 기반시설인 철로가 동시에 기술적으로 보완되어야 했던 시기였다.


1803년에 일어난 나폴레옹 전쟁은 말과 사료 가격을 순식간에 상승시켰고 이로 인해 기계화를 위한 스팀엔진은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스팀엔진의 단가를 줄이고 효율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에 박차를 가했다. 애초에 영국의 산업혁명은 전쟁과 전염병으로 인구가 줄어들면서 유럽에서 인건비가 가장 비싸지면서 시작되었다(동시에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계약제도와 민주주의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영국은 유럽 최대의 석탄 생산 국가였기에 기계를 운영하기 위한 에너지를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석탄 공급을 위한 스팀엔진과 철도망의 개발은 시장의 수요에 의해 필연적인 것이었다. 


영국에서 전쟁으로 인한 기술혁명은 현재 코로나로 인해 비접촉식 디지털 기술이 순식간에 일상에 적용된 상황과 비슷했다. 역사적으로 인류의 혁신과 변화는 불편함과 위기로부터 찾아왔다.


당시 중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나의 중국을 외치는 중앙집권적 단일 권력은 리스크가 큰 개혁과 혁신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군신관계를 내세우며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유럽에 비해 훨씬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했다. 반면에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은 비슷한 규모의 왕국들간의 견제와 충돌 속에서 혁신을 이루어왔다. 콜럼버스의 당시 제안은 현재 엘론 머스크의 화성개발 계획만큼 허무맹랑한 프로젝트였으며, 스페인에 의해 실현될 수 있었던 건 유럽의 지정학적 경쟁구도 때문이었다. 그런 리스크에 투자한 스페인은 이후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전국시대에 수백 년간 영주들 간에 끊임없는 전쟁과 경쟁이 일어났던 일본은 메이지유신이라는 개혁을 일으키며 근대 아시아의 과학기술을 리드할 수 있었다. 현대의 실리콘벨리를 중심으로 한 미국 벤처 투자문화는 미국을 기술 강대국으로 이끈 힘이다. 다만 공정한 경쟁이 사라지고 독점과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현대의 신자유주의는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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