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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언정 Mar 03. 2022

완벽하지 않아서 더욱 멋진 무대

나는 민준이의 실수 많은 무대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2021년 4월. 민준이가 다니던 방과 후 센터가 원장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운영을 그만하게 되었다.

민준이가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고 하니 예전부터 원장님께서 민준이의 연주를 다른 친구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었는데 미처 기회를 갖지 못했었다. 그래서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노래와 색소폰 연주로 친구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짧은 공연을 하기로 하고 남편과 함께 센터에 갔다.

 

그날, 센터로 가는 길에는 '간단하게 색소폰 한 곡 정도 연주하면 될 일인데 괜히 남편까지 동원해서 노래까지 한다고 말씀드렸나' 하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쳐가기도 했었다. 그러나 무대를 끝마치고 나서는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가고 싶어 했던 준하는 중간고사의 부담을 떨치지 못하고 참석을 안 했는데 준하까지 갔더라면 다들 아주 심하게 놀랄 뻔했다^^

 

민준이는 2019년 8월부터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색소폰 레슨을 받기로 했을 때 나를 깜짝 놀라게 했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민준이가 들숨과 날숨을 구분을 못한다는 이었다. "민준아, 숨을 이렇게 후~~~ 하고 내뱉어 봐" 하는데 민준이는 자꾸 "흡~~~~"하고 들이마셨다.


나는 스무 살을 바라보는 아이가 들숨과 날숨을 구분 못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아주 충격을 받았었다. 그리 숨을 내쉬지도 못하는 아이가 과연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배울 수는 있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색소폰 레슨 선생님께서는 포기하지 않고 아주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주셨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민준이는 안정적으로 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고, 운지를 배우며 연습을 거듭하여 짧은 소품곡을 혼자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 날은 민준이가 무대에서 처음으로 색소폰을 연주한 역사적인 날이 되었다. 또한 독주뿐 아니라 아빠와 함께 하는 합주까지도 선보이겠다는 욕심을 부린  날이기도 했다. 원래 우리 집에는 색소폰이 한 대만 있었고, 민준이와 아빠가 번갈아가며 연습을 하곤 했었는데 이 공연을 하기 두 달 전 색소폰을 한 대 더 사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집에 색소폰이 두 대가 되었고, 따라서 민준이와 아빠의 합주가 가능해졌다. 그날의 연주에서 간간이 매끄럽지 못한 소리도 났지만 2년 전 들숨과 날숨도 구분 못하던 민준이를 기억하는 내게는 바로 기적의 순간이기도 했다.

 

2부로 나누어하는 합주를 선보인 캐논 변주곡은 사실 연습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곡이었다. 2부 합주에서 세컨드 파트를 연주하는 민준이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아빠의 소리를 따라가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켜야 한다. 솔직히 이것은 민준이가 여지껏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무척 어려운 일임에도 생각보다 잘해주어서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세 곡을 내리 연주하다 보니 민준이가 힘들었는지 색소폰 연주를 하다 중간에 갑자기 멈춰 버리는 일이 생겼다^^;;; 객석에서 지켜보던 나는 무척 당황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민준이 옆에 서 있었던 남편의 반응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런 돌발상황에도 남편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마치 집에서 연습하던 때 인양 어디서부터 연주해야 할지 악보를 손가락으로 집어 주었고, 그 부분부터 민준이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민준이가 실수할까 봐 함께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싫어했던 그 남편이 맞나 싶었, 내 마음 속에 감동의 물결이 밀려왔었다.

 

색소폰 연주가 끝나고 이어서 민준이의 노래가 시작되었다. '내 모습 이대로'라는 제목의 노래가 첫 곡이었는데 원장님은 첫 소절부터 아주 감탄을 하셨다. 미처 몰랐던 민준이의 노래 실력에 깜짝 놀라시는 듯했다. 그런데 원장님은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네 연약함 그대로 사랑하시네'라는 가사로 시작되는 이 노래를 듣다가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며 훌쩍대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 눈물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민준이의 이 노래를 듣고 울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직접 본 적은 처음이어서 옆에서 보는 나는 적잖이 놀랐다.

 

공연이 다 끝나고 원장님은 내게 "제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고 하나님께서 저에게 말씀하시는 거 같았어요"라고 이야기해주셨다.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하는 민준이의 모습은 마치 장애의 마법이 풀린 듯했다고, 그래서 민준이의 노래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평소에 보았던 민준이에게서는 예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었나 보다 싶었다.

 

그리고 원장님은 무대에서 민준이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너무 좋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민준이의 무대를 볼 때마다 제발 좀 앞만 보고 정숙하게 노래할 수 없을까를 매번 생각했는데 오히려 산만하고 어설픈 그 모습이 더 감동이라고 하시니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사실 이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여러 번 들었던 이야기였다.


돌아보니 나는 처음 민준이를 무대에 세울 때부터 7년이 지난 그때까지도 민준이가 반듯하게 잘하는 모습만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가사를 바꿔 부르는 민준이를 보면 동영상을 찍다가도 안타까워서 내 목소리가 튀어나왔고(초기 동영상에는 살짝 음치인 내 목소리가 덧입혀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영상들이 제법 있다^^;;),  손짓이나 시선이 산만한 모습을 보면 뛰어나가 바로 잡아주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느라 참 힘들었었다.

 

그런데 이 날, 원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마음을 바꾸기로 했다. 무대에서 보이는 민준이의 손짓, 음 이탈, 가사 바꿔 부르기 등 '누가누가 잘하나' 대회라면 감점 요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오히려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런 부분들이 민준이의 무대를 빛나게 하고, 민준이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무대를 보여주는 것임을 인정하기로 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무대가 비장애인의 무대와 꼭 같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부터도

민준이가 비장애인과 똑같이 실수 없고, 깔끔하고, 완벽한 무대를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음을, 그래서 은근히 민준이에게 그것을 강요해왔음을 이날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다.

 

한편, 민준이의 실수 많은 무대를 사랑스럽게 보기로 결심하고 나자 내 마음이 아주 푸근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은 나 자신도 나 스스로 더 너그럽게 수용하고, 또 누군가에게서도 부족한 나를 수용받는 거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멋진 무대, 아니 완벽하지 않아서 더욱 멋진 무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무대는 바로 그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같은 층 옆 사무실에서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었다. 색소폰 소리가 들리자 일하던 사장님께서 연장을 내려놓고 달려와 특별 관객이 되어주셨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 "은혜 많이 받았다"라고 인사말을 전해주셨다. 음악은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서로서로 이어주고 연결해주는 훌륭한 도구임을 민준이 '덕분에' 새롭게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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