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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May 05. 2022

자본주의 도시들은 어떻게 식문화를 변화시켰나?

[삼천자 글쓰기 프로젝트] 도시와 식문화

근대개항도시, 중국 화교, 전쟁, 로컬화 된 식문화. 이 공통의 키워드로 조합되어 탄생한 음식이 바로 한국의 짜장면과 일본의 라멘이다. 공간, 문화, 사회, 경제의 변화는 새로운 식문화의 발전으로 응집된다.


15세기 이후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침략하는 과정에서 토마토, 고추, 감자, 고구마, 옥수수 같은 멕시코의 식재료들이 유럽과 아시아로 흘러들어 가면서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이탈리아에서는 토마토를 이용한 파스타가, 영국에서는 감자튀김 요리인 칩스가, 한국에서는 고춧가루가 들어간 붉은 김치가 탄생했다. 사실 전통이라 말하는 각국의 식문화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화의 증거이기도 하다.


빠르게 진행된 각국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노동자들에게 충분한 칼로리의 식량공급이 중요했다. 이것은 대량생산으로 저렴해진 기름과 밀가루를 이용한 길거리 음식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바쁜 도시의 노동자들은 길거리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고칼로리 음식들을 빠르게 섭취하기 시작했고 이것은 패스트푸드 문화로 발전했다.


19세기 영국의 맨체스터와 런던에서 시작된 기름에 튀긴 생선과 감자 요리인 피쉬앤칩스가 노동자들을 위한 거리 음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는 덴뿌라를 올린 소바나 우동, 라멘이 저렴하게 판매되었고, 한국에서는 전통적인 국밥을 포함해 칼국수, 라면, 김밥, 떡볶이, 튀김, 순대, 호떡 등의 길거리 음식들이 발달했다. 이후 이러한 길거리 식문화의 메커니즘은 고스란히 현대식 편의점으로 이식되었다.


18세기 에도(도쿄) 막부는 권력 강화를 위해 지방 영주인 다이묘들을 정기적으로 일 년간 에도에 볼모로 머무르게 하는 참근교대제를 실시했다. 이로 인해 에도는 전성기에 백만 명의 인구(당시 파리 55만 명)가 거주했고, 초기에 신도시 건설을 위해 전국의 목수와 건설 노동자들이 에도로 몰려들었다. 한때 남성 인구가 전체의 70%에 달했다고 한다.


근대의 주요 도시들이 그랬듯 빠른 도시화로 인해 에도도 가구당 5평 남짓한 비좁은 공간에서 생활해야 했으며, 목조주택에서 매 끼니를 해 먹기에는 화재의 위험이 높았다.


따라서 야다이라 불리는 거리의 간이식당들이 등장하여 저렴한 덴뿌라부터 스시, 소바 등 패스트푸드를 판매했다. 경쟁관계였던 관서지방(교토, 오사카)과의 차별화를 위해 나무틀에 눌러 며칠 숙성시켜 먹는 하코 스시가 아닌 밥을 손으로 쥐어 생선을 올리고 바로 먹는 니기리 스시가 에도의 포장마차에서 시작되었다. 사실 원조 스시(초밥)는 숙성해 먹는 음식이었으나 바쁜 에도의 노동자들을 위해 숙성기간 없이 바로 식초를 뿌린 저렴한 패스트푸드 형태의 현대 스시가 시작되었다. (*메이지 유신 전까지 1200년간 일본에서 육식은 금지되었었다.)


흥미로운 점은 18세기 에도시대의 노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현대 일본의 바쁜 직장인들이 직장 혹은 집 근처에서 패스트푸드로 소비하는 인기 있는 음식은 여전히 덴뿌라를 올린 소바라는 점이다. 몇 년 전 개인적으로 도쿄의 한 회사에 볼일이 있어서 함께 점심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남성 직장인들이 줄을 서는 곳은 주로 소바, 라멘, 우동집들이었다.

일본 에도시대에는 당시 패스트푸드라고 할 수 있는 스시나 소바를 길거리에서 팔았다 (KBS 다큐멘터리, '누들로드')

각 나라별로 근대 이후 상업이 활성화되고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바쁜 노동자들을 위한 일종의 패스트푸드 문화가 발달했다. 즉, 물류가 이동하는 곳에 시장이 열리고 노동자들을 위한 식문화도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한국(당시 조선)은 교외에서 식자재 등의 물류가 서울의 도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인 피맛골 일대에 국밥집들이 생겨났고, 바쁜 노동자들은 저렴하고 푸짐한 국밥을 빠르게 먹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청진동 하면 24시 해장국이 떠오르는 이유다.


영국의 피쉬앤칩스도 19-20세기 산업화 시대에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였다. 철도망의 발달로 해안가의 식자재가 내륙으로 빠르게 공급되고 산업화로 식용유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맨체스터와 런던 같이 노동자들이 많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피쉬앤칩스 가게들이 발달했다. 튀긴 생선과 감자의 높은 열량은 노동자들의 배를 저렴한 가격에 든든하게 채워줬다.


지금까지도 피쉬앤칩스를 길가에 서서 먹는 사람이 많은데 20세기 중반까지 우리의 호떡처럼 신문지에 포장해서 팔았고 그걸 받아서 바로 길거리에서 먹 문화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밌는 점은 우리의 해장국처럼 영국인들도 클럽에서 밤새 마시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출출한 새벽녘에 마지막으로 먹는 음식이 바로 칩스(감자튀김)라는 사실이다.

필자가 런던의 단골 가게에서 포장해 온 피쉬앤칩스와 소시지

1920년대 영국 사회를 그린 드라마 다운튼 애비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servant라 불리는 저택의 직원들이다. 드라마에서 이들은 본인이 노예가 아니라는 점과 계약에 의한 고용관계를 강조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즉, 20세기 초에 이들은 계급관계가 아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독립적인 산업 노동력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약은 영국이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오는 시기에 시민계층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킨 촉매제의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hospitality industry는 서비스업 중에서도 호텔, 식당, 주점, 카페 등이 속한다. 즉, 드라마에 등장했듯이 근대에 대저택에서 귀족들에게 제공하던 서비스들이 분리되어 상업화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수 있다.


귀족문화에서 파생된 근대 유럽의 레스토랑은 일찍이 중세부터 발달한 아시아의 식당들이 시장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영업했다는 점과 대조된다. 서구사회에서 레스토랑은 드레스코드가 있을 정도로 격식을 갖추어야 하는 공간이지만 아시아의 식당들은 오히려 누구나 간편하고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거리의 식문화들이 발전했다. 지금도 유럽 도시의 거리에서 길거리 음식은 굉장히 드물다. 영국에서 레스토랑은 직원들의 서비스에 대한 팁을 지불하는 문화가 있지만 전통적으로 노동자들의 공간이었던 펍(public house)은 팁 문화도 없을뿐더러 선불에 셀프(술, 음료)다. 이처럼 서비스업의 기원과 역사에 따라 소비공간의 문화는 달라진다.

드라마 다운튼 애비

1950-60년대 미국, 자동차 시대의 도래와 함께 최초로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의 산업화를 이루어낸 맥도날드의 창업과 성장 이야기를 다룬 영화 더 파운더 (The Founder, 2016)를 보면 미국 패스트푸드의 대량생산과 부동산 금융 시스템의 결합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초기에 맥도날드는 매장 수를 늘려감에도 불구하고 낮은 로열티로 인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문제 해결을 위해 대표인 레이 크록은 회사가 소유한 부동산에 매장을 새로 개업하는 시스템으로 전략을 변화시켰다. 이는 회사가 토지 임대인으로서 임차인으로 계약된 개인 매장 컨트롤이 쉬웠고 품질관리가 소홀한 매장과의 계약 파기도 용이했다. 또한 회사가 미리 확보한 토지로 인해 계약자가 매장 개업 시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 매장 수를 늘리기 유리했고, 이후에 임대료 수익을 로열티에 포함시켜 회사는 안정되면서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수익으로 다시 부동산을 늘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부동산 회사로서의 맥도날드는 수많은 매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을 빠르고 간편하게 본사로 흡수시키기 좋은 형태로 진화되어 갔다. 패스트푸드는 빠른 생산으로 더 많은 수익을 발생시키는 "생산시스템"이었고 맥도날드는 빠른 부동산 확장으로 패스트푸드 사업의 수익을 본사로 집중시키는 "금융시스템"이었다. 즉,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파는 부동산 기업이며 이는 세계의 자본주의 도시들로 확장되고 있다.


아래는 부동산 전략을 레이 크록에게 제시한 (훗날 CEO가 되는) 해리 소더본의 영화 중 대사다.


당신은 햄버거 사업가가 아니야.  

You’re not in the burger business.


당신은 부동산 사업가야.   

You’re in the real-estate business.


햄버거 하나에 15센트가 떨어지는 1.4%의 로열티로는 당신의 제국을 건설할 수 없어. 

You don’t build an empire off a 1.4 percent cut of a 15-cent hamburger.


당신은 햄버거가 조리되는 땅을 가짐으로써 그것을 이룰 수 있어.

You build it by owning the land upon which that burger is cooked.


땅... 그곳에 돈이 있고 지배력이 있어. 프랜차이즈를 통제할 힘. 

Land... That’s where the money is.

And control. Control over the franchisee.


한국, 일본, 영국,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자본주의 도시에서 도시화 및 산업화, 정치 시스템, 경제적 생산 및 유통 시스템, 노동시장은 일상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새로운 식문화를 만들어 낸다. 반대로 식문화에는 도시의 역사와 시스템적 맥락이 담겨있다. 이것이 도시연구에서 식문화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영화 더 파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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