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언제 들어도
신나고 설레는 도시다.
이국의 그림자 같은 것이 배어있다.
완전히 이국적이다라고 말하기엔 선명하지 않지만,
드리워진 풍경과 정취가 그곳에 있다.
사람(Japanese) 또한 그러하다.
도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몸에 밴 호의와 공감을 표현한다.
극강의 ‘스미마셍’ 애티튜드와 연신 계속되는 긍정의 리액션은 쉴 틈이 없다.
도쿄는 이 모든 것들을 잘 버무린다.
나를 세련된 심미안의 세계로 이끈다.
2025.08 하순.
나는 도쿄에 있었다.
여전히 무더웠던 그 곳에서 나는 패션을 넘어 취향을 발견하려고 애썼다.
나의 시선은 〈 여행기 〉 로 포장한 ‘비욘드 패션(beyond fashion)’ 을 다루는 기록이었다. 도쿄에서 만난 사람들과 장면, 풍경 속에서 생각했다.
단순히 잘 입는 행위 보다 삶의 태도를 디자인하는 조형의 감각이 흥미로웠다.
그 시작은 일상의 작고 아름다움을 발견을 알아보는 것부터 였다.
생각이 바뀌니,
목적이 새로이 솟았다.
새로운 시선과 감각이 마음속에서 재생된다.
나에게 도쿄는,
으레 정해진 코스에 따라 흐르는 타성에 젖어든 여행지였다.
이번 기회에,
나는 도쿄를 예전과 다르게 즐기고 싶었다.
패션과 쇼핑에 매몰되기보다,
질감을 가진 입체적인 시선으로 들여다봤다.
3박 4일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수직적으로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의 전환이 없었다면,
나에게 도쿄는,
‘더 이상 재미없는 곳’ 이 되었을 것이다.
다가올 나의 새로운 ‘현실’ 도 한몫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나의 새로운 도전을 스스로 응원했다.
나는 패션의 범주를 넘어 ‘라이프스타일’ 분야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일상 속 디테일을 짚어볼 때라는 나의 판단이었다.
동시대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나는 스스로 이렇게 정의했다.
‘비욘드 패션 (Beyond Fashion)’
패션이 겉모습의 표현이라면,
라이프스타일은 ‘삶을 살아내는 방식’, ‘존재의 태도’이다.
그 속에는 필연적으로 ‘취향’ 이 자리한다.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하고 싶은 마음이 기우는 방향’이다.
찰나의 충동이 아닌
‘이터널 라이프’로 각인되는 깊은 방향이다.
취향은 귀중한 마음의 수원(受援) 같은 것이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아름다운 가치가 존재한다.
가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 각인된 취향은 간단히 잊히지 않는다.
많이 보고, 만져보고, 실패하며 나만의 사물의 쓸모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어 비로소 세런된 멋에 닿는다.
그래서 취향은 훈련의 산물이다. 축적의 과정 속에 내 가슴을 관통하는 순간을 맞이할 때 만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취향을 갖는다는 것은,
세련된 삶의 방식의 표현이다.
비로소 나만의 가치를 갖는 일이다.
더불어, 스스로의 태도를 결정 짓는 최고의 미적 감수성이 아닐까 싶다.
앞서 곁들인 스케치가 참 거창한 목적처럼 들린다.
결국 여행은 ‘아름다운 환기’ 다.
보편적인 여행의 목적, 그뿐이다.
조금의 설렘과 두근거림으로 준비하며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합리적 일탈이다.
과도한 계획이나 지나친 의욕보다,
두 눈을 부릅뜨는 비장한 결의는 접었다.
내 일상에서 동떨어진 그 곳에서,
다들 한 번쯤 이런 마음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
이런 의연한 마음가짐.
얽매여 있던 인연들도 옥죄된 과업들과 책임들,
모두 ─
그게 뭐.
‘이런들 저런들 어떠하랴’
두둥실 떠다니는 나를 보고 있자면, 한량이 따로 없다.
지금 이곳에서,
얽혔던 꼬임에서 풀려 욕망에 충실한 시간.
그것을 나에게 허락하는 시공간이 ‘여행’인 셈이다.
나는 언제나 궁금하다.
아직 도달하지 않은 나의 세계관이 무엇일지,
그리고 거기가 어디일지.
또다시 만날 새로운 심미안과 그 울림의 진동이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