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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 Jul 29. 2018

어느 일요일 중 하루

아이 둘을 필리핀으로 보내고 주말 마다 난 둘째의 전화를 받는다.

큰애가 가기전까진 힘들어하다가

이젠 제법 그 강도가 줄어,

처음엔 2주, 한달, 한달 반... 자신이 머물렀으면 하는 기간을 요구한다.

녀석의 심정을 안다.

그렇게 말했지만 본인도 한달남은 기간을 채워서 돌아가야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둘째의 그리움을 모를리 없다. 사실 그 그리움, 빈자리가 내가 더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휴일만 되면, 무얼 할 줄 몰라 엉망으로 보낸 지가

녀석이 간 뒤로 주욱 계속되고 있다.


아이들이 있을 때는 아이들 때문에 휴일이 엉망이라고 욕을 하더니

아이들이 없으니 혼자만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몰라 병신같이 시간만 낭비하고 있다.

오늘만 해도,

밥먹고, 영어공부 조금, 휴대폰으로 쇼핑, 난데없이 아파트를 내놓고 새로 전세구하기,

그런데도 아직 오후 2시라니...


삶에서 '어른 남자'가 사라지니 사는 게 매우 단촐해졌다.

인정하긴 싫지만 외롭기까지 하다.


어제는 근처 마트에 가서 조촐하게 장을 봤다.


이혼한 뒤로 하기 싫은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홈플러스같은 마트에 가는 일이다.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자격지심이, 남녀 커플이 장을 볼 때마다 느껴지곤 한다.

어느 누구도 신경쓰는 사람 없을 텐데... 그냥 그런 커플에게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는 것은

내 무의식도 막을 길이 없다.

그들이 진정 행복하건 안하건... 같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이혼을 후회하냐고?

전혀. 내 결정에 후회는 전혀 없다.

아직도 가끔 전 남편의 비열한 말과 행동, 여전한 습관들을 볼 때면

그 때 내렸던 내 결정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새삼 자각한다. 


다만 아쉬운 점 하나는 자연스럽게 같이 늙어갈 동반자가 없다는 것.

뭐 어쩌겠는가. 나는 최선을 다해 살았고 그 결과가 이러하다는데...


힘들게 살던 친구 하나가

휴일마다 잠수를 타는 내게 자꾸 세상으로 나오라 종용을 한다.

그 녀석도 얼마전까지 혼돈속에서 힘들어했는데.

생각을 바꾸니 세상이 달라지더라고

나도 그래보라고...


내가 남들에게 많이 하던 말인데 이젠 내가 반대의 입장이 되었구나.


이또한 지나가겠지, 시나브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늘 남은 시간들을 어떻게 보낼까 좀더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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