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약의 작용

이래서 약을 하나

by 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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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히 잠든 아이, 그 옆에 남편을 보고 그제야 몸을 추스러

난 나만의 집으로 돌아왔다. 내 은신처, 아픈 은신처, 나 혼자 버텨보자고 가족을 두고 나와 따로 나와 얻은 집.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아직까진 이 집이 나에겐 가장 아늑한 동굴이다.

가끔 예전못지 않은 남편과 곤히 잠든 녀석들의 애잔한 얼굴을 보고 있을 때면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도 싶지만,

일부러 크게 고개를 휘저어 나의 은신처를 허물지 않겠다 의지를 되세우곤 한다.

결국 난 또 상처받고 숨을 곳을 찾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흘러가는 데로 두자.


다시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몇 가지 증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첫번째는 몽롱하다. 술에 취해 블랙아웃이 뒤기 직전의 느낌이랄까.

남들은 이런 나를 감기약에 취한 것같다고 한다. 뭐 나도 따로 둘러댈 말이 없어 잠자코 있는다.

근데 문제는 그 몽롱함이 수면을 부른다는 거다. 하루종일.

깨어 있어도 잠깐잠깐 꿈이 꿔지기도 한다.

사무실에 앉아 일하고 있을 때도 문제긴 하지만 무엇보다 운전할때가 난감하다.

혈중에 알콜만 없을 뿐이지 이건 취한 채 운전하는 것과 다를게 없다.


두번째는 속이 메슥꺼린다. 그래서 음식, 술 생각이 자연스레 줄어든다.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기분으로 목적하는 바를 이루는 건 어딘가 깨름직하다.


마지막으로,

이건 정말 의도치 않은 수확인데...

몇 개월 동안 부어있던 얼굴에 붓기가 가시고 선이 살아난다.

그렇다고 살이 빠진 건 아니다. 오히려 쪘으니.

머리까지 치솟았던 홧기가 내려앉은 거라 믿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해석이고.

분명 그와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용했으리라 여겨진다.


다시 복용한지 몇일 밖에 안됐는데 난 벌써 언제 이 약을 끊나 생각한다.

그만큼 아무렇지 않게 저 정신과 다녀요, 정신과 약먹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여건은 안되지 않는가.


그거 아는지.

정신과병원은 응대하는 안내원이 전화받을 때 무슨무슨 정신과병원입니다, 하지 않는다.

그냥 '병원'입니다, 한다. 아니면 중간에 '정신'이라는 말은 빼고 말한다.

내가 다녀봤던 세 군대 병원들이 다 똑같았다.

병원 스스로 환자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런다고 하겠지만

어찌보면 정신과를 대하는 사회적 시선이 아직은 곱지 않음을 한참이나 왜곡되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무슨 대수랴, 이렇게라도 스스로 '평화'를 찾자도 발버둥 치는 사람들에게 오히려 격려는 못해줄 망정.

또 다시 피해의식 나섰다.

각설하고.


벌써 12월도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왜 항상 일년의 반이 꺾이면 시간에 가속이 붙어서, 단풍이 물들고 낙엽이 지는 것도 못보고

소름끼치는 한기가 스며드는 겨울을 냅다 맞딱뜨리게 되는건지 모르겠다.


하... 난 올해도 어떻게 살았는가.

남을 도와 덕을 쌓고 싶은데, 내 한 몸도 추스리지 못해 이러는 거 보면

현생도 별 볼일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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