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Day
각 도시는 저마다 독특한 향이 있다.
몇 가지 낱말과 은유로 표현하기 어렵다.
‘맛’ 은 경험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도시의 향은 그렇지 않다.
가봐야만 알 수 있다.
김포에서 아침 9시 비행기를 타고,
하네다에 도착하니 11시 반.
공항부터 다른 향내가 진동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시부야 마크시티에 닿은 건 오후 두 시쯤.
시부야 한복판에서, 뜨거운 햇살을 한 몸에 받으며 습한 공기를 크게 들이켰다.
역시 다르다.
알맞은 언어와 표현을 찾을 재간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담배가 너무 피고 싶다.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이곳의 자유로웠던 흡연 역사는 뒤안길로 사라졌다.
말도 안 되게 엄격해진 도쿄의 흡연 문화는 애연가들에게 실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저기, 공식적인 흡연구역이 보인다.
시부야역에서 나와 스크램블 횡단보도 건너기 전에 위치해 있다.
순식간에 남편과 나를 덮친 더위와 습기에 말을 잃은 채 눈빛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이 흡연공간에는 네온 컬러의 조끼를 입은 가드가 인사도 해준다.
입퇴장의 교통정리도 한다.
“어서 와”
“잘 가”
“잠시만. 저 사람 지나가고, 들어가렴.”
─ 이런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다.
참으로 금시초문의 근로자 역할이 아닐 수 없다.
8월 하순,
시부야는 뜨거웠다.
내 등줄기를 타고 땀이 계속 흘렀다.
옆에서 남편은 턱 끝에서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조금이라도 뜨거운 해를 피해보겠다고 모자를 푹 눌러썼다.
호텔까지 걸어서 고작 10~15분 남짓한 거리지만, 한없이 멀게만 느껴졌다.
쏟아지는 인파와 속수무책의 더위 때문이리라.
다행히,
어디가 되었 건, 실내로 들어서면 땀은 금방 식힐 수 있다.
호텔이건, 쇼핑몰이건, 상점이건 어디든.
밖이 위험할 뿐이다.
이후,
도쿄에서 머무른 날이 이틀 정도쯤 되었을 때,
편의점에서 물, 홍차, 녹차, 이온음료를 냉동실에 얼려서 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가방이 아무리 무거워도, ‘냉동 이온음료’를 편의점에서 사고 나서, 일정을 시작했다.
하루가 어느덧 저물기 시작했다.
선선해질 법도 한데,
더위의 기세가 식지 않았다.
그리 많이 걷지 않은 것 같은데, 도쿄의 무더위에 지친다.
새벽부터 준비해 여기까지 이끌고 온 일정 때문이라 여겼다.
그리고 체력을 가다듬는다.
턱턱 막히는 습한 더위에 나는 너덜너덜해졌다.
시부야에서 하라주쿠 캣 스트리트를 지나 오모테산도로 향하는 사거리는 언제나 말도 안 될 만큼 붐볐다.
신호를 기다리며,
또다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정확히는 내 척추기립근까지 주르륵 흐르는 땀이었다.
나의 앞머리는 손 쓸 수도 없이 양 옆이 땀으로 젖어 붙어있다.
푹 젖어버린 나의 ‘헤드-투-토(Head to toe)’ 를 의식으로 훑었다.
‘대낮부터 끈적이게 더웠던 게 一
아직도, 여전히 더워’
라는 속의 말을 했다.
그리고 이내,
북적거리는 인파들 사이에서 나는 헛웃음이 났다.
"왜 웃어?"
옆에서 남편이 내게 묻는다.
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이 더위가 어이가 없어서."
둘이 헛웃음을 보였다.
그리고 다시 우리 둘은 다음 말을 잇지 않은 채, 사거리를 건넜다.
도쿄 여행을 계획한다면,
여름은 피하는 것이 좋다.
여름에 도쿄를 만난다면,
‘힘들다. 덥다’라는 푸념은 미리 삼켜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여름만 빼고 다 좋은 것 같다.
지금처럼 부쩍 가까이 다가온 가을은 온 사방이 다 좋을 때이고,
겨울은 우리네 보다 덜 추워서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들은 여기에서 패딩을 꼭꼭 껴입은 채 “寒い (samui)”라고 말하지만.
도쿄의 겨울, 제일 아쉬운 점은 하루의 해가 무척 짧다는 것이다.
오후 3시 반부터 해가 저물기 시작하다 4시 반, 5시면 이내 컴컴해진다.
개인적으론 봄이 제일이다.
2월부터 5월 벚꽃이라 만개하는 그때 ─
조금 지나도 괜찮다.
도쿄의 사계절을 곱씹어보지만,
어찌 됐든,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