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서구의 현대 공간이론들은 정치, 경제, 상업, 사회, 정신, 생태, 인구, 국가, 글로벌 등 수많은 요소들이 다양하게 얽히고 충돌하는 공간 위의 복잡성 속에서 반복되는 차이들(distinctions)을 이해하려 노력해왔다. 특히, 마누엘 카스텔스, 사스키아 사센, 데이비드 하비, 롭 쉴즈 같은 맑시즘 학자들은 변증법적 유물론의 관점에서 지식, 자본, 기술 등 무형적 흐름이 가져오는 공간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용어를 처음 사용한 영국의 루스 글래스도 부와 계층의 흐름을 감지한 맑시즘 사회학자였다.
일상은 반복되지만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게 반복되지 않듯이, 공간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차이를 반복하며 변화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가장 처음 인지하는 것은 타인의 외형 차이(헤어스타일, 패션, 체중, 체형, 피부 상태 등)이며, 이어서 그동안의 변화(사회경제적 근황)를 듣고 상대와 나 사이의 차이 인지를 통해 관계의 상대적 위치를 파악 및 설정하려 한다. 현재의 일상은 어제의 simulation이면서 동시에 내일의 projection이며, 마치 애니메이션처럼 낱장의 그림은 동일하고 멈춰있어 보이지만 그것이 모두 이어져서 작동할 때에 비로소 차이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다. 즉, 공간의 복잡성(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에서 발현되는 일상의 리듬은 변화의 동력이며, 그 리듬은 공간생산의 흐름과 로직을 결정짓는다.
현대의 질적 도시공간 연구는 연속적인 시공간의 다이내믹스를 읽어내어 차이의 반복을 인지하고 그것이 일어나는 지점(분기점)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역학관계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차이의 반복들이 도시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에 대한 전체 메커니즘(공간 생산의 틀)을 먼저 이해해야만 다양한 도시문제에 대한 상대적이고 합리적인 대응이 가능해진다.
*자본주의 모순: 과거 농촌사회의 리듬은 자연의 변화에 기반(e.g.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일상)하였으나 근대 도시는 사회경제적이며 인공적인 노동생산 리듬에 인간성을 억압적으로 우겨넣는 가운데 발생했다. 손목시계는 '시간은 금'이라는 관념과 함께 자본주의 시대의 신뢰와 성공의 상징이라는 나레티브를 생산했으나 동시에 노동자들을 컨트롤하는 사회적 족쇄와도 같은 기능을 갖는다 (e.g. 시계를 보며 바쁘게 뛰어다니는 현대인의 출근일상). 소수의 물질적 욕망을 실현하려는 자본주의는 모순적으로 다수의 억압적 일상의 리듬을 발생시킨다.
*현대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소비공간들은 현대인들이 자본주의의 억압적 리듬과 반자연적 상태의 피로감에서 순간적으로 해방되었다고 믿게 만드는 비일상성을 제공한다. 한국사회에서 유난히 저렴한 소주의 가격도 산업화 시기에 노동자들을 다루기 위한 근대적 정치도구의 흔적이다. 고된 노동을 마치고 국밥집에서 소주 한잔으로 피로를 털어내는 것을 근면한 노동자의 상이자 당연한 순응적 일상성으로 그려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과로로 몸은 망가지고 알콜의 기운으로 버티는 일상의 반복이 한국사회에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심지어 건강상의 문제를 본인의 근면성실성과 연관 지어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서구 도시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슬럼에서 마약이 큰 사회문제가 되는 것도 일상의 고통을 잠시 잊고 일탈적 리듬을 취하려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