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이룬 팔할, 그리고 나머지 이할은...
6학년 어느 날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그 시험은 자기가 스스로 채점하는 방식이었다.
선생님의 그 파격은 아이들을 믿는다는, 믿겠다는 상징적인 선언이었다.
거기에 찬 물을 부은 건 다름아닌 '나'였다.
줄곧 반장, 부반장을 역임하며 온갖 상이란 상을 휩쓸었고 타의 모범이 되었던 '내'가
선생님을 배신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답을 채점하면서 연신 쾌재를 부르는데
이럴수가... 한 문제를 틀리고 말았다.
답은 2번, 그러나 내가 쓴 답은 1번이었다.
1초 정도 망설였을까, 거의 순간적으로 나는 1을 2로 고쳐썼다.
오답을 자연스러운 정답으로 수정하는데 집중하느라,
내 자리가 선생님의 시야에 훤히 들어오는 통로자리라는 생각에까지 신경이 미치지 않았다.
선생님이 그런 내 모습을 봤을 까?라고 걱정이 된 것은 시간이 좀 지난 뒤였다.
답안지를 제출하는 데 느낌이 싸 했다.
이상하게 불안했다. 그 많은 아이들 중 설마 내 모습을 봤을까...
내 인생에 불길한 예감은 꼭 적중한다는 원칙은 아마 그때부터 생겨났으리라.
선생님은 교무실로 나를 부르셨다.
하늘이 무너졌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끝났다.
착하고 예의바르고 타의 모범이 됐던 '나'의
어둡고 사악하고 거짓된 본색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교무실로 가는 그 길이 얼마나 긴지... 왜 나를 부르시는지 이유는 말해주지 않으셨지만 나는 이미 모든 걸 토해내고 무릎을 꿇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선생님을 보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콧물까지 범벅이 되었다.
죄송하다고... 그냥 순간적으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죄송하다고...
선생님은 의외로 화를 내지 않으셨다. 나는 그게 더 난감했다..
왜 내게 화를 내시지 않는거지. 나에 대한 기대가 없으셨나.
그 일 이후로 왠지 전처럼 선생님께 모든 걸 의지하고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터놓는 일이 없어졌다.
죄책감이란 그런 것이었다.
한번 생기면 내가 상대방에게 갖게 되는 벽 뿐이 아니라 상대방도 내게 벽을 갖게 될 거라는 생각에
이중의 벽을 만들게 하는 ...그런 감정.
나의 경우는 이 죄책감이 내 인간관계를 힘들게 하는 트라우마로 작용한 반면,
어떤 이들은 너무도 이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와 참 사람사이가 쉽고 가벼운 이들이 있다.
그래서 차라리 그들이 부러울 때가 많다.
그날 내가 저지른 부정(不正)을 부정(否定)하고, 그래서 차라리 선생님께 호되게 꾸중을 들었다면
죄책감으로부터 나는 자유로웠을까? 그랬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영악하게 잡아뗄걸..
아니다. 그랬다면 선생님의 나에 대한 일말의 기대조차 무너졌겠지..
...
아, 나를 이룬 건 팔할이 죄책감이고
이할이 소심함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